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중국의 남북(南北): 하남은 남인가, 북인가?

by 중은우시 2008. 7. 14.

글: 단지장(單之薔)

 

중국의 장강과 황하는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다보니 중국인들은 남방과 북방으로 나누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중국인의 남북다툼은 이미 역사가 깊다. 남방사람과 북방사람의 지역구분은 도대체 어디로 할 것인지는 그러나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자연지리적으로 보면, 중국의 북방과 남방의 경계선은 명확한 선이 있다. 즉, 진령(秦嶺) - 회하(淮河)를 잇는 선이다. 다만, 인문(人文)을 기준으로 북방과 남방을 얘기하자면, 어디가 북방사람이고 어디가 남방사람인가? 지리적인 구분선을 기준으로 하지는 않는다.

 

<<현대한어사전>>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북방"이라 함은 황하(黃河)유역 및 그 이북지역을 말하고, "남방"이라 함은 장강(長江)유역 및 그 이남지역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황하와 장강은 모두 중하류를 얘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만일 상류까지 합쳐서 얘기해야 한다면 이것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일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북방인은 바로 황하이북의 사람이고, 남방인은 장강이남의 사람이라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장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의 남방, 북방을 가르기도 한다. <<현대한어사전>>의 전문가는 어떤 기준으로 가른 것일까? 그들은 왜 북방을 황하이북이라고 하지 않고, 남방을 장강이남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황하와 장강의 유역을 포함시킨 것일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그들은 피할 수 없는 곤란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황하와 장강의 사이에 있는 큰 땅덩어리 즉, 하남, 안휘, 산동, 소북(蘇北, 강소북부)을 북방으로 칠 것인가? 남방으로 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그렇게 말한 것일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황하는 삼문협(三門峽)을 나와서 정주일대로 들어서면, 진흙이 퇴적되어, 이미 현하(懸河, 천정천)가 되어 버려, 강물이 지표면보다 위로 흐른다. 양측에서는 이미 더 이상 지류(支流)가 유입되지 못하고, 양안의 높은 제방은 분수령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무슨 황하유역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현대한어사전>>에서 말하는 것은 북방은 바로 황하이북이고,

북방사람은 결국 황하이북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남방사람이 장강유역 및 그 장강이남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골치아픈 문제를 드러낸다. 문제는 바로 회하(淮河)이다. 회하는 명나라 이전에는 직접 바다로 들어가서, 스스로 유역을 이루었다. 그러나, 명나라이후에는 홍택호를 수리하면서, 회하를 막았고, 대운하로 진입하게 하였다. 다시 운하를 따라 장강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따지자면 회하는 장강유역에 속한다. 황하는 중하류로 가면서 현하가 되어, 황하이남의 강물은 모두 회하로 들어가는데, 이렇게 따지면 하남(河南) 사람들은 대부분 회하유역에 사는 것이 된다. 산동서부지역도 마찬가지로 회하유역이다. <<현대한어사전>>의 정의에 따르자면, 대부분의 하남사람들은 남방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산동사람도 남방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남사람을 북방사람으로 볼 것인지, 남방사람으로 볼 것인지? 이에 대하여 인문학자들은 어떻게 얘기하는지 살펴보자.

 

청말민초의 유명인사인 도성장(陶成章)은 "장강이남에 속하는 지역을 남방이라고 부른다; 황하이북을 북방이라고 부른다. 남방사람은 지혜롭고 교묘하나 약간 미신을 믿고, 정치사상이 많다. 북방사람은 솔직하고 우직하며 무력을 숭상하며 많이 신권과 미신을 믿는다." 이로써 볼 때, 그는 황하와 장강의 중간에 있는 땅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즉, 하남사람은 남방인도 아니고 북방인도 아니다.

 

노신은 <<북인과 남인>>이라는 책을 쓴 바 있다. 그 글에서, 노신이 생각하는 남북분계선은 장강이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이육(二陸)이 진(晋)에 들어온 후, 북방인사들은 기뻐하는 와중에 분명히 경박함을 가지고 왔다. 입증하기는 너무 번거로우니 말하지 않기로 한다.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양함지의 <<낙양가람기>>에서 자주 남방사람을 멸시하고, 같은 류로 취급해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낙양은 진(晋)의 수도였다. 이육(二陸)은 동오의 문학가인 육기(陸機), 육운(陸雲) 형제이다. 두 사람은 오군 화정사람(지금의 상해)이다. 진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육기, 육운형제는 낙양으로 간다. 거기서 예우도 받으면서 모욕도 받았다. 노신이 말한 <<낙양가람기>>에서 자조 남방사람들을 멸시했다는 것으로 볼 때, 노신은 황하남안에 있는 낙양사람을 북인으로 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장강이남의 사람을 남인으로 보았다. 노신이 보기에 하남사람은 북방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예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조무면(趙無眠) 선생은 <<세설남북>>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습관적으로 전체 섬서, 하남은 북방으로 구분된다. 진령이남인지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전체 안휘, 강소도 남방으로 구분된다, 역시 회하이북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람들을 설복시키기 어렵다. 섬서진령이남 한수유역의 한중(漢中), 안강(安康)등의 땅과 하남남부의 남양(南陽)분지를 북방으로 본다면 그것도 어느 정도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고대의 강역을 기준으로 남북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의 초(楚), 오(吳), 월(越) 삼국의 지역은 남방으로 부르고, 나머지 나라는 북방으로 부르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의 세력이 매우 커서, 장강이북 심지어 회하이북의 여러 곳도 모두 초나라의 판도내였다. 이것은 담기양(譚其)이 주편한 <<중국역사지도집>>을 보면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자면 하남사람은 다시 남방사람이 되어 버린다.

 

청나라때 대학자인 전대흔(錢大昕)이 쓴 <<십가재양신록>> 권9에는 "한인의 남인구분은 송나라와 금나라의 강역을 가지고 판단한다. 강절 호광 강서 삼행성은 남인이고, 하남성은 장강이북 회하남쪽의 곳만 남인이라고 한다" 이는 원나라때의 구분법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하남사람은 절반은 남방사람, 절반은 북방사람이다.

 

1960년, 중공중앙은 중남국(中南局)을 두고, 도주(陶鑄)가 서기를 맡는다. 중남국은 하남, 호북, 호남, 광동, 광서의 5개 성을  관할했다. 여기서는 하남을 남방으로 취급한 것같다.

 

그리고 화북인(華北人)을 북방사람으로 보고, 화남인(華南人)을 남방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화북과 하남의 경계선은 장강이다. 이런 화북과 화남의 경계구분은 자연지리학적으로 화북과 화남을 가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자연지리학자들이 보기에 화남은 남령(南嶺)이남의 복건, 광동, 광서, 대만, 해남지역이다. 자연지리학자의 관념상, 자연의 각도에서 화북과 화남의 사이에 화중(華中)이 있다.

 

지리학자인 나개부(羅開富) 선생은 1954년의 "중국자연구획"에서, 중국을 7개지역으로 구분했다: 동북, 화북, 화중, 화남, 몽신(蒙新), 청장(靑藏), 강전(康)이 그것이다. 그중, 화북, 화중, 화남의 구분은 이렇다. 화북과 화중의 분계선은 진령-회하선이고, 화중과 화남의 분계선은 남령이다.

 

지리학자인 황병유(黃秉裕) 선생은 1957년에 주재한 중국자연구획업무를 통하여, 그가 기초한 방안에서는 중국을 3대자연구, 18개 자연지구로 나누었다. 그중 화북과 화중지구의 분계선은 진령-회하일대이고, 화중과 화남의 분계선은 남령이다. 나개부선생과의 차이점이라면 남령산지(南嶺山地)를 화중에 넣은 점이다.

 

저명한 지리학자인 임미악(任美鍔)은 중국을 8개지구로 나누었다. 다만, 화북, 화중, 화남의 구분법은 위의 두 지리학자와 대체적으로 같다.

 

이들 지리학자의 공통점은 모두 화북과 화남의 경계선상에 하나의 화중지구를 두고, 화북과 화중의 경계선을 회하-진령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지리학자들은 이는 자연구분이고, 문화구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지리학자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진령-회하의 선을 중국자연지리의 남북경계선으로 삼은 것이지, 인문의 남북경계선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인문학자들중에서 남북분계선의 기준을 여러가지로 설정하는 것을 설명했고,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 권위있는 <<현대한어사전>>이건, 대문호인 노신이건, 그들의 표준은 인문계에서 공인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지리결정론자는 아니다. 필자는 지리확경이 사람의 사상과 품성을 결정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구역과 자연구역이 겹치지도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아주 신기한 점이라면, 중국남북의 자연지리경계와 인민지리경계는 확실히 중복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하와 장강의 사이에 있는 양주(揚州)는 문화적으로 공인된 강남에 속한다. 다만, 만일 장강을 경계로 한다면, 이 일대는 북방이 되어버린다. 다만, 만일 우리가 중국남북의 자연지리경계인 진령-회하선을 채택하여 인문남북경계선으로 삼는다면, 이 문제는 그대로 해결된다. 양주는 이 선의 이남(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자연지리의 남북경계선은 진령-회하-소북관개총거(蘇北灌漑總渠)이다)이므로, 양주는 자연히 남방이 된다.

 

하남의 남양분지는 한수(漢水)유역에 속한다. 한수는 장강의 지류이다. 남양인들의 생활방식도 남방에 가깝다. "남미북면(南米北麵, 주식이 남쪽은 쌀밥, 북쪽은 국수)", "남선북마(南船北馬, 주요교통수단이 남쪽은 배, 북쪽은 말)"로 보면, 남양사람은 확실히 남방사람이다. 만일 장강을 기준으로 남북을 나누면, 남양사람은 북방인이 된다; 만일 진령-회하를 기준으로 나누면 남양사람은 남방사람이 된다. 이로써 볼 때, 진령-회하선으로 남북을 나누는 것이 자연지리뿐아니라 인문사회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 된다.

 

만일 우리가 중국의 동부에 남북경계선을 인정한다면, 자연과 인문은 중복되며, 그것은 모두 진령-회하의 선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동사람을 남방사람이라고 부르는 난감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주사람을 북방인이라고 하는 잘못도 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양사람들은 원래의 진면목을 되돌려놓을 수 있다.

 

회하는 하남성 남부경계지역에 있는 동백산에서 발원하므로, 진령-회하선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하남의 대부분의 지역은 북방이 된다. 그러므로, 하남사람은 북방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안휘와 소북사람들은 남방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