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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신)

역사진상추리: 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

by 중은우시 2008. 12. 13.

 

 

 

 글: 왕녕(王寧)

 

초한간의 싸움에서 "배수진(背水陣)" 혹은 "배수일전(背水一戰)"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신이 배수진을 펼친 것은 "치지사지이후생(置之死地而後生, 먼저 사지로 몰아넣은 후에 살길을 찾는다)"는 전략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것은 천고의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수일전이라는 것은 없다. 그저 한신이 일찌감치 설계한 대함정이 있을 뿐이다.

 

"배수일전"이라는 고사성어의 의미는 강을 등에 지고 전투를 벌여서, 퇴로를 막는다는 것이다. 초,한의 전투과정에서 많은 유명하고 전설적인 전투가 있다. 그중에서 한신이 조나라를 평정한 전투는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이 전투는 인류전투사상 비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한신이 펼친 이번 전투의 핵심은 "치지사지이후생"이다. 이것은 심하게 미혹시키는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투의 결정적인 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전투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간첩전, 심리전, 우회포위작전의 종합적인 운용이다. "간첩"을 통하여 적군의 핵심정보를 취득하고, 적군 총사령관의 심리를 조성하거나 이용하고, 적을 유인하여 포위하고, 허장성세를 통하여 적군의 심리를 교란시키고, 앞뒤에서 협공하여 일전에 승리를 낚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신의 "배수일전"은 절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기막측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205년, 한나라장수 한신은 위왕 표를 기습하여 위나라를 멸망시킨다. 10월, 한왕은 다시 그와 장이로 하여금 수만군대를 이끌고 동으로 계속 진격하여 조나라를 공격하게 한다. 조왕 조헐과 조나라의 총사령관 진여(陳余)는 즉시 정형구(井陘口)에 20만의 병력을 끌어모아서 엄밀하게 방어한다. 심모원려의 한신은 쌍방의 병력차이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강공을 취하면 반드시 좌절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형구에서 먼 곳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그리고 반복하여 지형, 지세 및 조나라군대의 배치를 연구했다.

 

조나라의 모사중 이좌거(李左車)도 뛰어난 자였다. 그는 진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신의 이번 출병은 지금까지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았다. 계속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승리를 틈타 병사의 사기를 고무시켰으므로 이번에 조나라를 공격하여 점령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승리를 틈타서 왔으므로, 분명히 군대의 전투력이 아주 날카로와 당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한가지 계책이 있다. 반드시 그들의 위풍을 꺽어놓을 수 있다. 그들이 이번에 온 것은 군대의 양초(糧草, 사람이 먹는 양식과 말이 먹을 풀)를 조달하는 부대가 뒤에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보내어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양초를 빼앗아버린다면, 반드시 그들은 싸우지도 못하고 물러날 것이다. 지금 나에게 3만의 병마를 주면, 며칠도 되지 않아 한신을 생포하겠다."

 

이좌거는 비록 재주있는 사람이었지만, 진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좌거에게 자기의 생각이 맞다고 말했다: "한신의 병력은 아주 적다. 장거리를 이동해서 이곳에 왔으므로 무척 피로할 것이다. 이런 적군과도 우리가 맞싸우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를 더욱 무시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진여는 이좌거의 의견을 채택하지 않는다.

 

한신은 이 소식을 들은 후에 아주 기뻐한다. 다행히 진여과 같이 고지식한 자를 만난 것이다. 다만 이처럼 심모원려를 지닌 이좌거에 대하여는 마음 속으로 탄복한다. 그는 군중에 명을 내려 이좌거를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고, 생포해오는 자에게는 상으로 천금을 내리겠다고 말한다. 그는 병마를 정형구에서 삼십여리 떨어진 곳에 집결시킨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한신은 2천의 기병을 보낸다. 한 사람당 한군의 홍기를 가지고 작은 길로 우회하여 조나라군영의 측후방에 매복케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나라군대가 병영을 빠져나갈 때 본부를 급습해서 조나라의 깃발을 뽑고, 모두 한나라의 깃발을 꽂으라고 한다. 한신은 다시 1만의 인마를 보내어 선두부대로 삼아, 강안에 진세를 펼친다.

 

전위는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한신이 병마를 배수의 자리에 배치하는 것을 보고, 한신이 철두철미한 바보이며 용병술을 모른다고 크게 웃는다. 그리하여 그는 한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조나라병력을 이끌고 전력으로 응전한다. 그의 이런 경거망동은 그저 혹독한 댓가를 치를 뿐이다. 한나라군대의 2천기병은 조나라군대가 모두 빠져나가서 군영을 비워둔 것을 보고는 즉시 조나라군영에 들어가서 조나라깃발을 뽑고, 한나라깃발로 바꿔꽂는다. 이때 한신은 패하여 물러나는 것처럼 가장한다. 강안의 진지로 물러났다. 이렇게 조나라군대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배수진의 사병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므로 몸을 돌려 맹렬하게 조나라군대로 진격해갔다. 조나라군대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군영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돌연 자기의 군영에 한나라군대의 깃발이 가득 꽂혀있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사방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한나라군대는 그 틈을 타서 추격하여 대승리를 거둔다.

 

이좌거는 결국 포로가 되어 한신의 장막으로 끌려온다. 한신은 그를 풀어주고, 이좌거를 동쪽을 향해 앉게 하고, 자기는 서쪽을 향해 앉아, 이좌거를 공경해서 대우했다. 승리를 함께 축하할 때, 여러 장수들이 여전히 이번 전투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진을 펼칠 때 산을 뒤로 하고, 앞에 물을 두라고 하였다. 현재 당신은 우리를 물을 뒤로 하고 진을 치게 하였는데, 그러고도 조나라군대를 격파하였다. 우리는 당시에 믿지 못했는데, 결국 승리했다. 이건 무슨 책략인가?"

 

한신을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도 병법에 있다. 다만 너희들이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에 이렇게 말하지 않는냐. '함지사지이후생, 치지망지이후존(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 만일 퇴로가 있다면, 사병들은 모두 흩어져서 도망칠 것이다. 어찌 너희들로 하여금 죽어라 싸우게 만들겠는가?"

 

이것은 역사상 유명한 전투이다. 한신이 배수진을 이용하여 적을 유인한 후 공격하였다. 그는 적군의 의표를 찌르는 거동으로 사기를 격발시키는 목적을 달성했다. 동시에, 한신은 교묘하게 허장성세를 펼쳤고, 2천명의 기병으로 적의 군영을 급습하여 전쟁의 승리를 거둔다. 이번 전투는 계책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배수진을 쳐서 승리한 것이 아니다. 만일 퇴로가 없고, 적군과 접촉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마속이 가정에서 패한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비록 사지에 들어갔지만, 위나라군대는 포위만 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물공급원을 끊는 전략을 택하여 마속의 군대는 자중지란에 빠져, 전투력을 상실한다. 이것이 상대방의 배수진을 파해하는 방법이다. 가두어놓고 공격하지 않으면, 스스로 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똑같은 "치지사지이후생"의 전법으로 작은 수로 큰 병력을 이기고, 약한 병사로 강한 군대를 이기는 휘황한 전과를 얻어낸 것은 주로 한신이 충분히 주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그는 교조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알맞는 전법을 쓰고, 시기에 알맞는 전법을 썼다. 지리에 알맞는 전법을 썼다. 이렇게 실제에 부합하는 전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이점에서 보자면, '배수진'이 승리를 거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가 이끈 병사들을 강가에 진을 펼치게 하였는데, 이것은 조나라군대의 경계심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경적(輕敵)의 마음을 갖고, 교만한 마음이 들어 곧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느끼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병력을 모조리 이끌고 전투에 임한 것이다. 당연히 그가 군영을 강가에 설치한 것은 한나라군대를 격려하려는 점도 있다. 그들에게 투지를 갖고,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앞으로 싸워서 뚫고 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가 배수진을 중요한 조치로 하면서 동시에 적의 후방에서도 준비를 했다. 적의 후방에 그는 먼저 기병을 매복시키고, 전방에서는 적군을 모조리 끌어냈다. 그리고 적군의 내부가 비어있는 틈을 타서 기습을 했고, 조나라깃발을 한나라깃발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조나라군대가 군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심리적으로 조나라군대는 위협을 느꼈다. 그 후에 안팎에서 협공하고 승기를 잡아 추격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병패여산도(兵敗如山倒, 병력이 패전할 때는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한신은 결국 적은 병력으로 많은 군대를 이겼고, 약한 군대로 강한 군대를 이겼다.

 

한신이 정말 배수진을 펼쳤을까? 자세히 전체 이야기의 과정을 분석해보면, 아래의 몇 가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몇개의 특징은 한신이 진정으로 "배수진"을 펼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몇가지 주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신은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런 전술을 구사했다.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하에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자면 아주 태연자약하게 이와 관련된 각종 전략을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배수진을 펼친 것은 피동적인 입장을 주동적인 입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가장 핵심인 부분이다. 삼국의 마속은 가정을 지키는 전투에서 사용한 것이 같은 전술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라면, 그는 피동적인 상황하에서 이 전술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한신으 배수진은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배수진과는 다르다. 그는 죽어라고 싸우게 하기 위하여 사병들에게 배수진을 치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책을 정한 다음에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전체 전투과정을 분석하면, 한신의 배수진은 일종의 적극적으로 진공하는 기묘한 전략이지, 절대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배수진'은 아니다.

 

둘째, 한신의 배수일전은 하나의 시스템적인 모략이다. 이는 적의 군영에서 일을 벌이고, 또한 아침일찍 출격하였는데, 이는 적이 반드시 정오에는 군영으로 되돌아가 식사를 할 것이고, 자신들이 정오까지만 버티면, 적은 군영을 이미 빼앗겼다는 것을 알고 자중지란에 빠질 것을 예측한 것이다. 이외에 한신은 배수진으로 이미 물러날 곳이 없었다. 급하게 싸워서 상대방을 이겨야 할 것도 아니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두시간 싸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친히 정예군대를 이끌고 적군과 싸운다면 정오까지 버티는 것은 절대 문제없을 것이다. 여기서 한신은 지피지기의 도리를 알았고, 그래서 무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배수진을 만든 이 초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위험한 전략이 아니었고, 만전지책이었다. 이 전투에서, 그가 시종 걱정한 것은 조나라군대가 정형구를 막고 소로로 한나라군대의 양식조달루트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만일 조나라군대가 일단 군영(정형구)을 벗어나면 이제는 서로 평등해진다. 그는 진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물며, 바로 한신이 매복한 부대가 조나라군대의 군영을 함락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군영을 벗어난 진여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고, 한신이 빠져나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스스로를 지킨다는 점에서 보자면 만전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당시 한신의 군대는 연전연승한 군대이다. 날카롭고 일당백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군대에 불리한 요소라면 바로 조나라가 고의로 시간을 끌며 군대의 예기를 쇠퇴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조나라군대가 산입구의 좁은 길을 막아서 양식조달루트를 차단하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그가 바란 것은 조나라군대와의 속전속결이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일반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로써 볼 때, 한신의 배수진은 사실상 그저 함정일 뿐이다. 큰 지혜를 가지고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을 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 이해하여야 할 뿐아니라, 상대방에 대하여도 깊이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 제대로 전략을 써서 백전백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혜와 전술이다. 2천여년전의 한신이 쓴 바 있는 것이다. 오늘 날, 상계이든 전쟁터이건 아니면 체육경기장이건 모두 써먹을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