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주한관5

<명청시기폐관쇄국신탐>에 대한 몇 가지 의견 글: 호문휘(胡文輝) ◇ 발표된 시기로 보면, 이 글은 현재 대외정책에 영합하려는 혐의가 있다. 그 의도가 영사(映射, 현재를 역사에 비추어보는 것)에 있으니, 용심불량(用心不良)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논술과 견해를 보면, 내 생각에 이 글은 그리 큰 문제가 있지는 않다. 역사학과 그것이 일으키는 영사작용의 두 개는 반드시 등호를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근대이전의 "폐관쇄국"과 근대이래의 "폐관쇄국"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경제사회에 대한 영향도 완전히 다르다. ◇ 근대이전의 "폐관쇄국"은 확실히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아편전쟁이전에 청나의 대외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청나라보다 더욱 전형적인 것은 일본의 도쿠가와막부이다. 그 봉쇄정도는 청나라보다 훨씬 심했다. 다.. 2022. 9. 8.
역사연구원의 "폐관쇄국유리론"을 비판한다. 글: 욱풍(郁風) 최근 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다. 문장의 결론은 전통적인 "폐관쇄국으로 중국이 근대에 낙후되었다"는 관점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특정시기 유럽중심주의영향하의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 정책은 반침략, 반식민, 반해외적대세력간섭, 반문화침투의 적극적인 작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장의 원문은 이러하다: "우리는 명청시대의 중앙정부가 취한 것은 '자주한관'의 대외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각도에서 보자면, 개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떻게 개방할 것인지, 개방범위는 얼마나 넓힐 것인지는 국가주권범위에 속한다. 국내외의 일부학자들이 간단하게 그것을 '낙후'하다고 배척하고, '야만'스럽다고 질책하며 심지어 소위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주.. 2022. 9. 8.
역사연구원의 "폐관쇄국유리론"을 반박한다. 글: 양동욱(楊冬旭) 이라는 학술논문이 최근 중국여론을 뒤흔들고 있다. 지식계에서는 '폐관쇄국'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 글의 작자는 '중국역사연구원과제조'라고 되어 있고, 6월 25일 정기간행물 에 처음 발표된다. 그리고 8월 24일 중국역사연구원의 위챗공개계정에 올린 후,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글은 근 16,000여자에 이르는 논문이고, 학술계의 '폐관쇄국'문제에 대한 연구, '폐관쇄국'의 개념연원, 명청시기 중국이 직면한 외부환경, 및 당시의 대외정책등등의 문제를 분석했다. 글에서는, 보수, 낙후, 봉쇄는 명청시기 중국사회의 주요내용이 아니고, 명청시기 대외교류의 전모도 아니라고 말하며 중국사회를 "폐관쇄국"이라는 표찰을 붙여서는 안되며, '자주한관'이라는 용어로 대체해야 한.. 2022. 9. 8.
"명청시기폐관쇄국문제신탐": '자주한관'정책의 한계성 6. '자주한관' 정책의 한계성 비록 명청정부의 '자주한관'정책은 외래침략을 방어하는 일면이 있고, 중외교류를 가로막지는 않았지만, 이 정책이 완전히 정확했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그 한계성은 아주 분명하다.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나타난다: 한편으로, 소극적인 방어가 주도적인 지위를 점한다. 16-19세기 서방식민침략세력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계속 중국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오는데, 명청통치자들은 이 역사적 대변국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나 과학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전통의 조공체계에 만족하면서, '천조상국(天朝上國)'으로 자처했고, 마음 속으로 대외왕래를 제한하거나 감소시키면 천하태평이 올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일구통상'이후 거대한 이익을 얻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해금을 실시한 .. 2022. 9. 8.
"명청시기폐관쇄국문제신탐": 명청시대 중앙정부의 대외정책 4. 명청시대 중앙정부의 대외정책 서방식민세력이 점점 압박해 들어오자, 명청 두 왕조의 통치자는 군사, 경제, 문화등 서로 다른 층면에서 일련의 정책을 취한다. 먼저, 군사적으로 서방국가에 대한 방비를 강화한다. "입중외지대방(立中外之大防)". 명나라 정덕연간, 포르투갈사신단이 베이징에서 쫓겨난 후, 중국과 포르투갈의 관계가 악화된다. 가정원년(1522년), 포르투갈선단이 중국연해로 들어갔다가 중국관병에 제지당한다. 이렇게 하여 중국과 포르투갈 사이의 "서초만지역(西草灣之役)"이 발발한다. 이 사건은 명나라통치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외이(外夷)'에 대한 불신감을 증가시켰다. 그후 명나라는 연해지구에 대한 방어를 강화했다. "혁도선(革渡船), 엄보갑(嚴保甲), 수포간민(搜捕奸民)" 해방의 관병을 정돈하고.. 2022.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