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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궁5

자금성(紫金城)의 신수(神獸) 작자: 미상 모든 동물이 자금성 안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궁건축의 서로 다른 위치에는 상서로운 신수들을 놓아두었는데, 진택화살(鎭宅化煞), 구사영샹(驅邪迎祥)을 표시한다. 그리고 수백년동안 같은 자세로 있으면서 집요하게 금구영구(金甌永固), 복수영년(福壽迎年)을 나타낸다. 태화전(太和殿) 앞의 동사(銅獅) 청동으로 만들었고, 아주 정교하다. 아름다운 하얀 대리석 위에 놓여 있다. 정전(正殿)을 지키는 의미를 가진다. 오른쪽의 숫사자는 수구(繡球)를 오른발아래 밟고 있는데, 이는 천하를 통일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의 암사자는 왼발의 앞에 어린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그 뜻은 자손이 창성하라는 것이다. 태화전 앞의 선학(仙鶴)과 동귀(銅龜) 단지(丹墀) 위에 운학(雲鶴)이 서 .. 2020. 8. 31.
사진자료: 마지막 황제 부의가 자금성에서 쫓겨나는 장면 글: 왕남방(王南方) 1924년 11월 5일 오전,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부의(溥儀)가 양심전(養心殿)에서 자다가 태감이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태감은 그에게 풍옥상(馮玉祥)이 사람을 보내어 궁에서 나가라고 명령했으며, 청나라황실의 인원 전부는 3시간내에 자금성을 떠나라고 했다는 것.. 2019. 2. 25.
각비(恪妃) 석씨(石氏): 대청왕조 최초의 한족 비빈(妃嬪) 글: 소몽(蕭夢) 대청왕조의 역사상 첫번째 한족 비빈은 바로 순치제(順治帝)의 각비 석씨이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각비 석씨는 한족이고 이부시랑 석신(石申)의 딸이다. 그녀는 궁안에서 유일한 한족 비빈이었고, 강희6년 십일월 삼십일 병사한다. 원래 계현 황화산의 아래에 매장했다.. 2016. 4. 22.
옹정제는 왜 생모와 사이가 나빴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옹정은 황위를 얻은 후, 생모인 덕비(德妃) 우야씨(烏雅氏)의 첫반응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청세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우야씨는 옹정이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의 아들이 대통을 승계하도록 명하는 것은 .. 2014. 6. 23.
옹정제 생모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 글: 서흠(徐鑫) 옹정원년(1723년) 오월 이십삼일, 옹정제의 생모인 우야씨(烏雅氏)는 곤혹과 우려속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죽음이 가슴아픈 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친아들이자 밤낮으로 그리워한 십사아거(十四阿哥)와 만나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옹정제의 골육상잔을.. 2011.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