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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왕8

장헌충의 죽음 글: 천애간점역사호(天涯看點歷史號) 장헌충과 이자성은 다같이 명나라말기 농민반란군의 지도자들이다. 다만 역사는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혀 다르게 하고 있다. 이자성은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원해준 "이틈왕(李闖王)", "틈왕이 오면 양식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여 대중의 환.. 2019. 5. 4.
이암(李巖)은 실존인물인가?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이자성(李自成)의 반란군중에 만일 가장 아까운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암'을 꼽을 것이다. <명사.유적전(流賊傳)>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현(杞縣) 사람 이신(李信)은 역모사건중에 상서(尙書) 이정백(李精白)의 아들이다. 일찌.. 2018. 12. 12.
이자성의 부인들... 글: 장계합(張繼合) <명사>혹은 <청사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요설은(姚雪垠) 선생이 창작한 장편역사소설 <이자성>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틈왐(闖王)"이라 불리는 이자성은 일을 계속하여 벌이는 반란군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만일 그의 곁에 있는.. 2018. 3. 2.
"이자성"은 어떤 사람인가? 글: 양청균(楊淸筠) 명나라말기에는 '지구최후의 날'과 같은 재난이 닥쳤고, 젊은 나이의 숭정제는 관외에서 만주족과의 싸움으로 마음이 조급해 있을 때, 다시 기황으로 갈 곳이 없어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을 맞이해야 했다. 이 이러한 농민군의 난이 가장 심했던 지역은 섬서이다. 섬서.. 2015. 1. 13.
이자성 생사의 수수께끼: 만청과 남명은 모두 그의 수급을 얻지 못하다 글: 감홍류(闞紅柳) 이자성이 석문협산으로 도망가 선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성의 석문현은 풍양이라고 불렀고, 풍주라고보 불리웠다. 청나라 건륭년간의 <풍주지림>에 수록된 풍주지주의 <이자성전>에 따르면, 이자성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홀로 석.. 2013. 4. 27.
이자성은 보물을 어디에 숨겼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천문산 천문산(天門山)은 해발 1,517.9미터이고, 산아래의 시가지와는 상대표고차가 1300여미터나 된다. 호남서부 장가계시의 남쪽 교외 8킬로미터에 위치하고, 무릉산의 남쪽지맥에서 높은 봉우리의 하나로, 장가계시의 천연벽화이며, 상서제일신산이라는 별칭을 지니.. 2012. 2. 29.
이자성(李自成): 세금없는 나라를 만든 단명황제 글: 유전(劉典) 세수(稅收)는 국가의 운영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경제적인 보장책이다. 세수라는 말을 둘러싸고, 여러해동안 너무나 많은 희비극이 벌어졌다. 오늘날의 우리가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이런 황제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고, 세수가 .. 2012. 2. 2.
이자성은 북경에서 어떻게 짧은 황제생애를 보냈는가? 글: 중화유산(中華遺産) 1644년은 역사상 갑신(甲申)년이다. 이 해에 북경성에는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3월에서 5월 사이에, 주마등처럼 세 개의 정권이 교체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월 19일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은 농민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들어와 대순(大順) 정권을 수립하였는데, 겨우 40여.. 2007.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