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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수호전

수호전 옥의 티: 원나라때 발명된 화포가 송나라때 등장하다

by 중은우시 2007. 7. 25.

 

 

글: 상산지자(常山之子)

 

수호전 양산박의 108호한중에 굉천뢰(轟天雷) 능진(凌振)이라는 자가 있다. 원래 경성의 군관인데 나중에 양산박에 투항하였다. 책에서는 '이 사람은 화포(火砲)를 잘 만들어 14,5리를 보낼 수 있으며,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졌으며, 산이 무너지고, 돌이 갈라졌다'고 썼다. 그리고 시를 지어 칭찬하기를 "강한 불이 뿜여져 나올 때 성곽이 부서지고, 대포연기가 흩어질 때 귀신도 두려워한다. 금륜자모가 하늘을 울릴 때, 포수의 명성이 사백주에 떨친다"

 

포는 원래 포(抛, 던진다)라는 의미이다. 기원은 주(周)나라때이다. 일종의 지렛대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돌맹이를 던져서 적군에게 타격을 가하는 기계를 말하였다. 800년경의 당나라때, 술사들은 연단을 하다가 화약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화약을 전쟁에 활용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북송에 이르러 사람들은 돌화창(突火槍)을 발명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형의 화기였다. 안에는 "자소(子巢)"를 채워서 전투시에 화약에 불을 붙여 불로 적을 태우는 역할을 하였고, 적군을 놀래주는 작용을 하였다. 이런 화기의 출현은 근대화포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원나라에 이르러,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화포를 발명하였다. 중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원나라 지순3년(1332년)에 제조한 청동주포는 무게가 6.94킬로그램, 길이가 35.3센티미터이며 포의 직경은 105밀리미터이고, 포신에는 '지순3년3월길일수추토구군제300호마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포의 꼬리부분에는 두개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이는 이축(耳軸)을 설치한 곳이다.

 

중국의 명나라때는 "병장(兵仗)", "군화(軍火)"의 두개 부서를 두어 화기를 제조하였고, 정덕년간에서 가정년간까지(1506-1566)만 하더라도 수십종의 화포를 제작하였다. "호준포(虎蹲砲)"는 철조(鐵爪)로 후좌(後座)를 고정시켜, 사격시 후좌는 5촌에 불과했고, 작은 납탄(鉛彈) 백개이상을 장전할 수 있었다. "공융포(攻戎砲)"는 수레에 싣고 발사하는 것이어서, 말이나 당나귀를 이용하여 끌고다닐 수 있었고, 철묘(鐵錨)로 후좌를 고정시켰다. "무적대장군포'는 무게가 천근이고, 수레에 싣는 것이었으며, 철자(鐵子) 500개를 장전할 수 있었으며, 20여장의 넓이를 타격할 수 있었다. "독화비포(毒火飛砲)"는 폭파탄을 발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포탄은 쇠로 주조하여 가운데를 비웠으며, 안에는 화약이나 기타 약제를 장전하였고, 약선을 죽관의 안에 도화선으로 만들어 설치했다. 발사시에는 탄환을 포탄에 넣고, 먼저 도화선에 불을 붙이며, 나중에 포관내에서 불이 뭍어 탄약이 발사되는 것이다. 탄환은 목표지점에 도착한 후 터진다.  당시 몽골대군이 유라시아대륙을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사용했던 화포와도 무관하지 않다.

 

수호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북송 선화연간의 일인데, 그 시대에는 화포는 발명되지 않았고, 당연히 능진과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