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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수호전

수호지의 남자들은 왜 이상한가?

by 중은우시 2008. 10. 27.

글: 위금계(衛金桂)

 

수호지에 남자가 있는가? 내가 이렇게 물으면, 아마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108명의 사나이들중에 여자는 몇명이 없다. 나머지는 전부 남자들이 아닌가? 나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남자로서 약간 이상한 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대부분 마누라를 두지 않았는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성년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천성이다. 속담을 빌리자면 개가 자라면 자연히 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호지의 남자들은 왜 대부분 마누라나 첩을 두지 않았을까? 그들은 곳곳에서 강도짓을 하고 다녔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야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잣집의 규수들도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믿지 못하겠다. 그녀들의 하늘하늘한 아름다움, 교태어린 말투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나는 송나라때의 남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는지를 의심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금방 이런 생각을 버렸다. 고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충의 처를 취하려 했고, 서문경은 우리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도호(鄭屠戶, 노지심에게 맞아죽은 사람)의 곁에도 여인이 무리지어 있었고, 중인 임여해(林如海)도 밥이나 축내는 인물은 아니었다...이로써 볼 때, 그 당시의 남자들의 심리나 생리는 모두 정상이었다.

 

마누라들은 왜 모두 흡인력이 없는가?

 

반금련은 별론으로 하자. 이 불쌍한 여인은 소똥에 꽂은 예쁜 꽃과 같으니, 바람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양웅(楊雄)은 망나니이다. 그런데, 반교운(潘巧雲)은 그에게 시집간다. 그러니, 처음에 그의 직업을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남자로서의 기운이 넘치고, 절대 중인 배여해에 못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교운은 늙은 중과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었다. 양웅이 반교운의 오장육부를 나무에 걸어두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아마도 스스로 비참하게 생각되어 극악한 짓거리를 하게 된 것일 것이다. 송강이 양산에 올라 급시우로 존경받게 되는 거은 이 많은 사나이들을 관장할 수 있고, 그 많은 돈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성공남자의 기본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처인 염석파는 장삼과 놀아난다. 이는 송강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자기의 마누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사나이들중에는 마누라를 가진 경우도 여럿 있다. 모야차(母夜叉), 호삼랑(扈三娘)과 모대충(母大蟲)과 같은 괴물들이다. 남자들보다도 흉맹하고, 거칠다. 이런 마누라들이 남자의 흥미를 끌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들은 그저 '형제'로 칠 뿐이다.

 

수호전에 나오는 남자들은 아무도 자식을 두지 못한 것같다.

 

마누라가 없는 사람이야 그만이라고 쳐도, 마누라를 취하고도 아들 딸을 하나도 두지 못하였을까? 옥시 내가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나 부주의하여 빠트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주 유감이다. 사나이의 사업이라는 것은 대대로 계승해야 한다. 후계자가 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런데도,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생리적으로 문제가 있는가? 이것도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더 이상은 추측하지 않겠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주제로 돌아와서 제대로 얘기해보자.

 

수호전의 작가인 시내암(施耐庵)의 이력을 약간만 주의해본 독자라면, 이 자는 관료로서의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파락호, 떠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다보니, 자연히 대갓집 규수들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자신은 진사로서의 자부심은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먹을 수 없는 포도는 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는 소설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시내암 진사는 여자의 머리에 똥물을 끼얹었으니, 남자들의 불알을 까는 일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분투해야 하고, 항쟁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하더라도 여자를 가지고 성질을 부려서는 안된다. 아무리 폄하하고, 여자들을 화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좋다. 그래도 여자들은 강한 남자를 도와서 천하를 얻고, 강한 남자를 도와서 천하를 망하게도 한다.

 

3.18사건의 사료를 읽다보니, 단기서의 병사들이 여학생을 공격했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 마을에 예쁘기로 유명한 여선생이 있었는데, 문혁때 이런 일이 있었다. 마을의 남자들이 그녀를 욕하는 말은 거의 모두 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떻게 역겹고 어떻게 욕을 하는지 마치 그녀는 천하에서 가장 못생기고, 가장 음탕하고, 가장 악독한 것같았다. 사실 그녀는 그저 보통의 여선생이었을 뿐이다. 나중에 그녀가 아주 비참하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후에 그 곳에 있지 않았으니까?

 

얻지 못하겠는 것은 밟아서 죽여버린다. 이것이 바로 여자를 능멸하는 논리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당당한 이유를 내세우더라도, 그들이 여자를 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