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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손권(孫權)의 통치술

by 중은우시 2008. 8. 4.

글: 악효동(岳曉東)

 

손권은 19살때, 부친 손견, 형 손책이 창업하여 남겨놓은 기업을 인계받았고, 71세에 사망할 때까지 52년간 동오를 통치했다. 이는 삼국시대의 그 어느 통치자보다 길었다. 조조, 유비와 비교하자면, 손권은 국세가 가장 약해서, 생존압력은 가장 강했다. 그런데도, 그가 장수하고, 강산을 잘 장악했던 것은 그가 수하를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손권의 통치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지 않았고, 수하에게 맡겨서 사명을 완수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라면 주유의 적벽대전, 여몽의 형주(荊州)전투, 육손의 이릉(夷陵)전투등이 있다. 이 세 전투는 동오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들이었다. 이를 보면 손권은 수하가 전선에서 적을 방어하는 전투작전을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손권의 용인술이 뛰어나,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용인불의(用人不疑,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음미해보면, 손권의 용일술에서 뛰어난 점은 압력을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은압(恩壓)", "신압(信壓)"과 "탄압(彈壓)"의 세 가지 압력을 가함으로써 그의 부하들이 그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도록 하였다.

 

은압: 큰 은혜를 베풀어 수하의 적극성을 이끌어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은압"이라는 것은 큰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수하가 적극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충성스럽게 상사를 위하여 은혜를 갚게 만드는 것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손권은 장사들을 다독거리는데 능하고, 신하들이 죽어라 힘쓰게 하는데 능했다. 장사들은 모두 자신의 몸을 바쳐 주군을 위하여 일하고자 했다."  능통(凌通)이 일찍 죽게 되어 아들이 아직 어리자, 손권은 그의 어린 아들을 궁중에 데려와서 부양해주었고, 자기 아들처럼 아꼈다. 여몽이 병들자, 손권은 그를 내전에 두고, 가까이서 치료해주었으며, 돈을 아끼지 않고 좋은 명의와 명약을 구했다. 그 동안에도 손권은 자주 그를 찾아갔는데, 여몽이 신경쓸까 걱정하여, 그저 벽에 구멍을 하나 뚫어두고 수시로 가서 보고오곤 했다.

 

한번은 주태(周泰)가 전선에서 돌아왔는데, 손권이 친히 주태에게 술을 따라 주었고, 주태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했다. 손권은 친히 주태의 몸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그 유래를 물어보았다. 주태가 하나하나 다 말하고 나자, 손권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주장군. 당신은 우리 손씨형제를 위하여 전투에 나가서 전투를 벌이며,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내 어찌 그대를 골육처럼 가까이 여기지 않을 것이며, 병마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그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것이다." 주태도 감격해 마지 않았고,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감복했다.

 

이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손권은 수하에게 은총을 내린 것은 그들이 존중받고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심리학자인 글라처의 말과 같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인 욕구이다" 한 사람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극도로 증강시켜주는 것이다. 손권은 수하에게 은압을 베품으로써, 극도로 그글의 성취동기와 보은의도를 불러일으켰다.

 

신압: 충분한 신임으로 수하의 책임감을 이끌어낸다.

 

"신압"은 충분한 신임을 통하여 수하의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전심전력을 다하여 상사의 걱정을 덜어주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릉지전때, 어떤 사람이 제갈근이 촉한과 내통했다고 보고했는데, 손권은 굳건하게 말했다: "나는 제갈자유(제갈근)와는 신교(神交)라 할 수 있다. 외인의 유언비어따위가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육손이 형주에서 촉군을 방어할 때, 손권은 자기의 도장을 하나 새로 새겨 그에게 주었고, 촉한과의 내왕에 관해서 그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이상의 예에서, 손권은 부하를 믿었고, 부하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수하들을 더욱 격려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수하에게 더욱 큰 권위를 세워주었다. 미국심리학자 로저스의 말과 같이 "무조건적인 긍정은 한 사람의 잠재능력을 무한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제갈근과 육손이 동오를 위하여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손권의 충분한 신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압: 불안감으로 수하가 계속 노력하게 한다.

 

"탄압'이라 함은 수하에게 적당한 불안감을 조성하여, 그가 교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계속 자신을 나타내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손권은 노신 장소(張昭)와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재삼, 재사 그를 승상에 기용하지 않았다. 비록 장소가 여러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동오의 최대문벌귀족이었지만. 한번은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손권은 딱잘라서 말했다: "오나라의 선비라면 궁에 들어오면 나에게 절하고, 궁을 나갈 때도 나에게 절한다. 내가 그대를 존경하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처럼 계속하여 공개적으로 나를 욕보인다면, 나중에 만일 잘못되었을 때 어떡할려고 그러는지 우려된다" 이 한마디 말에 장소는 오랫동안 할 말을 잃었다. 나중에 손권은 노신 장소가 계속하여 자신이 공손연과 연맹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타나지 않자, 사람을 시켜서 그의 집 문앞에 흙을 쌓게 하여 불만을 표시했다. 이로써 볼 때, 탄압이라는 것은 은혜와 위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며, 그래야 둘이 제대로 역할을 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손권이 장소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로 하여금 자신이 삼조의 원로라는 점을 내세워 남과 다르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걱정이 너무 많으면 정신적으로 붕괴하고, 걱정이 너무 적으면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하며, 걱정이 적당해야 계속 노력한다고 한다. 손권이 장소를 탄압한 것은 바로 그로 하여금 현상에 불안감을 가지게 하고, 자아도취에 빠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수하에게 맡기지 못하면 워콜릭(일벌레)이 된다.

 

삼국의 창업인물들의 용인술을 보면, 조조는 수하에게 "탄압"은 남음이 있지만, "신압"은 부족했다. 핵심적인 순간에 "내가 천하인을 등질 지언정, 천하인이 나를 등지게 하지는 못하겠다"는 자아중심의 행동방식으로는 천하선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주유의 "장간도서(蔣干盜書)"의 계책에 속아넘어간 것이 좋은 사례이다. 유비는 "은압"은 남음이 있지만, "탄압"이 부족했다. 사람을 쓰는데 너무 감정적이었다. 수하들이 어찌 위기감을 느끼겠는가? 그러다보니 그는 관우가 동오장사를 능멸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고, 결국 형주가 피습당한다; 손권은 "은압", "신압", "탄압"의 세 가지를 겸비하여, 잘 썼고,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을 잘 골라서 과감하게 기용했으며, 장사들을 잘 다독거리고, 여러 신하들에게 은혜와 신뢰를 베풀었다. 그가 위험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결국 고희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스트레스해소법에 있었던 것이다. 유비, 조조도 그에 비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로써 볼 때, 통치술은 원래 스트레스해소의 예술이다. 통치는 효과적으로 압력을 분산하는 것이다. 걱정을 나누는 것이다. 절대 '모든 문제를 나 혼자 지고가겠다'고 해서는 안된다. 가장 주의할 것은 은혜와 위엄을 함께 쓰는 것이다.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수하들은 차갑고 뜨거운 것을 스스로 알아서, 전력을 다하여 일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지도자가 압력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고, 대담하게 다른 사람과 걱정을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일벌레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헤아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제갈량과 사마사(司馬師)는 둘 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병을 얻었는데, 병사를 일으켜 전투에 승리하기도 전에 먼저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치술은 탄압술이다. 수하에게 신뢰도 주지만 탄압도 해야 한다. 수하가 가까운 심복이라고 하여 그저 안심하고 지낼 수만은 없다. 마속이 가정을 잃은 것은 바로 그가 제갈량의 앞에서 스스로가 너무나 신뢰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