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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수호전

무송(武松)은 사나이인가?

by 중은우시 2007. 10. 1.

글: 독서삼미

 

무송(武松)이라는 인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거의 <<수호지>>의 등장과 더불어 굳어져버린 것같다. 절대로 사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송의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것은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민간전설에서의 무송을 <<수호지>>의 무송으로 대체해서 생각하기 때문이고, 민간전설의 무송과 수호지의 무송은 서로 별개이다. 만일 작품은 작품이고 인물은 인물이라는 각도에서 본다면,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이 사나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점에서 의문스럽다: 과연 사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은(施恩)을 위하여 쾌활림(快活林)을 빼앗아 오는데, 무송은 힘을 다했다. 그는 시은에게 살인방화를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다. 무송이 시은을 도운 것은 실제로 살인방화를 도운 것과 차이가 없고, 조금 문어적으로 표현한다면 조주위학(助紂爲虐)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시은은 쾌활림에서 주점을 열었는데, 실제로 정상적인 거래는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무예와 영안의 팔,구십에 이르는 죄수들에 의지하여, 쾌활림에서 두목으로 군림한 것이다. 그러면서 백십곳의 객점, 이삼십곳의 도박장, 환전장이 누구도 그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손님이나 기녀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시은을 만나본 후에 시은이 다시 각 점포나 도박장으로 분배했다. 그리고 점포나 도박장은 매월 시은에게 "보호비"로 이삼백냥은자를 납부해야 했다.

 

봐라. 시은이라는 이 지두사(地頭蛇)는 바로 오늘 날의 조폭세력이 아닌가. 그러나, 좋은 시절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장문신(蔣門神)이 온 이후에 시은은 제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첫째는 장문신의 무예가 시은보다 높았다. 그래서 시은은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조폭세계라는 것이 왕왕 이렇다. 누가 더 세고, 누가 더 강한가에 따라 두목이 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시은의 부친인 시관영의 상사인 장단련(張團練)이 바로 장문신의 결의형제였다. 관직이 한급이라도 높으면 그걸로 누를 수 있는 것이다. 장단련이 장문신을 감싸고 있는 한, 시은은 보호막이 없다고 보거나 그의 부친의 보호막이 무력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억울하지만 자리를 장문신에게 양보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분명히 이 쾌활림은 장씨의 것도, 시씨의 것도 아니다. 시은과 장문신의 갈등은 어찌되었던 관청과 결탁한 조폭세력들간에 물고 물리는 다툼에 다름아닌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누가 정(正)이고 누가 사(邪)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반백성들의 말을 빌리면 자라 두 마리를 고아도 맛은 같다. 둘 다 좋은 놈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송이 시은을 위하여 쾌활림을 빼앗아온 것이 무슨 정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의 이러한 무원칙적인 가담은 협의정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가 나선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시은이 베푼 자그마한 은혜에 감복하여, 사나이인 척 한 것일 뿐이다.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채무에는 주인이 있다는 좋은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은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호에서 생활하는 사나이들은 이 점을 믿는다. 이 점은 그들이 협의를 행하는 하나의 숨은 철칙처럼 되어 있다. 이 숨은 철칙을 어긋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한다. 그런데, 무송은 이런 숨은 철칙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것이다. 그가 복수를 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다. 그러나, 혈천원앙루(血鴛鴦樓)에서 연속 15명을 죽였는데, 무고한 사람들까지 얼마나 많이 포함되었는가. 이러한 행동은 사나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강도보다도 못한 짓이며, 그저 마귀의 짓거리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시은을 위하여 쾌활림을 빼앗아 오는 것이 원칙은 없더라도 그래도 약간의 사나이의 기개는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원앙루를 피로 물들인 사건에서는 무송에게 이러한 점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고, 그저 암당무광(暗淡無光)일 뿐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무송이 사나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왜 그는 사람들을 죽인 후에 벽에다가 "살인자는 호랑이를 죽인 무송이다"라고 썼겠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하기 간단하다. 무송이 일곱번째 사람을 죽인 후에 이런 말을 한다: "한번 했으면 끝장을 보는 것이다. 백명을 죽이더라도 한번 죽는 거다" 분명히 무송이 자기의 이름을 남긴 것은 첫째는 이렇게 함으로써 화를 푼다는 점이고, 둘째는 복수를 위한 것이고, 사람을 많이 죽였으므로 붙잡혀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서가 흥분되어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당시의 미친듯한 심리상태로 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기준은 사람이 사나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그가 "호색한"인가 아닌가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송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송이 사나이인 이유는 그가 반금련의 유혹에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반금련의 유혹앞에서도 무송은 확실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전제를 잊어서는 안된다. 반금련은 그의 형수라는 점이다. 자기의 형수를 존경하는 것은 자기의 형을 존경하는 것이다. 특히 부모가 없는 경우에 형수는 모친과 비슷하다. 이런 관념은 봉건시대에 더욱 강했다. 그래서 무송의 반금련에 대한 태도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도덕인 것이고,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이것만 가지고 그를 사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송이 사나이라고 하는 것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호랑이를 때려잡은 쾌거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호랑이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무송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저 힘이 셌다는 것뿐이다. 한발 물러서서 말하더라도 무송의 호랑이를 잡으러 가는 길은 그저 술김에 간 것일 뿐이고, 억지로 밀려서 간 것이다. 만일 맑은 정신이었다면 100% 호랑이가 지키고 있을 장소 즉 죽을 장소인 경양강에 그가 갔을 리는 없는 것이다.

 

사실 그가 경양강으로 올라간 것이 사나이라는 증거일까? 만일 호랑이가 그를 잡아먹었다면 누가 그를 기억하겠는가. 그저 일개 필부라고 여길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백성을 위하여 위해를 제거하기 위하여 경양강에 올랐다면 의미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비록 호랑이에 잡아먹혔다고 하더라도 사나이는 사나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그러나, 김성탄이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호지는 어쨌든 소설일 뿐이다. 문학예술적인 이미지의 무송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르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무송을 읽을 것이다. 무송이 사나이인가 아닌가? 이것은 각자의 판단에 따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