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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일본은 왜 마카오를 점령하지 않았는가?

by 중은우시 2008. 5. 5.

글: 오문노기(澳門老記)

 

중국판도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마카오는 아주 행운아이다. 마카오는 1840년 아편전쟁이래 한번도 전화(戰火)에 휘말린 적이 없이, 근 170년간을 평화스럽게 지내왔다. 제2차세계대전때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먼저 중국의 동북삼성(요녕, 길림, 흑룡강)을 점령하고 다시, 미친듯이 남진하여, 중국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반달만에 홍콩도 점령당하고,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군의 기세로 보아서는 마카오와 같은 자그마한 땅이라면 약간의 부대만으로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로 지척에 있는 마카오에는 손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카오는 일본침략군의 유린을 피할 수 있었으니, 아주 불가사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마카오는 동남아 여러나라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했었다. 대량의 난민들이 전화를 피해 마카오라는 조용한 좁은 땅으로 몰려들었다. 마카오의 인구는 졸지에 40여만으로 급증했다. 이 인구수는 거의 지금의 마카오 인구수에 필적할 정도이다.

 

여러해동안 역사학자들은 그 연유를 궁금해 했고, 여러가지 주장이 난무했다. 그중 비교적 믿을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원래 일본정부는 포르투갈 정부와 비밀협정을 체결했다고 한다. 16세기중엽 포르투갈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오대양 육대주의 식민지를 개척했고, 특히 라틴아메리카에는 최대의 식민국가 브라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브라질은 땅은 넓지만 인구는 적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모두 이주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여러 나라의 이민들을 받아들여 브라질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브라질은 일찌기 청나라조정에도 이민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청나라조정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다시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은 땅이 좁고 사람은 많으므로, 불감청고소원이었다. 그리하여, 브라질에는 일본으로부터의 이민이 아주 많았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마카오의 포르투갈당국은 마카오를 일본의 침략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포르투갈의 식민지정부인 브라질정부를 통하여 일본정부를 협박했다. 만일 일본군이 마카오를 점령한다면, 브라질에 이민와 있던 300만의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되돌려보내겠다고. 이 협박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이렇게 많은 이민자들이 한꺼번에 귀국한다면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카오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교환조건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마카오는 전쟁의 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