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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 역대 국가(國歌)의 변천 (I)

by 중은우시 2008. 12. 15.

글: 오설청(吳雪晴)

 

1. 청나라 말기의 국가(國歌)

 

1880년, 청나라의 주영대사인 증국번의 장남 증기택(曾紀澤)은 사신으로 나가있는 기간동안, 서방국가는 공공행사때 국가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고 부러워했다. 그는 중국도 자신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조정에 상소를 올려, 자기가 만든 <<국악초안(國樂草案)>>을 올리고, 국각의 이름을 <<보천악(普天樂)>>으로 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조정의 비준을 받지 못한다.

 

중국역사상 첫번째 임시국가는 1896년에 탄생한다. 그 해에 청나라정부는 북양대신, 직예총독 이홍장을 특사로 파견하여 서유럽제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게 한다. 외국정부가 거행하는 환영의식에서 중국국가가 없으니 이홍장은 아주 난감했다. 이런 난감함을 피하기 위해, 이홍장은 수행원에게 고곡(古曲)에 가사를 써넣어 국가로 삼았다. 사는 당나라때 시인인 왕건(王建)의 절구로 삼았다:

 

금전당두자각중(金殿當頭紫閣重) 황금궁전이 있는 곳에 자색누각이 겹겹이 있고

선인장상옥부용(仙人掌上玉芙蓉) 신선의 손바닥 위에는 옥으로된 연꽃이 있다.

태평천자조천일(太平天子朝天日) 태평성세의 천자가 하늘의 해로 향할 때

오색운거가육룡(五色雲車駕六龍) 여섯마리의 용이 오색구름의 가마를 뜰고 간다

(* 가사들은 말이 너무 어려워, 정확히 번역할 엄두를 못냈습니다. 번역은 대충의 뜻으로만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혹시 정확한 번역을 하신 분이 있으면 반영하겠습니다. 이하 같음)

 

이 곡은 이홍장이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이중당악(李中堂樂)>>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홍장이 귀국한 후에, 이 노래를 청나라정부가 정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1906년, 청나라정부는 육군부를 설치한다. 육군부는 육군군가 <<송룡기(頌龍旗)>>를 만든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사만년(於斯萬年)                       만년간 이 곳에서 있는

아동대제국(亞東大帝國)                 아시아 동쪽의 대제국

산악종횡독립치(山岳縱橫獨立幟)     산악을 종횡으로 독립하여 솟았고

강하만연문명파(江河漫延文明波)     강하는 널리 흘러 문명을 퍼트렸네

사백조민신명주(四百兆民神明胄)     4억의 인민은 신명의 보호하래에 있으며

지대물산박(地大物産博)                 땅은 크고 물산은 풍부하다

게아황룡제국기(揭我黃龍帝國旗)     우리의 황룡제국기를 걸고

창아제국가(唱我帝國歌)                 우리의 제국가를 부르자

 

이 노래는 대국가(代國歌)가 된다. 매번 국제교류에서 국가를 연주할 필요가 있을 때면, 이 노래로 대체했다.

 

중국의 첫번째 정식국가는 1911년에 결정된다. 국가의 이름은 <<공금구(鞏金)>>이다. 청나라정부 해군부 참모인 엄복(嚴復)이 작사를 하고, 금의군 군관, 황실종친인 부동(傅)이 작곡을 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공금구(鞏金)              황금그릇처럼 단단하고

승천주(承天)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민물흔부조(民物欣鳧藻)  백성과 만물이 모두 축하한다.

희동포(喜同胞)              모든 백성은 즐겁고

청시행조(淸時幸遭)        좋은 시절을 만나서

진희호(眞熙)              모두 기쁘고 행복하다

제국창궁보(帝國蒼穹保)  제국은 하늘이 보우하사

천고고(天高高)              하늘은 높고 높고

해도도(海滔滔)              바다물은 넘실거린다

 

다만, 이 노래는 청나라왕조의 태평성세를 노래하고, 청나라정권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국가로 채택한지 6일만에 무창의거가 발발하여, 청왕조는 멸망한다.

 

청나라말기의 몇 개의 국가를 되돌아보면, 하나의 특징이 있다. 가사는 대부분 태평성세를 칭송하고, 청나라정권의  음악은 대부분 느릿느릿한 불당의 곡조를 채용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음악사상 아무런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후세인들이 부르지도 않는다.

 

2. 북양군벌시기의 국가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된다. 손중산은 국가제정을 아주 중시했다. 남경임시정부의 교육부로 하여금 국가를 공모하도록 하였다. 일부 국학대사, 사회명사들 예를 들어, 양계초, 장태염, 장건, 엄복, 채원배등이 모두 국가를 작사했다. 2월, 남경임시정부의 공보에 심은부(沈恩孚)가 작사하고, 심팽년(沈彭年)이 작곡한 국가를 초고로 하여, 이름을 <<오기공화가(五旗共和歌)>>라고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동개화중화조(亞東開化中華早)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중화

읍미추구(揖美追歐)                      미국과 유럽을 따라

 구방신조(舊邦新造)                     옛나라를 새로 건설하자

표양오색기(飄揚五色旗)                오색깃발을 휘날리는 것은

국영광(國榮光)                            나라의 영광을

금수하산보조(錦繡河山普照)          금수강산에 널리 비추는 것

아동포(我同胞)                            우리 동포는

고무문명(鼓舞文明)                      문명을 고무하고

세계화평영보(世界和平永保)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노래하자

 

이 곡은 정식으로 반포되어 불리워지기 전에, 신해혁명의 승리의 과실을 원세개에게 찬탈당한다. 그리하여 이 노래도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1913년 4월 8일, 북양군벌정부의 국회는 <<경운가(卿雲歌)>>를 국가로 한다. 가사는 <<상서대전. 하우전>>에 나오는 것으로 하였다.

 

경운난혜(卿雲爛兮)  상서로운 구름이 빛나도다 

규만만혜(兮)  널리 퍼져 있도다 

일월광화(日月光華)   해와 달과 함께 빛나고

단복단혜(旦復旦兮)   매일 매일 계속된다

시재부(時哉夫), 천하비일인지천하야(天下非一人之天下也) 이제는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위의 글은 순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후단에 왕영보(汪榮保)가 "시재부, 천하비일인지천하야"를 추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북경에 살고 있던 프랑스국적의 벨기에 음악가 존 하스톤으로 하여금 곡을 붙이게 하였다.

 

1915년 5월 23일, 원세개의 북경정부 정사당은 음창(昌)이 작사하고, 왕로(王露)가 작곡한 <<중국웅립우주간(中國雄立宇宙間)>>을 국가로 하였다.

 

중국웅립우주간(中國雄立宇宙間)   중국은 우주의 사이에 우뚝 섰다

곽팔연(廓八)                           범위가 팔방에 미친다

화주래종곤륜전(華胄來從崑崙)   중화의 조상은 곤륜의 꼭대기에서 오고

강하호탕산면련(江河浩山綿連)   강은 호호탕탕하게 흐르고, 산은 줄기줄기 이어져 있다.

공화오족개요천(共和五族開堯天)   다섯 민족이 공화를 이루어 요순시절을 펼치자

억만년(億萬年)                           억만년을

 

1916년 원세개가 황제에 오를 때, 마지막 두 구를 다시 바꾼다.

 

훈화읍양개요천(勛華揖讓開堯天)

억만년(億萬年)

 

1919년, 북양정부 교육부는 조원임(趙元任)이 작사, 작곡한 <<역진중화가(力盡中華歌)>>를 대국가(代國歌)로 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청(聽)! 아문동창중화중화중화(我們同唱中華中華中華)

청(聽)! 군불문아동사만만성적중화중화중화(君不聞亞東四萬萬聲的中華中華中華)

래(來)! 삼호만세중화중화(三呼萬歲中華中華)

도용동기동성적동조동가중화중화(都用同氣同聲的同調同歌中華中華)

 

들으라! 우리는 함께 노래부르자. 중화, 중화, 중화

들으라! 그대는 들리지 않는가? 우리 아시아동부의 사억의 목소리인 중화, 중화 중화

오라! 세번 만세부르자 중화 중화

모두 같은 기운 같은 소리로 같은 곡조 같은 노래를 부르자 중화 중화

 

같은 해 12월, 북양정부교육부는 "국가연구회"를 조직한다. 구체적으로 국가제정을 책임지는 조직이다. 1921년 3월 31일, 북양정부국무원은 장태염의 건의에 따라, 다시 <<경운가>>를 국가로 삼는다. 다만 후단에 덧붙여진 왕영보의 가사는 삭제해버린다. 그리고 다시 중국의 유명한 음악가 초우매(肖友梅)로 하여금 곡을 붙이게 한다. 그 곡조의 풍격은 서양음악의 E장조 장선법과 중국 고세궁조를 서로 결합시킨 것이다.

 

1926년, 봉천군벌인 장작림이 북경을 장악했을 때, 일본의 당가(堂歌)식을 모방하여 국가를 세로 제정하고 친히 작사한다:

 

중화웅립우주간(中華雄立宇宙間)   중화는 우주의 사이에 우뚝 섰다

만만년(萬萬年)                           만만년을

보위인민중불편(保衛人民中不偏)   인민을 보위하고 가운데서 치우치지 않으며

제업발달강산고(諸業發達江山固)   여러 산업이 발달해서 강산이 공고하다

사해지내태평년(四海之內太平年)   사해의 안이 모두 태평한 세월을 보낸다

만만년(萬萬年)                           만만년을

 

다만, 손중산이 이끄는 남방혁명정부는 계속하여 <<경운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1921년 4월, 손중산이 비상대총통을 맡은 광주군정부에서 임시국가를 제정하는데, 서겸(徐謙)이 작사하고 유비열(柳斐烈)이 작곡한 것을 임시국가로 삼는다. 그러나 이 곡은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중국인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1926년 봄, 광동혁명정부는 광동광서를 장악하고, 북벌을 준비한다. 7월 2일, 광동성 교육청은 "국가추진실행안"을 발표하여, 새로운 국가가 반포되기 전에는 <<국민혁명가(國民革命歌)>>를 대국가로 한다고 결정한다. 가사는 황포군관학교 정치부의 한 직원이 지은 것이며, 집단윤색을 거쳐, 곡조는 프랑스의 노래 "두마리의 호랑이"를 개편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타도열강(打倒列强)! 타도열강(打倒列强)!

제군벌(除軍閥)! 제군벌(除軍閥)!

노력국민혁명(努力國民革命)! 노력국민혁명(努力國民革命)!

제분진(齊奮進)! 제분진(齊奮進)!

타도열강(打倒列强)! 타도열강(打倒列强)!

제군벌(除軍閥)! 제군벌(除軍閥)!

노력국민혁명(努力國民革命)! 노력국민혁명(努力國民革命)!

제환창(齊歡唱)! 제환창(齊歡唱)!

 

열강을 타도하자, 열강을 타도하자

군벌을 몰아내자, 군벌을 몰아내자

국민혁명에 노력하자, 국민혁명에 노력하자,

다함께 힘써나가자, 다함께 힘써나가자

열강을 타도하자, 열강을 타도하자

군벌을 몰아내자, 군벌을 몰아내자

국민혁명에 노력하자, 국민혁명에 노력하자,

다함께 즐거이 노래부르자, 다함께 즐거이 노래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