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자(方舟子)
(* 최근들어 중의학-한의학-이 가짜과학이라는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방주자의 글입니다)
중국전통의술이 시종 억측과 경험 사이를 배회하고, 과학의 문으로 진입하지 못한 아주 중요한 하나의 원인은 인체해부학지식의 결핍에 있다. 중국고대의사들은 그저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의학서적을 외우는데만 열중했지, 시체를 해부함으로써 인체의 기관에 대하여 실제로 관찰해야하는 필요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었다. 비록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라는 우매한 관념으로 인하여 감히 시체에 대하여 칼을 직접 대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18세기말 왕청임(王淸任)이라는 의사는 쉽지 않게 "의학서적에서 장기에 대하여 명확히 적지 않았는데, 이 어찌 바보가 꿈꾸는 것과 같이 않은가. 병을 치료하는데, 장기를 정확히 모른다면 맹인이 밤길을 걷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도 그저 야외에 버려진 아이의 시체나, 사형현장에 가서 인체해부구조에 대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진정으로 해부를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서의 일부 잘못을 바로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새로운 잘못을 추가하였다. 게다가 이것은 순수한 개인적인 행동이었고, 계승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 서양에서는 이미 해부학이 창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고시대의 중국의사들은 분명히 시체에 대하여 해부를 해보았다. 왜냐하면 <<내경(內經)>> "만일 무릇 팔척의 사람이라면...죽은 후 해부하여 볼 수 있다(其死可解剖而視之)."라는 말이 있다. 이 내용 및 <<난경(難經)>>에서 일부 인체기관의 형태, 크기와 중량에 대하여 모두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해부해서 얻은 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체에 대하여 해부를 해보게 되면, 사람의 몸 속에 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즉, 혈관과 신경줄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중의학서적에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묘사도 없는가? 사실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즉, 경락(經絡)이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경락이 특이공능을 지닌 고대인이 "내시반관(內視反觀, 안을 들여다보고 거꾸로 봐서)"으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경>>을 보면 명확히 적고 있다. "만일 무릇 팔척의 사람이라면, 피부와 살이 여기 있고, 밖에서 헤아려서 얻을 수 있고, 죽으면 해부해서 볼 수 있다...맥의 장단, 피의 청탁, 기의 다소, 십이경의 피가 많고 기가 적은 것가 피가 적고 기가 많은 것, 그리고 혈기가 많은 것과 혈기가 많은 것등을 모두 개략 헤아릴 수 있다" 즉, 경락은 살아있는 사람의 겉모습과 시신의 해부를 통해서 발견했다는 취지이다. 십이경맥중 모두 피가 포함되어 있으며, 단지 안에 있는 피가 맑은지 탁한지 많은지 적은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소위 경맥이라는 것이 결국은 혈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내경>>에는 또한 "맥(脈)이라는 것은, 피의 집(血之府)이다"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이후의 중국의학서적에서는 자주 "피는 기를 따르고, 경락을 순환한다" "피는 경맥을 돈다(血循經脈)"의 말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왕청임은 "고대인들이 경락이라고 말한 것은 혈관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내경>>에는 또한 이렇게 적고 있다. "경맥 열두개는 살의 사이를 숨어서 지나가므로,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여러 맥의 뜀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모두 경맥이다" "헤아릴 수 있는 것은 경(經)이요,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낙(絡)이다" 이로써 볼 때, 경락이라는 것은 피부와 살의 사이에 육안으로 보이는 관도로서 크고 숫자가 적은 것은 경맥이라고 하고, 작고 숫자가 적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낙맥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용어로 말하자면, 대혈관(동맥, 정맥)은 경맥이고, 피부아래의 소정맥은 낙맥이 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해부관찰은 아주 초보적이었으므로, 많은 것들은 상상에 의하였고, 혈관, 신경줄기, 임파선등등의 '선'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십이경맥의 분포, 방향 및 대혈관의 실제상황과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중의들이 맥을 집을 때, 집는 것은 십이경맥중의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이다. 그리고 맥을 집는데 뛰는 것은 바로 기의 운행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는 곳은 분명히 동맥이고, 소위 기의 운행이라는 것은 바로 맥박이 뛰는 것이다. <<내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숨을 내쉬면 맥이 두번 뛰고, 사람이 숨을 들이쉬면 맥이 두번 뛴다. 호흡을 멈추면 맥이 다섯번 뛴다" 이런 수치는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호흡과 맥박비율은 대략 1:4이다), 그러나 이는 소위 경맥이라는 것이 결국은 혈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맥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맥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의들은 경맥에 피가 흐르는 이외에 기가 흐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떤 경맥은 피가 많고 기가 적고, 어떤 경맥은 피가 적고 기가 많다고 한 것일까? 이것도 분명 초보적인 관찰로 인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 동맥속의 피는 금방 비어버리는데, 이로 인하여 시체를 해부할 때면 종종 맥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저 정맥에만 피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연구자로 하여금 동맥은 피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를 보내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도 이런 오해를 했었다. 동맥의 작용은 '기'를 보내는데 있고, 정맥의 작용은 '피'를 보내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동맥의 박동에 대하여 중의들은 이것을 기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사실은 이것은 심장의 박동이었다. '기'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동백은 대부분 신체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겨우 목의 양측과 손아귀와 발꿈치의 네군대에 있는 동맥이 비교적 얕고, 그래서 뛰는 것을 만져볼 수 있다. 그래서 왕청임은 이렇게 말했다: "머리와 사지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은 모두 기관(氣管)이다" 혈관이 다시 기관으로 오인된 것이다. 맥을 집는 것은 이리하여 중의들에 의하여 인체의 기혈(氣血), 장기(臟腑)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각종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부녀의 임신, 폐경까지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맥박의 중요성을 무한히 확대한 것이다. 맥을 집는 것의 황당함은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으면 말하기로 하자.
현대해부학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묘사한 경락도와 현대해부학에서 발견한 혈광, 신경의 분포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말하는 경락이라는 것이 현대해부학으로도 발견하지 못한 시스템이라고 하면서, 대량의 인적, 물적자원을 들여서 이 시스템의 물질적인 근거를 검증하고자 애썼다. 매번 잊을만하면, 누군가 나서서 현대생물기술로 경락의 존재를 입증했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방사선동위원소추적, 적외선변화, 전기저항측정, 고진동성등등. 이런 연구는 모두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경락순환'측량을 진행하는 것과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 모두 문제가 많다. 실험결과도 도저히 믿기 어렵고, 국제생물학계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생물의학문헌데이타를 뒤져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국제적인 정기간행물에 경락에 대한 연구논문은 아주 적고, 기본적으로 모두 중국인, 한국인들이 연구한다. 가끔 서양인들의 연구가 있기는 하나 경락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 누군가가 적외선측정으로 경락을 찾아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의과대학의 연구원은 이 결과를 다시 실험을 통해 반복해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침구의 유효성이 경락이론의 정확성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리는 잘못된 것이다. 많은 실험은 이미 침구는 신경계통의 자극을 통하여 그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고, "경락'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바로 한 임상의사가 지적하는 것처럼, 간단한 추리는 바로 이런 신비한 경락시스템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 외과의사들이 수술을 할 때 반드시 매 부분, 매 층의 신경해부와 혈관해부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만일, 신경, 혈관을 잘못 건드리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느 외과의사도 수술할 때, 경락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칼로 경락을 자르는 것도 걱정하지 않고, 혈도를 찌르는 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경락이라는 것이 자그마한 침으로 찌르기만 하여도 반응하는 것이라면, 왜 날카로운 수술칼로 건드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일까? 경락은 왜 수술칼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합리적인 답변은 바로 소위 경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락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하반신에는 6개의 중요한 경맥이 분포되어 있다. 각각 비(脾), 위(胃), 신(腎), 방광(膀胱), 간(肝), 담(膽)등 중요한 장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다리가 잘려진 경우도 적지 않게 보는데, 병자는 걷는데 문제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생리공능에서 일반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경락이론이 황당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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