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해외에 유실된 문화재중 회화에 대하여 말하자면 미국이 가장 많이 수장하고 있다. 워싱턴의 프리어미술관(Freer Gallery of Art)만 1200여점이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는 중국회화를 근 500점 소장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작품은 가장 정교하다. 도자기측면에서는, 아시아예술품수장으로 유명한 프랑스기메(Guimet)미술관에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내의 도자기는 중국최초의 원시자기로부터, 명청의 청화(靑花), 오채자(五彩瓷)에 이르기까지 각왕조의 유명한 명요에서의 명품들이 모두 있고, 대부분이 정품(精品)이다. 지방지와 고서적에 대하여 말하면 미국이 가장 많다. 미국국회도서관에는 4000여권의 지방지가 있다. 전미에는 고적 선본(善本)이 3000여종, 가보가 2000여종이 있다. 갑골문에 대하여 말하자면 일본이 최대수장국이다. 해외에 유실된 30000점의 갑골문중 일본은 근 13000점을 가지고 있다. 돈황보물에 대하여는 돈황유서가 중국국내에는 겨우 20000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겨우 30%에 불과하다. 대영도서관 동방사본부에는 13700점이 있고, 프랑스파리국립도서관에 6000점, 러시아 세인트페트르부르크 아주민족연구소에 12000점이 있다. 영국인도사무부도서관에는 2000점 가까이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 일본, 미국, 스웨덴, 오스트리아, 한국에서도 돈황문화재를 수장하고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
대영박물관은 중국의 바깥에서 중국문화재중 가장 많이 가장 좋은 것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1860년, 영국군은 원명원에서 강탈해간 문화재의 일부분을 당시의 빅토리아여왕에게 바쳤다. 나머지는 모두 경매되었다. 여왕에게 바친 원명원 문화재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수장품은 현재 700만건에 달한다. 대영박물관이 수장하고 있는 중국문문을 청동기, 도자기, 서화, 옥기, 조각품등 모두 23000건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것은 진품(珍品)이나 고품(孤品)이다. 예를 들면 청나라 건륭제가 아끼던 애장품인 동진 고개지의 <<여사잠도(女史箴圖)>>의 당나라 모본이 가장 눈길을 끈다. 정교한 상나라 주나라때의 청동기와 스타인(Stein, 1862-1843, '돈황유물제일도둑')이 영국으로 가져간 대량의 돈황유물이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진품으로 꼽힌다.
서화에는 고개지의 <<여사잠도>>의 당나라때 모본, 이사훈의 <<청록산수도>>, 거연의 <<무립첩장도>>, 이공린의 <<화암변상도>>, 범관의 <<휴금방우도>>, 연문귀의 <<군봉설제도>>, 소식의 <<묵죽도>>, 마원의 <<산수재유도>>등이 있다.
청동기에는 상나라 쌍양존, 서주의 강후궤, 형후궤등이 있다.
대영도서관
중국의 진귀한 문헌과 고적 6만여종이 있다. 그 중에는 중국파라밀불경의 최초판본, <<영락대전>> 45권 및 갑골편, 죽간, 각본고서, 돈황장경(금강경의 인쇄각판 포함)과 지도가 있다.
프랑스
퐁텐블로(Fontainebleau)
서방의 박물관중 원명원의 가장 뛰어난 진보를 가장 많이 수장하고 전람하는 곳이 프랑스의 퐁텐블로(중국에서는 楓丹白露宮이라고 부른다)이다.
퐁텐블로의 원래의 의미는 "푸른 색의 샘물"이라는 것이며, 파리의 동남쪽 9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주위는 2500공경의 삼림이다. 자고이래로 여기는 수렵과 피서의 경승지였다. 프랑스왕 루이6세시기(약 1137년전후)에 여기에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몇대 왕들이 계속 확장하여 퐁텐블로는 점점 더 화려해졌다.
퐁텐블로의 중국관은 프랑스황제 나폴레옹 3세의 왕후가 건립한 것이다. 건립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원명원에서 빼앗아온 중국문화재, 1860년 영국프랑스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한 후, 프랑스군 사령관인 몽토반(General Cousin-Montauban)이 가져온 소위 전리품을 나폴레옹3세와 왕후에게 바였다. 현재까지 여기에 수장된 중국역대 명화, 금은장신구, 자기, 향로, 편종, 보석과 금은기물은 모두 3만여점에 달한다.
파리국립도서관
관내에 현재 수장하고 있는 원명원의 예술진품은 주로 : 청나라 궁정화가인 심원(沈源)과 당대(唐垈)가 공동으로 그린 비단본 <<원명원사십경도>>: 궁중화가인 심원과 손우(孫佑)의 각판인 목판본 <<원명원사십경도>>; 궁중화가 이란태(伊蘭泰)가 제작한 해안당등 서양루 동판화 40폭; 낭세녕(朗世寧)이 그린 건륭황제의 무공을 선양하는 <<격등악랍기영>> 및 <<원명원국화미궁도>>등이 있다.
파리동방박물관
청말의 외교관 설복성(薛福成)은 그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4개국 출사일기>>에서 광서16년(1890년), 그가 파리동방박물관의 중국전시실에서 "원명원의 옥인(玉印) 2개를 발견하였는데, 하나에는 '보합태화(保合太華)'라고 새긴 청옥방인이고, 약간 크며, 다른 하나는 '원명원인(圓明園印)'이라고 새긴 백옥방인으로 약간 작다"고 적고 있다.
파리기메미술관
박물관내의 자기는 중국최초의 도자기에서 명청의 청화, 오채자까지 각왕조의 각 명요에서의 작품들이 모두 있으며 대다수는 정품이다.
박불관에는 또한 원명원예술품의 진품들도 소장하고 있는데, 낭세녕이 그린 <<건륭초상>>이 있는데, 건륭이 41살때의 좌상이다. 건륭의 옆에는 두 대신이 서 있는데, 인물이 매우 뛰어나다. 중국과 유럽의 회화기법을 결합한 뛰어난 가작이다. 건륭의 백화병자, 는 조형이 매우 뛰어나고, 그림솜씨가 상승이다. 병위의 화훼도는 각양각색이며 현란하고, 아주 아람답다. 건륭시대의 예술진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일본동경국립박물관
일본 최대의 박물관이다. 관내에 있는 9만여점의 수장품중에는 수만건의 중국문물이 포함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양저문화옥기, 당송원의 자기, 청대의 자기, 글씨그림까지 없는 것이 없다. 마원의 <<동산도수도>>, <<한강독조도>>, 양해의 <<설경산수도>>, <<이백행음도>>, <<육조절죽도>>, 이적의 <<홍백부용도>>등은 절세의 명작들이다.
이외에 일본각지에 있넌 수천개의 박물관에도 중국문화재가 보관되어 있고, 진품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수량은 수십만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침략의 중국문화재파괴>>라는 글을 쓴 맹국상의 소개에 따르면, 전쟁후 일본이 일부분 전시약탈문화재를 반환하였는데, 모두 158000여점이었고, 그 중에서 2000점은 매우 진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은 더 이상 추궁하여 돌려받지 못하였다.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예술박물관
박물관내에 수장된 강희옥여의는 원명원에서 잃어버린 예술진품의 하나이다. 이것은 아주 귀한 백옥 한 개로 깍아서 만들었는데, 거의 50센티미터에 이르고, 하얀 색의 가운데 녹색이 들어가 있어 깍을 때 여러 개의 진균(眞菌)형상으로 만들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어제(御制)'의 두 글자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경원루풍년, 천하함여의, 신오경공진(敬願屢豊年, 天下咸如意, 臣吳敬恭進, 바라건데 매년 풍년이 되고, 천하가 모두 뜻하는 바대로 되소서. 신 오경이 공경하여 바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영국프랑스연합군이 약탈한 후 파리에서의 경매시에 경매된 것을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낙찰받아 가져다 놓은 것이다.
보스톤미술관
이 미술관은 동방예술품으로 유명하다. 현재 중국과 일본의 회솨 5000여점을 수장하고 있다. 그 중 상당한 수량은 송, 원시기의 명화이다. 예를 들어 보존이 완벽한 당나라 장선의 <<도연도>>의 송나라 모본, 송휘종의 <<오색앵무>>등이 있다.
클리블랜드예술박물관
수장하고 있는 원명원예술품에는 낭세녕이 그린 <<건륭제후와 11명비의 초상>>이 있다. 그림에는 청년시기의 건륭황제의 모습이 살아있는 듯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건륭제가 3번 보았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나이 70세 되었을 때, 그리고 그가 퇴위할 때.
시카고미술관
여기의 동방부에는 중국청동기를 많이 수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놀랄만한 진품은 전국시대의 제량맹(提梁孟)이다.
샌프란시스코아시아예술박물관
이곳은 아시아문화재 특히 중국문화재위주의 박물관이다. 그 중에 도자기부에는 2000여점이 있다. 신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청나라에까지 이른다. 옥기부에는 1200여점이 있는데, 세계에서 중국옥기를 가장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청동기부에는 약 800여점이 있다.
미니애폴리스오크예술센터
원명원의 건륭대옥산자를 수장하고 있다. 이것은 녹색과 백색을 포함하고 있는 옥석이며, 차가운 회녹색의 광택을 발하고 있다. 건륭49년(1784년)에 고봉심곡의 옥산으로 조각되었다. 산에 정자와 누각을 새겼고, 작을 길도 있으며 사람도 몇명 새겼다. 방앞에는 백화가 둘러싼 연목이 있어 아주 장관이고 정교하다. 벽에는 건륭황제가 어필로 임모한 왕희지의 <<난정서>>가 새겨져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실용예술박물관
박물관의 한 곳에는 수천점의 중국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이런 문화재는 노르웨이인 몽츠가 기증한 것이다. 1887년 몽츠는 중국에 왔고, 중국해관에서 근무했으며 나중에 원세개의 기병단장, 참모장등의 직무를 수행한다. 몽츠는 중국에서 50여년을 생활하였으며, 2천5백여점의 중국문화재를 수집한다. 이 박물관의 수장품중 가장 특이한 것은 원명원의 석조(石雕)이다. 1층의 전체 진열실중 거의 전부가 정교하게 조각된 원명원 건축석으로 채워져 있다. 부서진 기둥, 난간, 석상, 대청의 벽에 걸었던 해안당의 동판화등이다. 그 위에는 원래의 위치도 일부 기록하고 있다. 이 전시실은 '원명원전시실'로 이름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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