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kexuepianju
고정련(高精煉)이라는 사람은 입력법을 개발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기업이 국가표준을 제정한다고 하며, 시장가치가 100억위안에 달한다고 하고 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중국10대과학기술뉴스인물에 뽑혔으며, 스스로가 걸출한 과학기술인재라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런 칭호를 그에게 붙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에게 사기꾼이라는 칭호를 붙여줄까 한다. 당연히 사기꾼에도 큰 사기꾼이 있고, 작은 사기꾼이 있는데, 현재까지 보기로는 그는 작은 사기꾼이다.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큰 사기꾼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그의 첫번째 문제는 허풍, 과장이다.
2000년, 광동의 모 과기일보의 부총편집인을 맡고 있던 고정련(본명은 고오특-高烏特-이라고 함)은 아무런 경쟁력이 없는 중문입력법개발회사를 매입했다. 그리고는 대대적으로 프로모션했고, 상부의 관계(아마도 그의 과기일보라는 미디어를 이용했을 것임)를 맺어갔다. 먼저 그는 과기일보로 하여금 2002년 중국과기뉴스인물에 선정되도록 하였고, 그 후에 이 타이틀을 이용하여 정부와 협의했다. 자기의 제품이 얼마나 우수한지, 얼마나 발전전망이 있는지를, 그리고, 북경대학 교수인 역이녕을 요청하여 자기의 제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평가가격이 10억위안이었다. 이 입력법이 10억위안이라는 시장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느 정도는 이 아무런 광고가치가 없는 입력법을 프로모션했지만, 문제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다음에 고정련이 만든 제품은 반드시 10억위안이 넘어야 했던 것이다. 2004년이 어떤 때인가? 고정련은 자기의 이필(二筆)입력법을 경매한다고 했으며, 바로 10억위안의 시장가치를 선전의 요소로 삼았다. 최후로는 가치를 수천만 옥은 수백만위안이면 거래된 것으로 안다. 뉴스도 많지 않았고, 기억도 정확하지 않지만, 하여튼 해프닝수준이었다.
2004년이 되어, 이필입력법은 기본적으로 죽어버렸다. 그 때는 핸드폰제조업이 매우 인기였다. 중국의 핸드폰시장은 작지가 않다. 고정련은 핸드폰입력법시장에 뛰어들고자 했다. 그러나 핸드폰입력법시장은 유한했다. 가장 많아야 1년에 1억위안이 되지 않을 시장이다.
고정련의 제품은 아무런 장점이 없었다. 2006년이 되자, 고정련은 두 가지 방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계속 자기제품의 성능을 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속 상부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고정련은 자기의 회사인 "국필공사(國筆公司)"의 이름으로, 2006년 10월, 신식산업부의 명의를 빌려서 핸드폰제조업체들의 회의를 조직했다. 회의의 명칭은 국가표준의 한 조문을 변경하는데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선전하기는 중국하이테크를 진흥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국가표준은 국필이 만든다고 선전하였다. 가장 웃기는 것은, 그는 핸드폰입렵법시장이 100억위안으로 성장했다고 한 것이다.
10억위안에서 100억위안으로 고정련은 3년만에 10배의 진보를 보였다. 이미 되돌아설 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100억위안이라고 허풍떨고, 1억위안이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10억위안의 시장을 버리고 1억위안의 시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정련과 같은 지식분자가 과장과 허풍을 통하여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중국에 많은 지식인들이 창업형과학기술인이 되기를 바라지, 고정련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유전지(柳傳志)와 같은 사람은 매우 존경한다. 그는 자수성가했고 전혀 허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련이나 사옥주(史玉柱)같은 사람은 중국하이테크산업의 비애이다. 한명은 허풍떠는 입력법으로, 한명은 아무런 약효도 없는 호르몬을 뇌백금으로 수년을 팔아먹고 있다. 비애이다 비애. 당연히 일부관료들이 고정련과 같은 자들에게 현혹되는 것에 대하여는 나도 동정한다. 관료들이야 그의 사기극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도 Google과 Baidu를 통하여 수년간의 자료를 대비한 후에야 그가 어떻게 허풍과장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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