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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원)

몽고의학(蒙古醫學)의 발전과정

by 중은우시 2007. 9. 20.

 

 

몽고의학은 몽고족들이 전통적인 의료실무경험을 기초로 티벳의학과 고대인도의학의 일부기초이론과 중국의 한의학이론을 흡수하여 형성된 독특하면서도 나름의 체계를 지닌 의학시스템이다.

 

13세기초, 징기스칸이 몽고족들이 대제국을 건설한 후, 다른 민족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중원의 한족, 인도, 아랍, 유럽의 국가와도 통상을 하고 문화를 교류하였다. 몽고족들의 경제문화도 대거 발전하여, 수공업이 발생하고, 몽고문자도 나타났다. 티벳의학자인 우토.원단공부(宇妥.元丹貢布)가 저술한 <<사부의전(四部醫典)>>에는 "몽고구(蒙古灸)"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우토.원단공부전략>>이라는 책에서는 "몽고방혈요법(蒙古放血療法)"이 언급되어 있다. 일년내내 초원을 내달리는 몽고인들은 자주 전상(戰傷), 골절상, 타박상등의 상처를 입었다. 그들로서는 이러한 증세를 치료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정골(正骨), 정뇌(正腦) 요법은 초기 몽고의술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였다. 그리고 상구(傷口)에 대한 "소작요법(燒灼療法)"도 있고, 중상자에 대한 "복엄요법(腹療法, 이는 소나 낙타의 배를 가른 후, 중상을 입은 사람은 집어넣어 그 온도를 이용하여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도 있다.

 

원나라때는 음식요법(飮食療法)이 비교적 시스템적으로 종합되고 발전되었다. 저명한 원나라의 궁중음선태의(飮膳太醫)이며 몽고족 영양학자인 후스후이(忽思慧)가 저술한 <<음선정요(飮膳正要)>>에는 대량의 몽고족 음식위생과 음식요법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상용의 말젖, 소의 골수, 유락(乳酪) 및 영양위생에 관한 내용이 이 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은 의학영양학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몽고족과 한족의 의약은 서로 일찍부터 교류가 있었다. 수나라때 소원방(巢元方)의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는 북방민족의 의료위생지식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많은 북방소수민족 의학자들은 중국의학을 연구하는데 노력했고, 이를 몽고지역에 전파했다. 예를 들면, 송나라의 <<성제총록(聖濟總錄)>>은 남송에서는 이미 실전되었는데, 나중에 북방민족이 보관한 초본(抄本)을 통해서 나중에 보존되게 된다. 요나라때의 야율서성(耶律庶成)은 한의학의 책을 소수민족문자로 번역하여 널리 전파했다. 그리고 직로고(直魯古)가 쓴 <<맥결침구서(脈訣針灸書)>>는 중원지방에서도 아주 중시되어, 명나라때 진제(陳弟)가 편찬한 <<세선당장서목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원나라때 몽고의학자인 사투무수(沙圖穆蘇)는 한문으로 <<서죽당경험방(瑞竹堂經驗方)>> 15권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는 몽고의학의 일부 특징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풍한습비(風寒濕痺)를 치료하는 처방이 아주 많다. 이 책에 기재된 처방은 수백개에 달한다. 그중에 어떤 처방은 실용적이면서 효과가 있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팔진산(八珍散)>>, <<사미향부환(四味香附丸)>>등의 처방전이 모두 이 책에서 나왔다. 사막에서 생장한 지금초유즙(地錦草乳汁)으로 창상(創傷, 찢긴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지금도 여전히 응용되고 있다. 삼림지대의 몽고인들은 초약(草藥)에 대한 지식이 아주 풍부했다. 예를 들어 14세기에 라시드 딘이 저술한 <<사집(史集)>>에 의하면, "우라수티(兀剌速), 테랑구티(帖良古)와 커스더미(客思的迷)등의 몽고부락의 사람들은 몽고약제에 대하여 잘 알 뿐아니라, 몽고치료법, 의학, 병에 아주 이름이 높았다"

 

몽고족이 한족, 아랍인, 인도인, 유럽인들과 교류하면서 계속 발전했다. 몽고의 약제가 중국과 외국으로 전파되었다. 동시에, 중국과 외국의 약제들이 몽고지역으로 흘러들었다. 이리하여 몽고의약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14세기, 몽고족번역가 사라부승거(沙拉布僧格)는 고대인도의 거작인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을 위구르글, 티벳글에서 몽고글로 번역했다. 이 책의 제24장에는 <<성심팔부의법비서(聖心八部醫法秘書)>>에서 발췌한 "허의(赫依)), 시라(希拉), 바다간(巴達干)으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과 취합성질병을 치료하는 이론"이 게재되어 있었다.  고대인도의학의 일부기본이론이 처음으로 몽고지역에 소개된 것이다.

 

16세기, 명나라 중,말엽에 티벳라마의 황교(黃敎)가 몽고에 전파되면서, 티벳의학도 몽고지역으로 들어왔다. 1576년, 티벳의학의 경전적인 저작인 <<사부의전(四部醫典)>>이 몽고에 전래되었다. 인도불교의 거작인 <<단주이경(丹珠爾經)>>은 17세기말에 몽고문자로 번역되었는데, 그 안에는 고대인도의학의 거작인 <<수명폐타(壽命吠陀)(八支心要集)>>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몽고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몽고의학은 티벳의학과 고대인도의학의 음양, 오원학설(陰陽,五元學說)을 기초로 한, 허의, 시라, 바다간이론과 칠요소이론 및 중국의학지식을 받아들여서, 몽고지역의 특징과 민간요법을 결합시켜서 창조적으로 개조하고 발전시킨다. 18세기에 이미 한열이론(寒熱理論)을 위주로 한 이론체계가 정립된다. 많은 몽고족 의학자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사부의전>>에 주석을 달고 보충을 하거나 다른 의학저술을 만들어, 몽고의학의 발전에 공헌한다.

 

원래 <<사부의전>>에서는 한열증(寒熱症)에 대하여 비록 "모든 질병을 정리하자면 한,열 두 종류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는 했지만, "한증(寒症)"에 대한 별도의 기술은 없었다. 18세기 몽고족 의학자인 이시바라지르(伊希巴拉吉爾)는 <<사부의전>>의 이론을 한증(寒症)이 많이 발생하는 몽고지역의 특징 및 몽고전통의학의 "한증이론"을 결합시켜, 그가 저술한 <<감로사부(甘露四部)>>에서 "한증" "열증"의 두 장을 십요증(十要症)의 첫머리에 두었다. 그리고 "한열상박(寒熱相搏)", "한열호상전화(寒熱互相轉化)"등의 장을 두어 "한열증이론"을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육기증(六基證)에 관하여, <<사부의전>>에서는 그저 한,열 두 종류만 언급했고, 기증(基證)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시바라지르는 <<감로지천(甘露之泉)>>에서 생리, 병리, 진단, 치료원칙과 방법등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설파했고, "허의병, 시라병, 바다간병의 3가지 병의 위에 혈병(血病), 황수병(黃水病), 충병(蟲病)의 세 가지를 더하여 육기증이라 한다"고 적었다. 또한 <<감로점적(甘露點摘)>>이라는 책에서 이시바라지르는 각종질병의 임상을 기술하는 외에, 복설제(腹泄劑)등 7종의 요법(療法)과 온천욕(溫泉浴)등 5가지 술요(術療)를 기술해 육기증 이론을 보충해주었다.

 

외과분야의 이론과 기술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청나라때 몽고의사이며 뛰어난 수술가인 추르지모르근(綽爾濟墨爾根)는 사지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관절탈구, 골절등을 치료하여 원래처럼 회복시켜주곤 하였다. 같은 시대의 몽고의사인 줴로.이상어는 빙동마취법(氷凍麻醉法)을 사용해서, 분쇄골절이 일아난 부분을 열어서 뼈를 맞춘 후 상백선으로 봉합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는 많은 제자를 받아들였는데, 의술전수에 있어서 아주 엄격하게 훈련시켰으며 공헌이 ㅌ텄다. 옹정6년(1728년) 러시아에서도 사람을 보내어 그로부터 몽고정골술(蒙古正骨術)을 배우고자 하였다. 이시바라지르는 몽고정골술, 창상의치술(創傷醫治術)등 전통의료경험과 이론을 결합하여 많은 글을 썼다. 예를 들면, <<감로사부>>에서 그는 상세하게 "창상의치술" "골상요법" "탈구복위술"과 "뇌진탕요법"등의 이론과 실무를 포함시켰다.

 

질병의 진단측면에서, <<사부의전>>의 이론기초를 이루는 것은 문(問), 망(望), 절(切)의 삼진(三診)을 위주로 한 진단학이었다. 18세기, 로부의 승려인 수러허무(蘇勒和木)이 쓴 <<맥진개요(脈診槪要)>>와 이시바라지르의 <<감로지천>>의 "진단지법"의 장에 언급된 "절맥(切脈), 검뇨(檢尿), 문진(問診), 경험에 의한 진찰, 사취진찰(舍取診察)"의 다섯 가지 진찰법을 제시했다. 이시바라지르의 <<백로의법종신(白露醫法從新)>>의 외상과 탈구에 대한 진찰법, <<감로점적>>의 "몽고정뇌술"등은 모두 전통적인 질병진단방법과 이론이 서로 결합되어 나온 것이었다. 또한 루보상췌인보러의 <<몽의약선편(蒙醫藥選編)>>, 지그무더단진자무수의 <<관자지희(觀自之喜)>>, 이시단증왕지라의 <<산호험방(珊瑚驗方)>>등의 책은 모두 질병의 진단에 대하여 별도의 기술을 하고 있다. 의료기술이 제고되면서 이론체계도 더욱 완비되었다. 인체구조와 질병종류도 점차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시바라지르의 <<백로의법종신>>은 각과의 임상경험을 위주로 한 저작이었는데, 내과, 열병과, 전염병과, 오관과, 장부병과, 부과, 아과, 잡병, 태창, 외상, 돌발병 및 각종중독증등 13개의 큰 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맥진, 뇨진, 복사제, 맥사제, 구토제, 배약필수사항, 약물포제법, 침구방혈혈위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몽고인들은 수백년전에 흑사병의 전염원중의 하나가 한달(旱獺)이라고 알고 있었다.

 

의학교육측면에서, 옛날의 의학교육은 할아버지, 아버지대로부터 아들, 손자대로 이어지는 것이거나 아니면,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는 것이었다. 나중에 명말청초에 이르러 추르지모르근, 이상어등의 명의들이 제자를 거두기 시작했다. 17세기이후, 라마황교가 전파되면서 몽고각지에는 사묘를 건립하는데, 큰 사묘들에는 "만라라창(滿巴拉倉)"이라는 몽고의학학교를 두어서, 조직적이고 시스템적인 의학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이 학교는 비록 사묘에 속해 있기는 하고, 불교교육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며, 도제가 모두 라마였지만, 당시의 역사발전단계에서는 의학교육의 기지로 되었고, 몽고의학이 발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근대의 저명한 몽고의학자들은 이런 학교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참고] 몽고의학의 이론체계

 

몽고의학의 이론체계는 음양(陰陽), 오원(五元), 삼근(三根), 칠소(七素), 삼예(三穢)가 생리, 병리, 진단, 치료의 이론기초를 이루었다.

 

몽고의학은 자고이래로 음양변화의 상호관계로 인체의 조직구조, 생리공능, 병리변화와 질병의진단, 치료의 원칙으로 삼았다.

 

오원학설은 몽고의학이론체계의 주요부분인데, 각각 흙(土), 물(水), 불(火), 기(氣), 공(空)에 속한다는 것이다. 몽고의학은 인체는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이고 각 부분들간에는 밀접한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런 상호연결과 구성은 모두 이 오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삼근은 인체는 생명활동을 진행하는 3가지 에너지와 기본물질- 허의, 시라, 바다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삼근의 공능은 정상적인 생리활동에서도 나타나지만, 이상적인 병리변화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칠소는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데, 음식정화(飮食精華), 피(血), 살(肉), 지방(脂肪), 뼈(骨), 골수(骨髓) 및 정액(精液)이 그것이다. 칠소는 유기체의 내부운동에서 음성(陰性)의 범위에 속하며, 인체의 두번째특성을 나타내는 작용을 한다. 칠소의 내부에도 모순운동의 요소가 존재한다.

 

삼예는 인체가 음식물을 먹고 양분을 흡수한 후 (1) 오물(汚物), 잔사(殘渣, 지꺼기)는 대변(大便)의 형태로 체외에 배출하고, (2) 인체내의 쓸모없는 것은 오줌의 형태로 체외에 배출하고, (3) 땀은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 작용을 한다.

 

병리학은 음양학설응 위주로 하여 인체기본조직을 오원,삼근,칠소의 상호작용을 기초로 하여 발병원인, 요소, 병변과정을 연구하고, 병인, 발병부위및 질병본질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진단학은 몽고의학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이는 몽고의학의 기초이론을 근거로 하여, 임상실무를 하는 분야이다. 기초이론하에서 문, 망, 절의 삼진방법으로 진단하는데 질병의 객관적인 모습과 내재적인 병변의 관계를 중시하며, 질병의 진행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진단하는 것을 중시한다.

 

몽고의학은 자기의 이론체계에 따라, 인체의 형성, 생장발육, 노쇠, 사망등의 생명활동의 규칙을 연구했다. 이러한 기초하에서 병을 예방하고,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일을 연구했다. 어떤 의학이론도 모두 임상실무에서 발생하여, 다시 임상실무를 지도하게 되는 것이다.  몽고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길고긴 역사발전과정에서 질병과 투쟁하면서 얻어낸 풍부한 전통의료실무경험을 쌓아서 독특한 민족의학이론체계를 완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