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문학일반

일명(佚名) :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은우시 2007. 3. 11. 10:26

글: 채준(蔡駿)

 

소년시절 한동안 중국고전연의소설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삼국, 수호외에 비룡전전, 오호정서연의, 설악전전등등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은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이런 소설의 작자의 이름들은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작가는 "일명(佚名, 작자미상이라는 뜻)"이었다.

 

그 때는 아직 유치해서, "일명"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작자의 성명 또는 필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책들의 표지에는 모두 "일명 저(著)"라고 되어 있었다. 와...이 "일명"선생은 정말 대단하구나. 그렇게 많은 연의소설이 모두 그의 작품이라니 최소한 작품수에 있어서는 중국문학의 제1인자일 것이다. (사실상 "일명"선생은 확실히 문단에서 작품수량이 가장 많은 작가이다. 한번 검색해봐라 금방 가장 많은 작품의 작자가 "일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일명"은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일명"의 내력을 조사해보면, 왕왕 수백년전의 문학작품이 도대체 누구의 작품인지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작자 자신이 작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싶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경우 작자는 그저 "일명" 두자가 될 뿐이다.

 

중국문학중에 "일명"의 작품은 사실 시삼백(詩三百)은 기본적으로 모두 "일명"이다. 공자는 그저 편집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삼천년전으로 되돌아가서 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요조숙녀, 군자호구"를 누가 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산해경등 선진(先秦, 진나라이전)의 고문헌, 한육조의 악부, 당나라의 허다한 전기(傳奇), 송원의 많은 화본(話本), 명청의 각종 서명이 없거나 저자를 고증할 수 없는 연의소설등은 일일이 예로 들 수조차 없다.(그 중의 많은 책은 금서이다). 그렇게 많은 "일명"으로 된 작품은 중국문학사의 절반은 차지할 정도이다.

 

이 "일명"선생은 고대한어에 정통할 뿐아니라, 세계각국의 여러 국적도 지니고 있다. 서방문학도 마찬가지이다. 희랍이나 북유럽의 신화는 별론으로 하고, 유럽중세기의 사대사시(四大史詩): 니베룽겐의 반지, 롤랑의 노래, 시더의 노래, 이고르원정기등이 모두 "일명"선생의 걸작이다.

 

그리고 필자가 좋아하는 그 <<천일야화>>도 이야기를 쓴 사람은 가련한 국왕의 신부가 아니라, 그녀의 이불 속에 숨겨진 "일명"선생이다.

 

안타까운 것은, 근현대로 올수록 "일명"선생의 작품이 적어진다는 점이다. 오늘 날에는 이제 거의 그의 그림자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는 그저 옛날 종이나 이전의 경전에서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문학의 행운인가 불행인가?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바로 모든 고양이 모든 개가 곳곳에 자신의 냄새를 남기는 것처럼(그래서 개들이 곳곳에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인류가 동물때로부터 남겨진 본능이다.

 

그저 과거의 사람들은 자기의 냄새를 잘 보존하지 못해서, 혹은 감히 냄새를 후세에 남길 수 없어서, "일명"선생은 아주 신통력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많은 진정한 위대한 작품들은 확실히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다. 일생동안 조용히 살았던 카프카, 임종전에 친구에게 자기의 모든 작품을 불사르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그의 유언을 어기고, 우리가 그의 걸작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그의 친구가 유언에 따랐다면, 우리는 오늘날 카프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몇년 후 어느 지하실에서 불타다 남은 잔고를 가지고 아무런 작가의 이름도 없는 상황하에서 이처럼 카프카는 "일명"선생으로 승급되었을 지도 모른다.

 

천하의 무수한 이런 "일명"선생들은 바로 "일명"의 천재적인 지혜이기도 하고, 후세인들에게 많은 위대한 작품을 남겨주었다.

 

2,30년대의 어떤 젊은작가는 이름을 "폐명(廢名)"이라고 하였다. 이것도 "일명"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래 또는 이전에 혹시 "일명"이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은 없었을까? 그렇다면 천하의 이렇게 많은 위대한 걸작들은 모두 그와 동명이인인 작가들의 작품이 될 것이다.

 

아마도 나는 또 21세기의 "일명"선생 또는 "일명"여사의 책을 살 것이다.

 

누가 다음번의 "일명"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