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인5 원나라때 몽골인들은 한인에 대한 초야권을 가졌는가?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문인필기나 민간전설에서는 모두 원나라때 몽골인들이 한인에 대한 "초야권(初夜權)"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한인이 결혼하면, 신부는 반드시 먼저 몽골 보장(保長)의 집으로 3일간 보내고, 보장은 '초야권'을 누린 후, 다시 신부를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이 .. 2015. 6. 16. 왕국유(王國維) 자살의 수수께끼 글: 양혜왕(梁惠王) 1927년 6월(음력 오월 초사흘), 저명한 학자 왕국유는 이화원의 곤명호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나이 겨우 51살이었는데, 장년이라고 할 만한 나이였다. 그의 죽음은 중국학술계에 큰 손실이었다. 그래서 저명한 역사학자 고힐강이 쓴 기념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학.. 2015. 1. 19. 노신(魯迅)과 주안(朱安) 글: 사비상(史飛翔) 노신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항상 허광평(許廣平)을 떠올린다. 또 다른 적막하게 집을 지킨 여인 주안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주 적다. 주안은 노신의 본부인이다. 그러나, 항상 유명무실했다. 1906년 여름, 일본유학중이던 노신은 집안의 전보를 받는다: "모병속귀(母病速.. 2014. 1. 14. 북경대학은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글: 유계흥(劉繼興) 호적(胡適)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할 바 있다: "북대는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이 "세마리 토끼"는 각각 채원배(蔡元培), 진독수(陳獨秀), 호적이다. 세 사람은 모두 토끼띠이다. 채원배는 동치 정묘년(1867년)생이고, 진독수는 광서 기묘년(1879년)생이며, 호적은 .. 2013. 11. 27. 노신(魯迅) 형제간의 불화경위 1923년 7월 19일오전, 노신은 그가 살던 북경 팔도만후통의 사합원으로 되돌아왔다. 주작인(周作人, 노신의 남동생)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노신선생친계"라고 쓴 편지를 형의 손에 내밀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노신선생, 나는 어제야 비로소 알았다.... 그.. 2007. 3.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