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 외과학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명청(明淸)시기의 정종파, 전생파 및 심득파이다.
정종파(正宗派)는 명나라때의 진실공(陳實功)의 <<외과정종(外科正宗)>>을 대표로 한다. 침, 칼로 수술을 잘했으며, 부식약을 잘 썼다. 당나라때부터 명나라때까지의 외과치료법은 대부분 수록되었다. 그리하여 "증상을 가장 상세히 열거했고, 치료법이 가장 정교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학술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비위(脾胃)를 중시했다. "비위가 왕성하면 많이 먹고 쉽게 배고파져서, 사람이 살찐 경우가 많고, 기혈도 강하다. 비위가 약하면, 소식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사람이 마른 경우가 많고, 기혈도 쇠한다. 그래서 외과는 비위를 잘 다스리는 것이 긴요하다" 그리고, 외과치료법과 외과수술을 병용할 것을 주장했다. 외과치료법은 훈(熏), 세(洗), 위(위), 조(照), 습부(濕敷)등이다. 수술방법은 14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비치적제공구, 복강천자배농술, 지관절이단술을 창제했다.
전생파(全生派)는 청나라때의 왕유덕(王維德)의 <<외과전생집(外科全生集)>>을 대표로 한다. 그의 주요한 학술사상은 "음허양실(陰虛陽實)"론이다. 외과진단과 치료에 음양을 핵심으로 하는 진단치로법칙을 창립한 것이 특징이다. "붉은 종기는 양기가 실한 증거이다. 기혈이 뜨거워져서 독이 부푼 것이다" "하얀 종기는 음허의 증거이다. 기혈이 차가우므로 엉킨 것이다" 음저의 치료에 대하여는 "양화통주, 온보기혈"의 법칙을 제안했다. 반대로 칼과 침을 함부로 쓰는 것은 반대했다. 공개된 가전비방인 양화탕, 성소환, 양화해능고, 서황환, 소금단 등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심득파(心得派)는 청나라때 고금정(高錦庭)의 <<양과심득집(瘍科心得集)>>을 대표로 한다. 이 책의 학술사상은 "바깥의 종기는 실은 안에서 나온 것"이라는 외양실종내출론이다. 외과병의 원인과 동기를 주로 외증과 내증의 관계에서 풀었다. "바깥 종기가 돋아나는 것은 음양, 한열, 표리, 허실, 기혈, 표본에 다름아니다. 그 내증의 이상적인 흐름과 같은 원인이다." 외과병과 발병부위의 규율을 연구했다. "종기가 상부에 있는 것은 모두 풍온, 풍열에 속하고, 중부에 있는 것은 기욱, 화욱에 속하며, 하부에 있는 것은 온화, 습열에 속한다"고 하였다. 서각지황탕, 자설단, 지보단등 치료약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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