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청나라의 특수부대: 등패병(藤牌兵)

중은우시 2006. 11. 19. 17:16

 

 

 

 

중국을 침입했던 영국군들은 청나라의 재미있는 특수부대를 보았다. 이들은 다른 청나라군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호랑이옷을 입고, 호랑이모자를 쓰고, 이상한 방패와 긴 칼을 들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들은 "등패병"이라고 불리웠던 청나라의 특수부대였다. 주로 기병(騎兵)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우선, 말들이 호랑이옷을 입은 특수부대원들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의 등나무방패는 화살은 물론 조총정도까지는 막아낼 수 있었다. 나중에, 조총보다 강력한 서양군대의 총은 막아내지 못함에 따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등패(藤牌, 등나무방패)는 원래 복건성의 천주, 장주지구에서 민간에서 무장할 때 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서 사용하던 도구였다. 이것을 정식으로 군대장비로 처음 활용한 것은 명나라때의 왜구를 무찌른 것으로 유명한 척계광(戚繼光)이었다. 복건성 복주의 평담도에는 지금까지도 민간에서 등패무(藤牌舞)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등패무의 기원은 등패조(藤牌操)인데, 이것은 척계광이 민절(복건, 절강)의 왜적을 무찌를 때 만든 '원앙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등패는 왜적과 싸울때 공헌이 컸다

 

1644년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한 이후 철기군이 대강남북을 횡횡했다. 정성공은 동남쪽을 방어하면서 "등패병"을 두고 전문적으로 청나라철기군에 돌진하는 주력부대로 삼았고, 이들로 청나라의 기병에 대항했다. 등패병은 원래 정성공의 자제병으로 천주, 장주사람들이 위주였고, 사용하는 무기는 한 손에 등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장도(長刀)를 들었다. 등패는 등나무를 기름에 담근 후 짜서 만든 것으로 둥그런 모자와 같았다. 그래서 단패(團牌) 또는 곤패(滾牌)라고도 불렀다.

 

정성공의 등패병이 가장 위력을 발휘한 것은 북상하여 장강지역을 점령할 때와 대만에서 네덜란드군대를 물리칠 때였다.

 

청나라 강희22년(1683년)에 대장군 시랑이 이끄는 청나라군대는 대만을 통일한다. 정성공의 손자 정극은 투항하였고, 복건 등패병은 북방으로 이동하여 명장 임흥주(林興珠)의 지휘하에 수차례 전투에 참전한다.

 

임흥주(1628- ?)는 원명이 진주(進周)로 민간에서는 임후(林侯)로 부르고 있다. 복건 영춘현, 승평리 사람이다. 청나라 순치6년(1649년) 숙부 임일승을 따라 정성공을 따른다. 임흥주는 정성공의 부대에서 등패병의 위력을 느끼고 그 사용기교를 익힌다. 순치13년(1656년) 처아라 군대가 모정채를 격파하자, 임일승과 임흥주는 청나라에 투항한다. 임흥주는 삼번의 난때 오삼계를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 강희17년(1678년) 강희제는 임흥주를 북경으로 불러 난의위난의사를 수여하고, 건의후(建義侯)에 봉하며, 팔기중 상황기에 편입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