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염숭년(閻崇年)
홍타이시(皇太極, 즉, 청태종)는 국호를 외 금(金)에서 청(淸)으로 바꾸었는가? 학계와 청사계(淸史界)에는 논쟁이 식지 않고 있다. 청태종은 스스로 설명한 적이 없다. 청나라때의 <<태종황제실록>>, <<만문노당>>에도 모두 해석이 없다. 그래서 후인들은 각자 알아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관한 한 전설이 있다. 즉, 누르하치가 당시에 난을 피해 대청마(大靑馬)를 타고 도망쳤는데, 너무 급하게 도망치다보니, 말이 기진맥진하여 죽고 말았다. 누르하치는 말에게 고마음을 느꼈고, 그래서 말에게 "대청아 대청아. 너는 나를 위해 기진하여 죽었구나. 나중에 내가 천하를 얻으면, 나는 국호를 대청(大靑)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청(靑)과 청(淸)은 발음이 같으므로 청(淸)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이외에도 청(淸)이라는 명칭에 대하여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
첫째, 어떤 사람은 음운학적으로 설명한다. 청(淸)과 금(金)은 만주어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청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둘째, 어떤 사람은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즉, 중국에 그렇게 많은 왕조가 있어도 청이라는 것을 쓴 적은 없고, 중복되지 않기 위하여 청을 썼다고 한다.
셋째, 어떤 사람은 음양오행적으로 설명한다. 즉, 명나라의 명(明)은 왼쪽에 일(日)이 있어 기운으로 화(火)에 속하는데, 오행상 수극화(水克火, 수가 화를 이긴다)는 원리가 있어 수에 속하는 청(淸)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로써 불을 끈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넷째, 어떤 사람은 샤먼문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청(淸)은 바로 청(靑)이고 청천(靑天)은 바로 통천(通天)이므로 길상의 의미라는 것이다.
다섯째, 어떤 사람은 민족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원래 금(金)을 사용하였는데, 중원에 진격한 이후에는 중원지역에서는 금나라를 말하기만 하면 모두 남송을 떠올리고 악비를 떠올리므로, 중원에서 거부감이 크다고 보고, 청태종은 이러한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금"을 쓰지 않고 "청"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해석은 각자 자기 주장이고, 어느 한 주장도 다른 사람들을 설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청태종의 원래 연호는 천총(天聰)이었는데, 나중에 숭덕(崇德)으로 바꾸게 된다. 이때의 명나라의 연호는 숭정(崇禎)이어서 모두 숭(崇) 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숭정의 정(禎)은 왼쪽이 시(示)이고 오른 쪽이 정(貞)이다 시(示)는 신(神)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숭정황제는 하늘(天), 신(神)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덕(德)의 왼쪽은 두인변이다. 그런 점에서 청태종은 사람(人)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숭정의 오른 쪽은 정(貞)이다. 점을 칠 때 정(貞)은 신과 연관이 된다. 숭덕의 덕(德)은 아래 마음 심(心)이 들어가 있다. 결국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람들의 일 백성들의 일을 중시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청태종이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연호를 천총에서 숭덕으로 바꾼 것은 모두 청태종의 정치가로서의 야심과 담량 그리고 기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개혁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는 것이며, 청나라의 시대를 열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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