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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완령옥(阮玲玉)의 유서

by 중은우시 2007. 6. 5.

 

 

1935년 3월 8일 완령옥(阮玲玉)은 상해 신갑로(新閘路) 심원촌(沁園村)의 집에서 대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완령옥은 중국 초기의 영화스타이다. 원명은 완봉근(阮鳳根)이고, 학명은 완옥영(阮玉英)이고, 광동성 중산현의 사람이다.

 

그녀는 1910년 상해에서 출행했는데, 노동자였던 부친은 일찌감치 사망했고, 어려서부터 모친을 따라 남의 집에서 일을 해주면서 살았다. 모친은 입고 먹을 것을 아끼면서 그녀를 공부시켰고, 그녀는 상해숭덕여자중학에서 공부한다. 1926년에 자립하여 상해명성영편공사에 취직하고, 처녀악 <<과명부부>>를 찍으면서 영화계에 들어온다.  이후 그녀는 모두 29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1930년대 가장 빛나는 여자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완령옥이 16살 되던 해, 장씨집안에서 일하던 그녀의 모친은 집주인에게서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났는데, 집주인아들인 장달민이 그녀들을 도와주었다. 그후, 완령옥은 학교를 중퇴하고, 장달민과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동거에 들어간 후에 장달민은 한푼도 완령옥 모녀에게 도와주지 않고, 계속하여 완령옥에게 손을 내밀고, 그 돈으로 다른 여자와 도박에 탕진한다. 심지어 몇 번은 집에 있는 돈을 몽땅 들고 도망친 적도 이썼다. 완령옥은 그럼에도 장달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그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렸고, 그와 결혼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장달민은 공개적으로 자기는 완령옥의 미모에만 관심이 있고, 첩으로 생각하지 결혼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장달민의 행위는 완령옥의 꿈을 깨뜨렸고, 완령옥이 한번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에 그치고 만다. 이후 상해탄의 차상(茶商)인 당계산이 기회를 틈타 완령옥에게 접근한다. 완령옥은 당계산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장달민과 헤어진 후 당계산과 동거에 들어간다. 동거후에 당계산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심지어 당계산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완령옥을 구타하기까지 한다.

 

더 이상 사랑에 환상을 갖지 못하게 된 완령옥은 당계산을 벗어나려고 준비한다. 완영옥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신여성>>이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인 채초생(蔡楚生)과 사랑의 불꽃을 태운다. 장달민은 완령옥의 인기가 높은 것을 보고는 신문기자들과 결탁하여 있는일 없는일을 모두 떠벌이고, 완령옥과 당계산을 가정파괴죄로 고소하여, 완령옥이 당계산과 결탁하여 도망쳤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상해의 길거리마다 완령옥에 대한 각종 이야기가 퍼진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당계산은 오히려 완령옥을 질책한다. 그러자, 그녀는 채초생을 찾아와서, 함께 상해를 도망쳐서 결혼하자고 한다. 그러나, 고향에 처가 있던 채초생은 깜짝 놀라서 거절한다. 완령옥이 알고 있는 세 남자는 한 명은 핍박하고, 한 명은 비난하고, 또 한명은 도망치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끝에 죽고 만다. 완령옥이 음독한 후, 당계산과 완령옥의 모친은 그녀를 일본인병원으로 데려간다. 마침 새벽이라 담당의사가 없었고, 완령옥의 모친은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하나, 당계산은 다른 병원에 가면 완령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되면 명예가 실추된다고 하여 거절한다. 이렇게 중요한 몇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일대의 은막스타는 세상을 떠난다. 

 

남아 있는 자료에 의하면, 1935년 3월 8일은 완령옥이 원래 소주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9일 오후에는 법정에 나가서 당계산과의 이혼소송에 출석하게 되어 있었다. 3월 7일 밤, 완령옥은 감독 여민위가 개최한 연회에 참석하였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신문팔이들이 아무렇게나 뭐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이 가장 괴롭다" "법정에 나가는 것은 무섭지 않다. 무서운 것은 마침 토요일이므로, 방청하는 할일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 것이고, 그게 걱정이다" 이런 말로써도, 당시 그녀가 받은 심리적인 타격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그녀가 죽고나서 남편인 당계산이 내놓은 유서는 소위 "인언가외"유서였다. 그러나, 나중에 다른 곳에서 두 개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후에 발견된 유서가 아마도 더욱 완령옥이 친히 쓴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앞의 "인언가외" 유서는 당계산이 위조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언가외" 유서

 

나는 죽지 않으면,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밝힐 수 없다. 나는 지금 죽는다. 그가 바라는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백인(伯仁)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백인은 너때문에 죽었다. 장달민(張達民), 나는 네가 어떻게 이 여론을 피하는지 보겠다: 너는 이제 더 이상 당계산(唐季珊)을 무고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나를 죽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한번 죽으면, 사람들은 내가 지은 죄가 겁나서라고 할 것이다. 사실, 내가 두려워할 죄가 뭐가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나는 장달민에 대하여는 조금도 미안한 것이 없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그와 동거를 벗어날 때만 보더라도, 매월 그에게 1백위안을 주었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증거가 있고 영수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고, 은덕을 원한으로 갚았다. 게다가 바깥 사람들은 사실도 모르고, 내가 그에게 잘못한 줄 알고 있다. 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죽는 방법밖에는 없다. 아. 내가 죽는 것이야 뭐가 아쉽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의 말은 무섭다. 사람들의 말이 무서울 뿐이다.

 

새로 발견된 유서

 

1. 장달민: 나는 네가 핍박해서 죽는 것이다. 누가 믿어주겠는가. 너는 내가 너와 헤어진 후, 매월 너에게 100위안씩 보조해준 것이 생각나지 않는가? 너는 정말 양심도 없다. 지금 나는 죽는다. 너는 아마도 만족하겠지. 사람들은 내가 지은 죄가 두려워서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내가 두려워할 죄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너희 두 사람의 쟁탈품이 되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울 필요도 없다. 나는 더 살지 않을 것이다. 회개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 당계산: 네가 "XX(梁賽珍)"에게 빠지지 않았다면, 네가 그날 저녁에 나를 때리지 않았다면, 오늘 또 나를 때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 장래에 분면히 사람들이 너는 여자를 데리고 논 악마라고 말할 것이다. 더더욱 나를 영혼이 없는 여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미 세상에 없을테니, 너 혼자 견뎌봐라.

 

과거의 직운(織雲, 장직운, 당계산의 전처), 오늘의 나, 내일은 또 누구일까. 네 스스로 알면 됐다.

 

나는 죽는다. 나는 너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네가 모친과 어린아이(완령옥의 양녀)를 잘 대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연화(聯華, 완령옥이 일하던 영화회사)는 나에게 2050위안의 급여가 밀렸으니, 그녀들을 부양하는 비용으로 쓰고, 정성껏 그녀들을 돌봐 주어라. 왜냐하면 그녀들은 너밖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기쁘다.

 

영옥절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