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정정(李晶晶)
1900년 5월 23일 수요일
오늘, 시장에서 중국에서 온 자기를 보았다. 아주 재미있다. 이 자기는 호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병에도 호로무늬가 그려져 있다. 전체 색깔은 푸른 색이어서, 아주 보기 좋다. 정말 버릴 수가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10파운드를 주고 사버렸다....
2005년 7월 15일 영국의 소도시 Salisbury(런던에서 자동차로 1시간반거리)의 Woolley & Wallis경매회사가 '동방자기 및 공예품'이라는 경매행사를 하고 있었다. Woolley & Wallis는 지방의 소형경매회사이고, 최고경매기록이 50만파운드가량을 넘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형고객이 주의하지는 않는다. 이날의 마지막 경매품은 448호로, 원나라때의 청화쌍호로문병(靑花雙葫蘆紋甁)이었다. 높이는 47.5센티미터이고, 병은 호로모양을 하고 있다. 바깥의 무늬는 청화로 그렸는데, 도안은 병 전체에 가득 차있고, 호로와 무성한 가지와 잎을 그리고 있다. 원나라 청화자기는 일반적으로 무늬의 층차가 많은데, 이 자기의 모양과 문양은 통일되고 화법이 깨끗하고 간략하였다. 지금까지 이런 유형은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이 원나라 청화쌍호로문병의 평가금액은 20-30만파운드였다. 당시 6명의 원매자가 전화로 경합이 붙었는데, 가격이 150만파운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4명이 남아서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또 한명의 원매자가 참가했고, 그는 반드시 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최종적으로 260만파운드에 낙찰되었는데, 커미션을 가산하면, 이 경매품의 거래가격은 334.5만파운드가 된다. 한화로 약 60억원이 된다.
이번에 334.5만파운드에 낙찰된 원청화쌍호로문병은 바로 1900년 5월 23일 시장에서 10파운드를 주고 사들인 그 화병이다. 일기의 기록자는 영국 빅토리아와 에드워드시기에 은행가이자 수장가인 William Alexander였다. 알렉산더는 1867년부터 수장을 시작했고, 이해에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수장종목은 중국 당송명청의 각종 예술품이었다. 나중에 Burlington예술클럽에 자주나타났다. 그는 서양화와 아시아문화제에 관하여 유명했다.
이번에 그의 후손이 꺼내어 경매하게 된 원청화쌍호로문병은 모두 "알렉산더병"이라고 부른다.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보도에 따르면, 이 병은 Woolley & Wallis회사 자기부의 책임자인 John Axford가 수장가의 집에가서 평상적인 보험검사를 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당시 이 청화병은 서가의 아래에 놔두었는데, 집안에 기르는 큰 개가 꼬리를 흔들면서 왔다갔다 하다가 계속 부닥쳤다. Axford는 "당시 나는 이 병이 연대가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사를 마쳐 확인된 후에야 중국의 원나라때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양도 아름다왔지만, 먼지가 많이 묻어서, 깨끗이 한번 씻어야 했습니다" 그날 매도인은 그 큰 개를 끌고 경매현장에 나타났다. 334.5만파운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저 멍해졌다. Axford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노인은 지팡이를 집고, 곁에 있는 큰 개를 의미있게 두드렸다는 것인데, 아마도 개가 그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 병에게 오늘날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고 한다.
어쨌든 알렉산더는 은행가는 은행가이다. 안목이 뛰어났다. 이 호로문병을 그가 매입한 날로부터, 경매로 판 날까지는 꼭 105년인데, 그의 투자수익율은 35만배가 된다. 그 기간동안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도 거치고 수차례의 경제위기도 겪었지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에도 바라는 일이 아닐까?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은, 왜 1913년의 런던 Burlington예술클럽과 맨체스터예술관에서 개최한 여러차례의 전람회에 알렉산더는 여러 전시품을 내놓았는데, 이 물건만은 나타난 적이 없었을까? 왜 105년간 호로문병은 어떤 카탈로그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을까? 왜 그것은 출현하자마자 334.5만파운드라는 고액으로 거래되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보면 답안이 나온다. 1929년 어느 날, 영국에 여행온 중국의 골동품상인 오뢰희(吳賚熙)는 한쌍의 청화운룡상이병을 유리창의 골동점에 보내어 팔려고 했다. 그것은 원래 북경의 지화사에 있던 물건인데, 어떻게 하여 오뢰희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 한쌍의 자기병은 아름다울 뿐아니라 재미있었다. 그중의 한 병의 목부분에는 파초잎무늬가 있는데, 빈 공간에 6행 62자의 청화해서제기가 쓰여있었다: "신주로 옥산현 순성향 덕교리 형당사봉성 제자 장문진은 향로, 화병 한쌍을 희사하여 온 집안의 대길, 자녀평안을 기원합니다. 지정11년4월 양신근기. 성원조전 호정일원수 바침" 그런데, 유리창의 어느 골동품상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원인을 따져보니, 청나라 말기의 골동품상들에게는 이런 말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나라에는 청화자기가 없다. 이것은 정론이다" 화가나서, 오뢰희는 이 자기병을 영국으로 가지고 와서, Percival David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이 사람은 영국 런던대학 아시아아프리카학원 Percival David중국미술관의 관장이다.
오래지 않아, 영국학자인 R. Hobson은 이 자기병을 보게 된다. 홉슨은 영국의 저명한 중국고대도자기학자이다. 그는 병에 쓰여진 "지정11년"이라는 연호에 흥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
원나라의 역사는 명청에 비하여 짧았다. 겨우 90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원나라 청화는 원나라중기이후에 나타나고,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 아주 적다. 완전하지 않은 통계에 따르면, 국외에 약 200건가량이 있다는 것이다. Pope가 가본 토브토프궁박물관에 약 40건이 있고, 테헤란고고박물관에 37건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다른 곳 예를 들어, 영국옥스포드대학박물관, 빅토리아와 알버드박물관, 대영박물관, 캠브리지박물관 및 미국, 일본, 동남아등지의 공사수장품이 약간 있다. 중국내에는 1959년부터 2005년까지 46년간, 수장하고 있는 완제품은 100여건이고, 전래품은 일부분인데, 대부분 북경고궁박물관, 상해박물관 그리고 홍콩의 개인수장가가 소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원나라 청화자기의 국제가격은 올라가고, 각국 박물관, 대수장가들이 서로 수장하고 싶어하는 것이 되었다.
경매시장에서, 원나라 청화의가격은 인물이야기도안이 높고, 그 다음이 용, 봉등 동물문양, 마지막이 식물문양이다. 2005년 7월 12일, Woolley & Wallis경매회사에서 경매하기 3일전에, 런던 크리스티에서 "귀곡하산(鬼谷下山)"이라는 원나라 청화대관(靑花大罐)을 경매했는데, 경매가격이 1568.8만파운드였다. 약260억에 이르렀다. 이는 전세계 중국공예품중 최고의 경매가격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바람에, 호로문병은 알렉산더의 집에서 조용하게 105년간 지냈다. Pope의 연구는 사람들에게 "원청화"라고 부르는 자기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귀곡하산"이 2.3억위안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어, 작은 마을의 경매회사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낙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Wolley & Wallis의 웹사이트를 열어보면, 아직까지도 이 호로문병의 낙찰가격이 최고가격이다.
윌리엄 알렉산더는 1916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일생동안 수장한 예술품은 상급품이 무수히 많았다. 그는 사망할 때, 자기가 10파운드 들여서 산 자기병이 1세기후에 사람들이 서로 가져가려는 진품으로 될 것을 알았을까? 원청화가 매력이 있다기 보다는, 알렉산더가 안목이 있다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
'중국과 문화 > 중국의 골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청화(元靑花)"를 둘러싼 논쟁 (0) | 2008.11.05 |
---|---|
사모무(司母戊) 정(鼎) 출토의 진상 (0) | 2008.10.21 |
"중화제일룡(中華第一龍)"에 얽힌 이야기 (0) | 2008.03.07 |
송나라 오대명요의 명품도자기들 (0) | 2007.06.14 |
중국골동품 감정의 흑막 (0) | 2007.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