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중국골동품 감정의 흑막

by 중은우시 2007. 3. 7.

글: 계연(桂娟), 이하(李霞)

 

속담중에 "난세에는 황금을 사고, 성세에는 골동수장이 흥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문화적인 자질도 올라가며, 역대이래로 문인들이나 선비들은 골동,  서화등의 수장품을 좋아했다. 지금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이러한 유행이 번지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각지에서는 골동품거래가 흥성하고 골동품은 주식과 부동산을 이어 중국대륙에가 가장 유행하는 투자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골동품수장에서 첫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는 '문화재감정'의 필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수장자들이 자신의 '보물'을 들고 일거에 부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감정을 하려할 때, 고민하는 것은 누구에게 감정을 맡길 것인가의 점이다. 호기심과 의문을 안고 우리들은 국가문물출국감정 하남분소의 소장이며, 하남성문물감정위원회 부주임이며 연구원인 하지봉(夏志峰)을 찾았다.

 

사례: 골동업계에 '사기'는 얼마나 많은가?

 

골동업계의 사기는 예로부터 있어왔다. 민국시대이래로 골동업계에는 두 가지 사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가짜를 진짜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를 가짜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의 상황을 보면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진짜를 가짜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봉은 이런 예를 든다. 어떤 사람이 건륭제때의 수도형자호(壽桃形瓷壺)를 가져왔다. 감정자는 한눈에 이건 물건이라고 느끼고, 이것을 자신이 손에 넣기 위하여 고의로 이건 가짜라고 말한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을 시켜 싼 가격에 이것을 손에 넣는다. 물론, 더 많은 경우는 가짜를 진짜라고 하는 것이다. 기자는 정주의 골동시장에서 은퇴한 간부인 장노인을 만났다. 그는 "명나라"때의 청화자기병을 발견했는데, 자기의 눈을 확신할 수 없어서,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전문가가 감정후 진짜라고 하여, 그것을 구입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가짜였다. 장노인은 화가나서 병석에 누었다. "골동시장에서 사기가 너무 많다. 문물이 가짜인 경우뿐아니라 감정이 가짜인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봉은 감정업계에서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감정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발급하는 감정서는 자주 실물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새로 모조한 공예품을 보물로 여기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 써준 감정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것이 당,송때의 골동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물건은 한 눈에 보기에도 진품이 아니었다. 이 점은 문화재감정가들이 때로는 전혀 직업의식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하지봉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이익때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문화재감정비용은 평가금액의 10%를 받는다. 평가금액이 높을 수록 감정료도 올라가는 것이다.

 

이외에 일부는 경매회사, 골동품수장자와 결탁하여, 가짜를 진짜라고 감정하는 경우가 있다. 더욱 심한 경우는 직접 도굴꾼들과 결탁하여, 소비자들을 기망하는 동시에 국가에도 커다란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는 수장자들에게 정규의 감정부서는 일반적으로 민간인에게 감정서를 발급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문화재의 역사적가치, 예술가치, 과학가치등의 측면에서, 문화재가 수장가치가 있는지를 감정하지, 절대 문화재의 가격을 적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취하는 비용도 매우 적다. 일반적으로 물가부서에서 정하는데 한 건당 20위안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전문가 혹은 단체의 감정서를 받아보았고, 시장가격이 매우 높다면, 그것은 조심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그저 가격을 적은 것일 뿐이고 감정의 권위는 상당히 낮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 골동은 왜 진짜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가

 

골동에 투자하는 리스크는 바로 가짜 골동을 살 지모른다는데 있다. 많은 수장자들이 골치아파하는 것이 바로 진짜가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중국의 역대왕조에서는 모두 문화재위조가 있었고, 가짜물건이 많았다는 것이다. 모조수단이 갈수록 발전하고 아주 뛰어난 감정의 식견이 없다면 가짜를 판별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찌기 네 번에 걸쳐 가짜문화재를 만드는 전성기가 있었다. 첫번째는 송나라때이다. 그때는 상나라, 주나라의 청동기가 위주였다. 두번째는 청나라 건륭시기이다. 주로 명인들의 글씨와 그림이었다. 이때의 가짜를 만드는 수준은 뛰어나서 건륭제조차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어했다. 당시 많은 가짜서화에 건륭제는 자신의 글을 남겼다. 세번째는 청나라말기부터 민국시기까지이다. 이때는 중국각 시기의 문화재를 대량으로 위조하고 복제하였고, 만들지 못한 것이 없고, 모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 네번째는 개혁개방이후, 수장열기가 고조되면서, 각종 옛 공예품을 모조하는 것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위조한 물건도 가지각색이며, 위조수단도 다양하다. 모조자들에게는 일종의 묵계가 있어서 분업을 통해서 전문가가 되어갔다.

 

감정기술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하지봉등 자주 각지의 가짜를 만드는 곳을 방문하곤 한다. 그에 의하면 하이테크기술을 문화재위조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등봉조극에 이르고 스스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다. 예를 들면, 3D 스캔기술이 사용되고, 만든 물건은 원품과 똑같게 된다. 또한 모조기술을 사용하여, 위조품의 무늬까지도 진품과 똑같이 하고 있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기술도 다양하다. 종합하면 물리적인 방법과 화학적인 방법의 두가지이다. 물리적인 방법중에는 주로 "이화접목(梨花接木)"술이 사용되는데, 붙이거나 상감하거나 옮기는 방법을 사용하여 옛날 것이나 잔여품의 일부를 새로운 문화재에 붙이는 것이고, 이후 흙을 붙여 착색하고, 그리하여 진찌인 일부분이 드러나도록 해놓는 것이다.

 

"노료신공(老料新工)"은 옛날 원재료를 사용하여 지금 만드는 것이다. 즉, 파괴된 문물조각을 가지고 새로 맞추어 말리는 것이다. 이런 모조방법은 어떤 때에는 알아차릴 수 있지만, 기계는 알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고대의 아무 것도 없는 벽돌에 그림을 그리거나, 무늬나 명문이 없는 고옥, 동기의 위에 금은이나 취옥을 상감하면 시장가치는 몇 배로 뛰어 오른다.

 

"노료신기(老料新器)"는 어떤 문화재의 바닥은 진짜이나, 위에 붙인 것은 새로운 것이다. 어떤 모조물은 병의 입구와 바닥은 진짜이고, 중간부분은 가짜인 경우도 있다. 어떤 때에는 이윤을 높이기 위하여 위조자들이 문물을 톱으로 나누기도 한다.

 

화학방법으로 널리 써이는 것은 "작구(作舊, 옛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즉, 화학용액을 모조품에 침습시켜 늦으면 3일, 빠르면 몇 분만에 기물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봉에 의하면 그가 한번은 직접 눈으로 모조품을 만드는 것을 봤는데, 몇분만에 800년은 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런 화학처리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떤 화학용액은 녹까지 모조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여, 손톱으로 긁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가짜 녹의 경우에는 뜨거운 것이나, 고온에 약하고 한번 부딛치기만 하여도 떨어져 나갔었다.

 

침습을 통한 모조품은 원래의 분묘의 묘토를 필요로 하여, 함께 지하에 묻어두고, 나중에 뿌리가 있는 식물을 위에 심어둔다. 이것을 '기른다'고 한다. 3-5년이 지나면 식물의 모세혈관이 모조품에 이르는데, 이때 다시 꺼집어내어 팔게 되면 진짜와 구분하기가 아주 힘들다.

 

모조품이 전세지물이라면, 가짜를 만드는 사람은 손에 들고 수년간 만지작거리거나, 농촌의 농민에게 주어서 자연스럽게 사람손에 닿아 낡은 물건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몇 년을  '기른' 후에 다시 진품과 비슷하게 만들어 팔아버린다.

 

검토: 누가 골동시장을 교란하는가?

 

막 정주에서 막을 내린 전국 제6기 문물예술품교류회에서 전국각지의 50여개 골동점과 많은 애호가들을 불러모았다. 3일간의 거래에서 거래금액은 600여만위안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은 한꺼번에 15개의 옥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수장>>잡지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 현재 있는 각종 수장가협회, 수장품시장은 근 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각종 전문수장품도 500여종에 이르고, 수장가는 3천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3%에 이른다. 수장품시장의 거래액도 방대하여, 북경의 골동수장품시장의 거래액은 1년에 11억위안에 이르고, 지하거래액은 얼마인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매년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국에서 매년 문화재예술품경매로 인한 거래금액은 10억인민폐이다. 수장가들은 왜 이렇게 늘어나는가?

 

하남성문물교류중심의 허천신 서기는 먼저 경제력을 꼽는다. 문화재예술품의 가치상승여력이 충분하고, 경매시장에서 기본적으로 1년에 30-50%씩 오르므로, 어떤 문화재는 이년만에 다시 나와서 두 배가격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은 돈있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흩어진 문화재를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문물교류중심은 옛날에는 주로 민간에서 문화재를 모았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니거나 각 현의 문물대리구매점을 통하여 수집했다. 그때는 광고쪽지만 하나 붙이면 백성들이 각종 문물을 보내왔다. 몇원 또는 몇십원에 괜찮은 수장품을 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1990년전후까지 계속되었다. 현재 이런 채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히 어떤 사람들이 보내오는 경우가 있지만, 가격을 높이 불러서 도저히 구매할 수가 없다.

 

하지봉도 이렇게 말한다. 경제발전으로 사람들에게 여윳돈이 생기면서부터 골동에 투자하려는 심리가 생겨났다고 본다. 문화재는 재생이 불가능하므로, 이익을 볼 여지도 많고,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청나라말기의 물건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는데, 이제는 민국시대의 물건도 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일부 좋은 물건은 더 이상 나오지를 않는다. 문화재시장은 승려는 많고 중은 적은 국면이다. 만일 안목만 있어서, 물건만 제대로 본다면 골동을 취급하는 것도 이익을 크게 볼 수 있는 길이다. 유일한 리스크는 가짜를 사는 것이다.

 

골동시장을 움직이는 또 다른 역량은 일부 투기분자들이 고의로 시장가격을 조작하는 것이다. 하지봉의 소개에 의하면, 그들의 조작방식은 주식조작방식과 같다. 먼저 거액의 자금을 투입한 후, 대량으로 어떤 시기의 골동품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격이 계속 오르게 되면, 나중에 천천히 물건을 푸는 것이다. 일찌기 어떤 경매상은 건륭시기의 청화자기병을 이렇게 조작했었다. 전국각지에서 구매했고, 거의 모든 시장을 독점했다. 골동거래는 기간이 길고, 연동성이 크므로, 쉽게 눈치재지 못할 뿐이다. 이외에 일부 외국정부나 재단이 정치, 문화상의 동기에서 중국골동시장에 개입하기도 한다. 1996년, 한국정부는 대량의 자금을 투입하여 고려청자를 구입했다. 수천위안의 물건이 수십만위안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이 물건들은 결국 중국정부에 의하여 회수되었다.

 

미디어와 경매상들의 조작도 있다. 이것도 골동열기에 힘을 더해준다. 상해시 경매업체는 10개의 갑골문을 480만위안에 팔았는데, 이것에 대하여 하지봉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경각: 수장에는 "감정서"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봉은 그가 직접 겪은 일을 하나 얘기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원보(元寶)를 가져와서 감정해달라고 했고, 그의 조카가 15만위안에 샀다고 했다. 감정을 해보니 이 원보는 가짜였다. 오래지 않아 이 사람은 다시 감정소에 와서 감정서를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의 감정의견때문에 조카와 싸우게 되었고, 조카는 그가 가짜와 바꿔치기했다고 믿고 15만위안을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민간에서의 골동품수장이 맹목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물건만 보면 바로 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입만 벌리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얘기한다.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다. 국내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문화재의 가격을 보면, 기물의 실제가치가 적게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다. 왕왕 실제와 달리 너무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보물"로 떼돈을 벌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룻밤에 부자가 되는 환상에 젖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정확한 수장관념이 왜곡되고, 많은 사람들이 속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실, 수장의 출발점은 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정신을 도야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장에는 원래 감정서는 필요없는 것이다.

 

수장애호가들은 먼저 자기의 흥미와 좋아하는데 따라 자기의 수장에 대하여 전문분야를 정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비연호, 시계, 열쇠등등이다. 보는대로 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후에 여러 책을 많이 읽고, 자기의 문화수양과 전문지식을 함양하여, 머리를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박물관에 가서 자주 실물들을 많이 보고, 다시 골동시장으로 향해야 한다. 먼저 사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요한 것은 먼저 보는 것이고,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일정한 안력이 생긴 후에, 조금씩 시작해도 늦지 않다. 소량의 학비를 내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골동을 사면서 다시 진정한 감정전문가를 찾아서 배우고, 절차탁마해야 한다. 이런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골동수장을 향한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절대 쉽게 다른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

 

근원: 문물감정에서 업계진입기준을 정해야 한다.

 

하지봉은 현재 문물감정에는 여러가지 혼란이 존재하고, 이미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문화재시장질서가 교란되고 있다고 한다.

 

"최대의 문제는 이 업계에는 진입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의 문화재감정은 어떤 표준도 없고, 업계의 자격관리상의 기준도 없다. 감정공작실을 열기만하면 되고 아무런 문턱이 없는 것이며, 문화재부서에 등록할 필요나 어떤 절차를 취할 필요도 없다. 그저 공상부서에 가서 등기하고 민정부서에 가서 민간단체로 등록하면 끝인 것이다. 이것이 현재 문화재감정업계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고, 업계인원들이 각양각색이 다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법률이나 정책으로 빈 틈을 메워주어야 한다고 본다.

 

문화재감정은 아주 강한 학술성과 기술성이 요구된다. 많이 배우고, 오래된 고고전문가라고 하여 맡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수한 문화재감정가는 착실한 이론적기초가 필요할 뿐아니라, 풍부한 실천경험과 감정기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문물국은 매년 1회 문화재감정자격시험을 친하고 한다. 그런데, 난이도가 매우 높고, 일반적으로는 매년 겨우 5,6 명만이 통과한다고 한다. 가장 많은 때에는 1년에 14명이 통과했다. 하남과 같은 문화재가 많은 성에서도, 이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현재 겨우 7명에 불과하다. 전국에도 100명이 되지 않는다. 문화재 감정인재는 아주 부족하다. 중국의 고등교육은 문화재감정인재를 기르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학본과에도 감정전공이 없고, 고고전공에서도 겨우 반학기를 감정학을 배울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외에 문물감정부서의 편재도 너무 부족하다. 문화재계통의 내부에서 업무만으로도 바쁘고, 아주 적은 시간만을 사회에 서비스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고, 이는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기회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일부 수장가협회, 감상가협회, 및 각종 신문잡지, 시청미디어들이 문화재감정사업을 하고 있고, 심지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간판만 크게 내걸고 무슨 저명감정가, 전문가로 행세하면서 골동품시장에서 문화재감정을 해주고 있다. 어떤 단체는 유명한 사람을 끌어들여 무슨 고문이니 전문가니 하면서 매달 300위안, 500위안의 고문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런 단체들은 보기에는 정상적인 것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위 감정을 한다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사기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봉은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들은 대부분 골동거래와 관계되어 있거나, 그 자신이 골동거래의 막후조정자인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은 감정할 때 그들은 수장품을 등기하고, 다른 수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문할 때, 그들은 중간에서 중개를 하고 양쪽에서 돈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