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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미디어

중국의 개혁개방후 10대 상영금지영화

by 중은우시 2008. 6. 30.

글: 장화립(張華立)

 

1. <<고련(苦戀)>>

 

1980년

감독: 팽녕(彭寧)

주연: 유문치(劉文治), 황매영(黃梅瑩)

 

이 영화는 극중의 "너희는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조국도 너희를 사랑할까?"라는 대사가 문제되었다. 이 대사는 <<고련>>의 가장 큰 죄였다. 나중에 <<고련>>은 개편한 후에 이름을 <<태양과 사람>>으로 바꾸었지만, 전자의 영향이 너무나 컸다. 이 영화가 내부방영될 때,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사항기본원칙에 위반되었다고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어져 1981년 한해동안 이 영화애 대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이 영화는 결국 공개적으로 상영되지 못한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저 백화(白樺)의 극본을 통해서 이 영화의 일부상황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2. <<원야(原野)>>

 

1981년

감독: 능자(凌子)

주연: 유효경(劉曉慶), 양재보(楊在)

 

최초의 소문은 유효경의 나체장면때문에 금지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관련자료를 보면, 이 영화를 심의에 넣은 후에, 한 덕망있는 고관이 한마디를 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뭐지? 내가 보기에는 바로 남도여창(男盜女唱, 남자는 도둑이요 여자는 창녀)이다" 말을 마치고 그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바로 이 한 마디는 이 영화의 성격을 정해버렸다. <<원야>>는 몇년간 금지되었다. 사실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금지령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1988년에 해금된 후에는 찬양하는 소리가 드높았다. 이 영화는 그해에 백화장의 최고극본상 및 최우수여자주연상을 받았다.

 

3. <<남풍쟁(藍風箏, 파란 연)>>

 

1992년

감독: 전장장(田壯壯)

주연: 여여평(呂麗萍), 이설건(李雪健), 복존흔(存昕)

 

홍콩과 일본의 자금으로 만들었으므로, 영화는 일본영화라는 명목으로 국제영화제에 참가했다. 그리고 일본의 제6회 동경국제영화제의 최우수영화상, 최우수여자주연상을 받았다. 다만, 중국영화대표단은 동경영화제에서 화가나서 떠나버렸다. 결국, 이 영화는 "심사허가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동경영화제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 감독 전장장은 8년간 영화를 찍지 못하도록 금지당한다.

 

4.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년

감독: 진개가(陳凱歌)

주연: 장국영(張國榮), 공리(鞏), 장풍의(張豊毅)

 

<<패왕별희>>는 진개가(천카이거)의 영화창작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다. 이 영화로 그는 칸느 상을 받았다. 다만 제5대반성시대를 끝내고, 제5대의 전면적인 전환이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 이 영화가 금지된 것은,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경극의 주인공이 문혁기간중에 참혹하게 비판당한 굴욕사와는 관련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은 소위 "반성영화"의 공동의 문제였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타난 약간의 동성애적 분위기도 배척받은 원인이다. 이 영화는 공영된 후에 금지되었다. 이는 <<평과(果, 사과)>>와 유사하다. 

 

5. <<활착(活着)>>

 

1994년

감독: 장예모(張藝謀)

주연: 갈우(葛優), 공리(鞏)

 

이 영화는 보통인물의 통속극 분위기이다. 중국일반백성의 "시원하게 죽는 것보다는 구차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생활관을 잘 표현한다. 정치운동의 황당성도 우스개거리가 되고 욕을 먹는 것이 된다. 이는 드물게 보는 블랙유머의 우수작이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금지된다. 투자자가 홍콩연대회사였고, 그래서 해외에서는 상영되었다.

 

6. <<파파(爸, 아빠)>>

 

1996년

주연: 왕삭(王朔)

주연: 풍소강(馮小剛), 호효배(胡曉培), 서범(徐帆)

 

본 영화는 왕삭의 90년대 초기의 소설 <<나는 너의 아빠>>를 각색한 것이다. 이야기는 상처한 남자 마림생과 그가 기른 아들간의 긴장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 국가기관에서 세월을 보내는 보통직원과 아들에게 시시때때로 하는 폭력, 때때로 꼬리를 흔들면서 불쌍한 척한다. 다만 결국 부자간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이 부자권리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는 아직까지도 공개상영되지 않고 있다.

 

7. <<미(米)>> : 일명 <<대홍미점(大鴻米店)>>

 

1995년

감독: 황건중(黃健中)

주연: 석란(石蘭), 도택여(陶澤如)

 

영화에 나오는 성애장면이 문제가 되어 금지당했다. 이 영화의 운명도 아주 특이하다. 1995년에 제1차상영금지, 2003년에는 수정을 했는데도 여전히 상영되지 못한다. 혹시 <<색계>>보다 더 심한가?

 

8. <<귀자래료(鬼子來了)>>

 

1999년

감독: 강문(姜文)

주연: 강문(姜文)

비록 칸느영화제의 심사단대상을 받았지만, 이 영화는 전영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칸느에 참가했으므로 전영국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켰다. 지금까지도 공연을 못하고 있다.

 

9, <<십칠세적단거(十七歲的單車)>>

 

2000년

감독: 왕소수(王小帥)

주연: 최림(崔林), 이빈(李濱), 고원원(高園園)

 

<<십칠세의 단거>>는 제6대감독의 대표인물인 왕소수의 작품이다. 제작자측과의 계약내용에 따라, 이 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전영국의 심사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왕소수는 전영국에 대한 믿음이 없었는지, 심사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영화편을 가지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 그리고 은곰상을 받는다. 그러나, 상을 받았다고 운이 바뀌지는 않았다. 국내상영이 금지된 것이다.

 

10. <<평과(果, 사과)>>

 

2007년

감독: 이옥(李玉)

주연: 범빙빙(范氷氷), 퉁대위(大爲)

 

심사통과를 받지 아니한 채 임의로 색정내용의 영화를 인터넷에 전파하고 DVD로 만듬으로써, 전영총국의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했다. 동시에 심사허가없이 영화판본을 제57회 베를린영화제에 보내어 참가했다. 같은 해의 <<색계>>는 색정내용으로 선전을 하고, 뛰어난 기교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탕웨이의 처지는 이상하기는 하다. 어느 정도 축구심판같이 균형을 찾아주는 것과 비슷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