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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하남(河南) 차별의 유래

by 중은우시 2007. 7. 11.

글: 단작문(檀作文)

 

필자에게는 사형(師兄)이 한 분 있는데, 학술적인 업적도 뛰어나고, 이미 모 대학에서 최고관리자급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의 약한 곳을 알고 있다. 매번 모임을 가질 때마다, 그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대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대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는 "하남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억울하게 말하곤 한다. 이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농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너희 하남사람들이 요마화(妖魔化)된 것은 역사가 깊다. 거의 3천년전에 하남사람들은 이미 문화적으로 차별을 받았었다"

 

선진(先秦, 진나라의 천하통일 이전)시대에도 "하남사람"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이는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고, 그저 간단한 <<고사성어사전>>만 뒤져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성어중에 "기인우천(杞人憂天)" 또는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멍청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고, 바로 그 조롱대상인 기(杞)나라사람은 바로 하남사람이다. "정인매리(鄭人買履. 정나라사람이 신발을 사러가는데 자로 발의 크기를 재었는데 시장에 가서 신발을 사려다보니 자를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다시 집에 돌아와 자를 가지고 시장에 가니 이미 시장은 파했다는 것이다. 옆사람이 왜 자기 발로 신어보면 되지 꼭 자를 가져오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정나라사람은 자신은 차라리 자를 믿지 자기 발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성어)"에 나오는 멍청한 사람인 정나라사람도 바로 하남 사람이다. "발묘조장(拔苗助長, 송나라사람이 싹이 빨리 자라지 않자 마음이 급해서 조금씩 뽑아두면 더 빨리 자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 죽었더라는 고사)"이나 "수주대토(守株待兎, 송나라사람이 경작중에 토끼가 나무그루에 부딪쳐 죽은 것을 주운 적이 있는데, 그 후에 계속 나무 옆에서 토끼가 와서 부딛쳐죽기를 기다렸다는 고사)"에 나오는 멍청이들은 모두 하남사람이다.

 

장자도 하남사람인데, 그가 <<소요유(逍遙遊)>>에서 조롱한 사람도 바로 하남사람이다. <<소요유>>에 나오는 하남의 멍청이는 강소절강일대로 옷장사를 하러 갔는데, 가보니 그 곳의 사람들은 모두 대머리에 벌거벗고 다녀서, 모자나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 명의 하남 멍청이도 조상의 비방(秘方)을 멍청하게 팔아버린 것으로 나온다.

 

왜 고사성어에 나오는 멍청이는 모두 하나같이 하남사람일까?

 

하남사람들이 문화적인 차별대우를 받은 것은 중국역사상 가장 중요한 왕조변경과 관련이 있다. 즉, 주혁상명(周革商命, 주나라가 혁명으로 상나라를 전복시킨 것)이다. 주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것은 중국문화사상의 신화인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믿을만한 것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공자는 "나는 주(周)나라를 따르겠다"라고 하였다. 상(商)나라의 후예인 공자는 주나라의 예악을 숭배했다. 그러나, 주나라사람들은 천하를 얻은 후에, 상나라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차별했다.

 

주나라사람은 원래 섬서(陝西)에 살던 사람들인데, 그들은 하남을 중심으로 하던 상왕조(은왕조)를 무너뜨렸다. 상나라가 멸망한 이후 상나라후예들은 송(宋)나라사람이 되었다. 송나라의 도성은 지금의 하남성 상구(商丘)일대이다. 송나라사람들은 주나라사람들에게 많은 차별을 받았다. 주나라사람들은 선진적인 문화를 자랑하며 상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사람들을 멸시했을 뿐아니라, 하(夏)나라의 후예인 기(杞)나라사람들까지 멸시했다. 기나라의 수도는 지금의 하남성 기현(杞縣) 일대이다. 기나라는 하왕조의 후예이고, 송나라는 상왕조의 후예이다보니 모두 망국의 후예들이다. 그런 점에서 주나라사람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당했던 것이다.

 

상구와 기현은 모두 현재의 하남성 동부지방이다. 이곳에는 정(鄭)나라도 있었는데, 이곳의 우두머리는 주나라에게 갈라져 나왔고, 수도는 지금의 하남 신정(新鄭)일대이다. 이들도 낙양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역시 문화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개략 정나라가 통치하는 주민들은 하남사람들이 많았다. 낙양은 주나라사람들이 동쪽으로 확장하는 거점이었다. 아마도 섬서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정복자는 항상 피정복자에게 고압적으로 대하고 멸시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