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감24 "낭군(郎君)"에서 "노공(老公)"까지: 중국에서 남편 칭호의 '타락사' 작자: 미상 중국은 수천년동안 부부간의 칭호도 적지 않게 바뀌어왔다. 그중 변화가 가장 크고 가장 비애로운 것은 남편의 칭호이다. 칭호의 변화는 하나의 무정한 사실을 증명한다: 중국에서 남자의 지위는 계속 하락해왔다. 양인(良人) 가장 먼저 처가 자신의 남편을 부르는 칭호는 "양인"이다. 듣기 좋지 않은가? 여기에서 우리는 고대 남편들의 빛나고 높은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고시(古詩)에 이런 문구가 있다: "첩가고루연원기(妾家高樓連苑起), 양인지극명광리(良人持戟明光裏)" "양인"이라는 말 자체는 남녀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다. 처가 남편을 칭할 때도 '양인'이라고 했고, 남편이 처를 칭할 때도 '양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남녀의 지위가 대체로 대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 2021. 12. 10.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 허수아비황제의 비참했던 동년시절 글: 지역사(知歷史) 나라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여유시간도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이런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은 우리 세대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젊은이들은 인터넷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고대인의 생활을 선망하기도 한다. 고대로 타임슬립해서, 지금 배운 학식을 가지고 고대에서 큰 뜻을 펼쳤으면 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도 고대영화드라마에 조금 속았다. 고대인의 생활은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등급이 삼엄한 봉건통치사회하에서 사람의 생활은 비교적 힘들었다. 잘 살았던 것은 단지 일부 왕공귀족의 통치계급이었고, 평민백성의 생활은 힘들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고대로 타임슬립하여 왕자, 공주가 되었으면 한다. 심지.. 2020. 7. 3. 황제는 왜 궁녀만 두지 않고, 환관을 두었을까? 글: 서기매(西奇妹) 서언 중국역사상 '환관'이라는 직업이 나타난 이후로, 황권을 그들이 행사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고력사, 명나라의 위충현, 청나라의 이연영등등... 여기서 환관이 충신인지 간신인지를 따지지는 않기로 한다. 환관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대체로 '.. 2020. 3. 25. 명광종(明光宗) 주상락(朱常洛): 명나라의 가장 비극적인 황제, 19년태자 1달황제 글: 동동(東東) 고대 봉건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황제가 되고 싶었다. 심지어 황제에 오르기 위해 처를 버리고 아들을 버리며 집안이 풍비박산나기도 했으며, 부자간에 원수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황제에 오르는 길에서 사람들은 계속하여 앞 사람이 쓰러지면 뒷 사람이 뒤를 이어 계속.. 2019. 12. 12. 서태후 휘하의 9명 대태감(大太監)의 사진 글: 재설역사(再說歷史) 내전총관태감(內殿總管太監) 연수(延壽). 대성현(大城縣) 사람. 당시 나이 48세. 청나라말기, 자금성내의 태감은 이미 대폭 감원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798년에는 2,675명이 있었는데, 1842년에는 2,216명, 1874년에는 1,596명, 1887년에는 1,693명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 2019. 9. 21. 채륜(蔡倫): 궁중투쟁에 희생된 위대한 과학자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1960년대 중국우정(郵政)은 중국고대과학자우표세트를 발행한다. 그 중에는 제지술을 발명한 채륜이 있었다. 웃기는 일은 채륜의 출생년의 "기원(公元)" 뒤에 "전(前)"자를 추가해 놓은 것이다. 그렇게 되니 채륜의 출생연도가 수백년은 앞당겨지게 된다. 우표도안.. 2019. 5. 21.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