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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민족

몽고족의 역사기원

by 중은우시 2006. 12. 17.

작자: 장개(章愷)

 

고고학자의 고증에 의하면, 몽고족의 기원에 대하여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몽고인의 조상은 동호(東胡)족이며, 흉노(匈奴), 선비(鮮卑), 오환(烏桓)등과 동일한 민족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찌기 흉노족들과 많은 유혈충돌을 겪었으나, 패하여 각지로 흩어졌었고, 서로 다른 족속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기원전 5세기 내지 3세기에, 동호 각부는 여전히 원시적인 발전단계를 보이고 있었다. 각 부락은 물과 풀을 찾아 옮겨다녔으며, 고정된 거처가 없는 생활을 보냈다.

 

기원전 3세기말, 동호인의 부락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흉노족과 대립하였으며, 서쪽으로 진출했다. 모돈선우(冒頓單于, 기원전 209-기원전 174년사이)때, 흉노족은 점점 강성해졌고, 동으로 동호를 칩입하여 동호의 각부를 멸망시켰고, 대략의 백성과 동물을 약탈해갔다. 동호각부는 흉노족의 통치를 3세기가량 받았다(기원전3세기말에서 기원1세기말까지). 기원48년, 흉노는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되었고,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오환, 선비가 이 기회를 틈타 흥성하기 시작했다.

 

오환, 선비는 동호인의 후예들이다. 기원전209년, 모돈선우가 동호를 멸망시킨 후, 일부 동호인들은 요하(遼河)유역의 오환산(烏桓山)에 살았고, 일부분은 황수(潢水)유역의 선비산(鮮卑山)에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오환, 선비로 불리웠다.

 

<<후한서>>의 기재에 따르면, 동한의 영원년간(89-105년)에 한나라는 흉노를 격파했고, 북선우를 그 땅에서 쫓아냈다. 선비족들이 이 땅으로 이전해 들어왔다. 흉누의 10여만의 남은 부락민들은 스스로 선비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선비는 이때부터 강성해졌고, 2세기중엽에는 단석괴(檀石槐)의 통치기간을 맞이한다. <<삼국지>>의 기재에 따르면 흉노의 옛땅을 다 차지하여 동서 만이천리, 남북 7천여리의 거대한 지역을 차지했으며, 공전절후의 강대한 선비부락군사연맹을 건설한다. 각부의 수령은 땅을 나누어 통치했고, 각각 지역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단석괴가 죽은 후에, 선비의 부락군사연맹은 와해된다.

 

고고학적인 발견과 한문사적의 기록에 따르면, 선비족의 풍속, 습관과 언어는 기본적으로 몽고인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세기 중엽, 선비족의 한 갈래는 스스로 거란(契丹)이라고 칭한다. 황수와 노합하(老哈河)유역에 살게 된다. 흥안령의 서쪽(지금의 후룬베이얼지구)에 사는 선비족의 한 갈래는 실위(室韋)라고 부르게 된다. 실위는 거란과 같은 민족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나, 흥안령을 경계로 하여, 남쪽을 거란이라고 하고, 북쪽을 실위라고 하였다(북사 권94. 실위전).

 

6세기이후, 실위는 남(南)실위, 북(北)실위, 발(鉢)실위, 심말항(深末恒)실위, 대(大)실위의 다섯부로 나뉘어진다. 각부는 다시 여러개의 분지(分支)로 나뉘어진다. 문자로 기재된 몽고라는 칭호는 <<구당서>>에서 처음볼 수 있는데, 그 때는 몽올실위(蒙兀室韋)라고 불리웠는데, 대실위(大室韋)의 구성족속이었고, 어얼구나하의 남쪽지역에 살았다. "몽고"라는 것은 '장생'의 '영원'한 부락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라스터가 쓴 <<사집>>에 기록된 몽고족의 역사와도 기본적으로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