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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홍8군단(紅八軍團) : 중앙홍군중 존재시간이 가장 짧았던 군단

by 중은우시 2007. 2. 28.

장정(長征)출발전에 조직된 후, 상강전투후에 군단번호가 취소되어, 장정초기의 홍팔군단은 겨우 2개월여간 존속하였다. 겨우 두 달간 존속했던 이 부대를 흥국현 사련주석인 호옥춘(胡玉春)은 꼬박 22년을 연구했다. 호옥춘에 의하면, 1934년 10월 중앙홍군이 장정을 출발할 때, 모두, 1, 3, 5, 8, 9의 다섯 군단이 있었다고 한다. 홍8군단은 존재시간이 가장 짧았고, 전투가 가장 격렬했으며, 사망상황이 가장 참혹했고, 아는 사람이 가장 적은 군단이 되었다.

 

홍8군단은 기본적으로 서방군(西方軍)의 기초위에서 건립되었다. 국민당군대의 중앙소비에트구에 대한 제5차 '포위소탕'작전을 분쇄하기 위하여, 중앙혁명군사위원회는 동, 남, 서, 북의 4개의 전쟁을 열기로 한다. 당시, 서방군은 막 조직이 완료되고 아직 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는 중앙경위사령부의 5000명이 안되는 인원과 강서군구의 5개독립단을 합쳐서 모두 7000명으로 구성하였다.

 

서부전선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모범현"인 흥국현의 군중은 사람, 재산, 물건을 있는대로 다 내놓았고, 적극적으로 소비에트구정부가 홍군을 확대하고 군량을 징발하고, 군화헌납호소등에 호응했다. 1934년 10월에 이르러 흥국보충사단은 홍군을 위하여 11차에 걸처 모두 2만여명의 병사를 보충한다.

 

1934년 9월 21일, 단독작전과 포위돌파의 편의를 위하여, 중앙혁명군사위원회는 서방군 관할하의 홍21사단과 홍23사단으로 중국공농홍군 제8군단을 결성하며, 1만여명의 대부분은 흥국현출신의 전사들이었다. 홍21사단 제62단의 정치위원 온옥성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전투가 빈번하여, 홍8군단은 다 모아놓고 결성대회를 개최할 여유조차 없었다.

 

1934년 10월 9일, 홍8군단은 명을 받아 흥국현 남단의 사부지구를 떠나고, 장정출발하기 전의 휴식, 보충시간을 갖는다. 장정출발시, 홍8군단은 전군의 우후익(右後翼)을 담당하였고, 군사위원회 제1종대를 엄호하며 전진했다. 세개의 봉쇄선을 넘어서 호남에 진입한 후, 홍8군은 좌후익으로 변경되며, 한번은 전군의 후위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1934년 11월 하순, 홍8군단은 광서변경에서 급히 행군하고 있었으며 상강(湘江)을 넘어갈 기회를 찾고 있었다. 상강전투에서 8만여명의 홍군의 주력은 절반 가까이 잃어버렸고, 홍8군단은 전군이 전멸했고, 겨우 21사단의 1000여명만이 상강을 건널 수 있었다. 12월 18일, 중앙혁명군사위원회는 홍8군단의 번호를 취소하고, 홍8군단을 홍5군단에 편입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