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차도

영국인들은 왜 중국차를 많이 마시게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08. 5. 5.

글: 유앙(劉仰)

 

봄이 오고, 새 차(茶)가 출시되었다. 요 이틀간 신차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세계에서 중국인들이 차를 즐겨마시는 외에, 또하나 차를 좋아하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현재 차의 소비량 특히 홍차(紅茶)의 소비량에 있어서는 중국을 훨씬 초과한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차를 마시는 것은 수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개략 3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어떻게 하여 차마시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일까?

 

우리는 먼주 영국인들이 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과 비교하자면, 영국인들은 홍차를 즐겨마신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국은 차가 나지 않는다. 원래 영국의 식민지에서도 차가 나지 않았었다. 차는 모두 중국에서 수입해야만 했었다. 장기간의 해상운송에서 홍차는 녹차(綠茶)보다 보존하기가 용이했다. 다만,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중국인들은 녹차를 즐겨마시기 때문에, 홍차의 생산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국의 차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서 급격히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홍차의 생산과 소비는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영국상인들은 차에 가짜를 섞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비교적 홍차는 녹차보다 가짜를 섞기 편하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영국의 불법상인이 홍차에 양의 똥을 섞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필자는 홍차를 마실 때, 설탕이나 우유를 섞는 습관이 가짜를 섞는 것과 관계가 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영국인들의 차를 마시는 습관은 확실히 갑자기 변화한 현상이다. 17세기의 마지막해에 영국의 공식통계에 의한 차 수입은 겨우 6톤에 불과했다. 그런데, 100년도 되지 않아, 영국의 공식통계에 의한 차수입이 1만톤을 넘었다. 18세기말에 이르러, 각종 채널을 통하여 영국으로 수입된 차는 개략 2만톤에 이른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영국은 상류사회에서 차를 마시는 외에, 거지도 차를 마시고, 마부도 차를 마셨고, 쿠리와 같은 일반노동자도 차를 마셨다. 영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습관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전파되었다. 영국은 북아메리카식민지의 차무역을 독점하려다, 현지이민과 충돌이 발생한다. 이는 미국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영국인들이 왜 갑자기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 예를 들어, 상류사회에서 유행하였기 때문이라든지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근본에 다가가지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일찌기 16세기초에 유럽인들은 중국에서 쓴맛이 나는 잎을 물에 타서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포르투갈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프랑스인은 영국인들보다 먼저 중국차를 수입했지만, 차를 마시는 것이 습관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왜 멀리 떨어진 섬나라에서만 사회의 각계각층이 모두 마시는 유행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중국으로 되돌아와서 보자. 중국인들은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수천년이 되었다. 8세기에, 차성(茶聖) 육우(陸羽)는 우리들이 현재 차를 마시는 방식을 거의 확정하게 된다. 차를 마시는 데는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뜨겁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끓인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이것은 간단한 상식이지만, 다만, 이 습관은 인류의 건강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 현재 차가 건강에 좋다는 점을 얘기할 때면, 왕왕 차의 어떤 성분만을 얘기한다. 그러나, 고대사회로 돌아가서 보자면, 차를 마시는 것에는 오늘 날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끓인 물을 사용하게 되므로, 물 속의 세균은 거의 죽어버린다. 그리하여 위장병이 생길 가능성을 많이 줄여준다. 그리하여, 차를 마시는 습관은 생활위생을 위하여 좋은 습관이 되는 것이다.

 

고대사회는 환경오염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따. 필자가 어려서 농촌에 살 때, 자주 골짜기의 물을 그냥 마시곤 했다. 그리하여 그때 차를 마시는 위생습관의 좋은 점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노사(老舍) 선생은 일찌가 짧은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바로 시골의 친척이 도시로 와서, 도시의 친척이 그에게 차를 마시라고 권하자, 시골친척은 한 모금을 마신 후, "뜨거운게 재미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하여 북방지역의 농촌에서는 아직 차를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오염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우물물, 강물을 직접 마셨고, 위험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다만, 18세기의 영국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생수를 그대로 마시는 것이 큰 위험을 수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그때 런던은 '안개의 도시'라는 칭호를 얻는다. 사실 이것은 산업오염으로 인한 것이다. 대기오염뿐아니라, 수질오염도 초기 산업혁명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대량의 인구를 도시로 집중시켰다. 도시의 음용수오염은 중대한 문제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국의 차소비량이 급격히 성장하게 되는 기간이 마침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영국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시게 된 것은 바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불러온 부산품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영국인들은 끓은 물로 차를 마시면, 수질오염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고, 위장병의 발생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유럽역사상 여러번 대규모 전염병이 유행했었다. 예를 들면, 흑사병이 있다. 산업혁명이후, 영국의 전염병은 더욱 심각해진다. 예를 들면, 곽란, 폐결핵등이 그것이다. 영국에서 일찌기 가래를 뱉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생겼는데, 이는 바로 폐결핵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폐결핵을 치료할 약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전염병학에서는 폐결핵은 공기를 통하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래를 뱉는 것이 폐결핵을 전파하는 주요한 경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유럽은 법률로 가래를 뱉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는 습관이 대규모로 유행하게 된 것도, 전염병의 창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가 되면서, 오염된 런던에서는 곽란이 자주 유행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곽란의 전파도 공기를 통하는 것인줄 알았다. 당시 런던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테임즈강과 시내의 하수도가 있었고, 이것이 곽란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국정부는 많은 돈을 들여, 방대한 런던의 하수도공사를 시작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런던의 하수도공사가 완공된 후에도 곽란은 여전히 유행하였다. 전염병학자들은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곽란은 물로 전파된다는 것을. 이 결론은 끓인 물로 차를 마시는 습관을 불러온다. 차는 사회각계층에서 건강을 보호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비록 차가 없더라도 끓인 물은 마시게 된 것이다. 아마도 차가 없었더라면, 강제로 물을 끓여먹게 하는 법률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사례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금 볼 수 있다. 중국의 어떤 전통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산업사회가 가져온 변화는 어떤 전통의 중요성을 저감시키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더욱 중요하게 한다는 것을. 근대에 들어, 미국등 선진국에서 상수도에 아주 높은 위생기준을 부과하면서, 상수도물을 그냥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 습관도 대중생활에서 마치 감소한 것처럼 보이고, 그저 고아한 인사들의 습관으로 남았다. 그러나, 차의 좋은 좀은 여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