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주목 5

방통(龐統)은 동오(東吳)의 간첩이었을까?

글: 섭시문사판(攝詩文史版) 음모론자들이 보기에 방통이 유비에 귀순한 것은 동오의 사명을 띈 것이라고 한다. 맥락은 대체로 이러하다: "공조(功曹)는 중요한 직무이다. 주유의 공조인 방통을 동오사람들은 왜 스스로 쓰지 않고, 노숙으로 하여금 유비에게 추천하게 했을까? 서천(西川, 사천)을 취하는 것은 제갈량이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실행시에 유비는 망설였고, 제갈량도 아무런 입장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통은 계속하여 유비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천에 들어가자고 권유했을까? 익주로 들어간 후, 유비는 왜 방통의 건의를 거의 듣지 않았을까? 방통은 적진으로 돌진하는 무장도 아닌데, 왜 군진의 앞에 섰다가 죽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방통이 유비에게 귀순한 것은 정말 동오인들의 계획인 것일까? 혹은 방통..

역사상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는 군신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유비는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유황숙'으로 불리웠지만, 처지는 비교적 비참해서, 반평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지냈다. 그리고 시종 자신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

제갈량은 관직에 나가기 전에 농사를 지었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제갈량을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중국에서는 三顧茅廬라 한다)로 관직에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초려(草廬, 중국에서는 茅廬)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바로 농촌의 초가집이다. 그렇다면 그 집에 사는 사..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