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걸 6

유통훈(劉統勛): 청나라의 보기 드문 청백리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그의 아들 유라과(劉羅鍋, 劉鏞)과 비교하면 유통훈의 명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건륭제 시절을 묘사하려면, 소설이건 드라마이건 그를 빠트릴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일생의 공적은 아들 유라과보다 훨씬 크다. 청왕조때 12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모두 8명의 문신들만이 최고영예의 시호인 "문정(文正)"을 받았다. 거기에 유통훈이 들어 있다. 당연히 이 8명 중에서는 대부분 자격미달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탕빈(湯斌)과 두수전(杜受田)같은 사람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가? 가장 명실상부한 사람은 유통훈 외에 오직 증국번(曾國藩)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종묘에 배향된 장정옥(張廷玉)이나 '표호장(裱糊匠)' 이홍장(李鴻章)조차도 '문정'의 영예는 받지 못했다. 유통훈..

가경(嘉慶)연간, 좋은 인재가 많았는데 왜 점점 쇠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청나라는 아마 건륭제만이 자칭 천조상방(天朝上邦)이라 자처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강건성세(康乾盛世)이후 청나라는 아주 명확하게 쇠퇴현상을 보인다. 역사의 철칙을 보면, 한편으로 그럴 시간이 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왕조는 거의 수백년의 기간동안 존속한다. 가경제때가 아마 흥성하다가 쇠퇴하는 기로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건륭연간에 건륭제는 여러번 강남을 순유하고, 여기에 관료들의 부정부패현상이 엄중해졌다. 옹정제때처럼 전심전력을 다하여 정무를 보지도 않았고, 쇄국정책을 쓴다. 번성하던 대청왕조는 이때부터 이미 쇠퇴의 화근이 심어진 것이다. 한(漢)나라의 경우를 보면, 한편으로 진나라에서 모든 힘을 쏟아서 건설한 각종 도로와 성곽으로 이미 아주 견..

건륭제의 총신(寵臣) 화신(和珅)이 꺼렸던 3명의 대신은...?

글: 반호노주반지연(半壺老酒半支煙) "가난한 자는 부자와 싸울 수 없다(窮不與富鬪)" "부자는 관리와 싸울 수 없다(富不與官鬪)" 이 말에 청나라 건륭연간에는 다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한족은 만주족과 싸울 수 없다(漢不與滿鬪)" 소위 '관장투(官場鬪)' 혹은 '만한투(滿漢鬪)는 그저 평서나 상성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유용(劉鏞)에게 담(膽)을 몇 개 더 빌려주더라도 감히 화신과 싸울 수 없다. 그가 만일 화신을 본다면 바로 무릎꿇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화신의 눈에 그가 꺼려야할 공작이하의 문무대신들은 오직 3명뿐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유용이나 기효람(紀曉嵐)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상 정사의 기록을 보면, 화신은 근본적으로 유용과 기효람을 눈아래 두지 않았었다. 건륭제때 ..

화신(和珅)이 건륭제의 총애를 받은 삼대비결

글: 하호연(夏浩然) 화신(1750-1799), 자는 치재(致齎), 뉴후루(鈕祜祿)씨로 만주 정홍기(正紅旗) 사람이다.사료에 따르면, "소빈무적(少貧無籍), 위문생원(爲文生員)"이라고 한다. 화신의 고조부인 니야하나(尼雅哈納)는 청나라초기의 개국공신이다. 그의 후손으로서, 화신도 자연히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