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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12

항우(項羽)의 패망후 그 휘하의 4대맹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서초패왕 항우는 힘이 남달라서,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던 맹장이다. 동시에 항우의 휘하에는 4명의 맹장이 있었다. 그들은 항우를 따라 동정서토, 남정북전하였다. 거록지전에서는 진군 40만을 격파하기도 했고, 팽성지전에서는 유방의 56만대군을 물리쳐서 위명을 천하에 떨친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패망했다. 그렇다면 그의 휘하에 있던 4대맹장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가장 먼저 얘기해아할 맹장은 용차(龍且)이다. 용차에 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분명 일찌감치 항량, 항우를 따랐을 것이고, 계속하여 항씨집안이 심복이었다. 용차는 항량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를 맡았고, 동아전투에 참가하여 진군을 대파한다. 항우의 용인술에는 특징이 있다. "그가 즐겨 기용하는 사람은 항씨일족이거.. 2021. 6. 6.
후공(侯公): 한나라 초기의 신비인물. 글: 천고명장영웅몽(千古名將英雄夢) 한신(韓信)이 제(齊)나라를 무너뜨리고, 팽월(彭越)이 전횡(田橫)을 격파하고, 영포(英布)가 회남(淮南)의 몇 개 현을 함락시킨 후, 초한(楚漢)의 대치는 마침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항우(項羽)는 갈수록 더 힘들어 졌다. 이제 항우의 서초진영의 .. 2019. 3. 13.
한신(韓信)이 스스로 왕에 올랐다면 삼족정립(三足鼎立)이 이루어졌을까? 글: 직하서생(稷下書生) 기원전203년, 초한지쟁의 관건적인 해이다. 이 해에 한신은 한군(漢軍)을 이끌고 유수(濰水)를 건너 초군(楚軍)의 일부를 격패시키고, 초군대장 용차(龍且)를 죽인다. 당시 한왕(漢王) 유방과 초왕(楚王) 항우는 양하(陽夏)의 남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유방은 한실.. 2019. 1. 26.
낭중기병(郞中騎兵): 유방의 최정예부대 글: 김릉물(金陵物) 초한전투에서 항우(項羽)의 무력은 엄청났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이다. 그의 지휘를 받는 초군(楚軍)은 백전백승의 부대였다. 진군을 격패한 후 제후들은 더더욱 그의 앞에 줄을 섰고, 항우는 자신의 영웅기개를 최대한 드러낸다. 항우의 군대는 전투력이.. 2018. 7. 17.
유방이 이성왕(異姓王)을 제거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글: 유병광(劉秉光) 천하를 빼앗는 것과 천하를 다스리는 건 서로 다른 일이다. 창업할 때는 군주가 될 자라면 부하들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야 하므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준다. 모두가 겉으로 볼 때는 화목하고 단결하며 그럭저럭 잘 지낸다; 그러나 수성할 때는 군주가 되는 자.. 2017. 1. 28.
유방은 왜 소하에 대하여 가장 마음을 놓았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유방의 수하에 많은 대신이 있었다. 이들 개국공신은 어떤 사람은 육국의 옛부하들이고, 어던 사람은 함께 혁명을 한 의형제들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일찌기 유방의 상사였던 경우도 있다. 유방은 한신을 죽이고, 팽월을 죽이고, 영포를 죽였다. 머리가 좋은 장량도.. 2015. 4. 25.
항우는 왜 제국을 잃어야 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1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시기에 성을 도살하는 것(屠城)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항우는 특히 이를 좋아했다. <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2세 2년(기원전208년), 항우는 양성(襄城)을 도살한다. 같은 해, 유방, 항우는 성양(城陽)을 도살한다. 2년후, .. 2015. 3. 26.
진한교체기의 낙백영웅들은 어떻게 재취업했는가? 글: 유려평(劉黎平) 진한시기는 천하의 판을 새로 짜는 때이다. 짧은 십여년동안, 약간의 거두가 돌연 굴기하다가, 순식간에 와해되고 말았다. 그대는 진(秦)회사가 6개의 대기업을 흡수합병한 다음, 얼마지나지 않아서, 진승,오광의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는 한 마디 외침에 판은.. 2014. 4. 29.
범증(范增)과 장량(張良)의 모략 비교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초한전쟁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한 항우가 유방의 손에 패배한다. 사람들은 항우실패의 원인에 대하여 정치군사적인 방면 외에 용인술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는 비교적 견해가 일치했다. 유방이 황제가 되고나서, 여.. 2013. 12. 24.
항량(項梁)의 사후 초군(楚軍) 내부의 권력투쟁 작자: 미상 초군(楚軍)은 잡탕밥같아서, 각종 세력이 모두 있었다. 항량이 살아있을 때는 그래도 통일시킬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 지휘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항량이 돌연 전사했고, 그 자신이 아마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않아서인지 후계자를 명확히 지.. 2013.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