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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숭20

명나라관리 엄숭(嚴嵩)의 타락사(墮落史) (2) 글: 장금(張嶔) 6. 국사를 도외시하고 양신(良臣)을 해치다. 하투문제는 명나라 경태(景泰)연간부터 이미 명나라변방을 괴롭혀온 오래된 문제이다. 물산이 풍부한 하투초원은 오랫동안 타타르부족에 점거되어 있었다. 그들의 기병,전마를 기를 뿐아니라, 그들이 남하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가정연간부터, 하투에 자리잡은 타타르부락은 몽골초원에서 전투력이 가장 강한 엄답칸(俺答可汗)부가 되어 있었다. 엄답칸은 용병에 뛰어나고, 대병력을 이끌고 기습전을 잘 벌였다. 여러번 대거 남하하여, 변방을 휩쓴 바 있어, 명나라의 숙적이었다. 특히 가정19년부터 21년까지 엄답한은 3차례내 대규모로 산서를 침입하여, 군민을 무수히 살륙하고 약탈했다. 가정23년에는 더더욱 크게 움직여 완현(完縣)까지 다가와서 경성까지도 .. 2023. 4. 20.
명나라관리 엄숭(嚴嵩)의 타락사(墮落史) (1) 글: 장금(張嶔) 1. 가정제(嘉靖帝)의 생각 선덕(宣德)연간부터 명나라의 최고권력은 삼각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황권의 아래에 문관집단(文官集團)과 환관집단(宦官集團)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 특히 문관집단은 내각제도가 성숙되면서, 발언권이 점점 강해져서 황권에 대하여도 어느 정도 제약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같은 문관집단에 속하는 언관(言官)세력의 발언권도 크게 높아졌다. 이런 행정전통을 가정제(嘉靖帝) 주후총(朱厚㷓)은 우습게 보았다. 그의 눈에, 무슨 문관이든 환관이든 내각이든 도찰원이든 사례감이든 모조리 황제의 노재(奴才)인 것이다. 착실하게 말만 잘 들으면 되는 것이다. 국가대사는 그저 황제인 그 본인이 혼자서 결단을 내리면 되는 것이고, 나머지들은 열심히 집행만 하면 천하는 태평하게.. 2023. 4. 20.
서계(徐階) vs 엄숭(嚴嵩): 관료투쟁에서 어떻게 승리하는가? 글: 자귤(紫橘) 드라마에서 엄숭(嚴嵩)이 수보(首輔)로 있던 시기는 청류(淸流)가 엄숭(嚴嵩)과 투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청류파(淸流派)는 서계(徐階), 고공(高拱), 장거정(張居正)을 핵심으로 한다. 그중 고공이 가장 과격했으며, 영원히 엄숭일당과 정면으로 부딛쳤다. 그리고 청류파중에서 관직이 가장 높았던 사람은 차보(次輔)인 서계인데, '과격파' 고공과 비교해보면 서계는 항상 엄숭의 주변에 있었다. 서계는 몸은 내각(엄숭의 영역)에 있으면서, 마음은 청류에 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엄숭을 타도하는 것이 성공한 후, 서계가 수보를 맡고나서도 그는 엄숭에 대하여 완전히 청산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여전히 엄숭을 예로 대했다. 이는 서계의 원활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렇.. 2023. 1. 26.
민심이반(民心思變): 시진핑 최대의 정치적 위기 글: 당청(唐靑) 최고위층이 공개적으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중간관리층은 복지부동(躺平)하고, 하급간부들은 누구 말을 따라야할지 몰라서 헤매고 있다. 민간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폭행하는 악성사건이 빈발한다. 관영매체는 황소반시(黃巢反詩)로 대학입학시험을 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으며, 국방부의 전랑은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소리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부호들도 No라고 말하고, 상하이의 일부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공개적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권력을 백성들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중국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민심이 이반했다. 거기에는 3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상계(商界)의 이반이고, 둘은 관료사회의 이반이며, 셋은 민간의 이반이다. 시진핑에게 아무리 대단한 능.. 2022. 6. 13.
엄숭(嚴嵩)은 어떻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내각수보(內閣首輔)에 올랐을까?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엄숭은 자가 유중(惟中), 호는 개계(介溪)이며, 강서 분의(分宜, 지금의 강서성 신여시 본의현)사람이다. 엄숭의 부친은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쳤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미련이 컸으므로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을 세심하게 가르치고 길렀다. 엄숭은 5살때 엄씨사(嚴氏祠)에서 글을 배웠고, 9살때 현학(縣學)에 들어간다. 10세때 현시(縣試)를 통과하며, 19세때 거인(擧人)이 되고, 25세때 마침내 엄숭은 부친의 염원을 이룬다. 홍치18년(1505년), 엄숭은 을축과(乙丑科)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서길사(庶吉士)로 뽑힌다. 나중에는 편수(編修)의 관직을 받았다. 나중에 엄숭은 큰 병이 들어, 할 수 없이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2020. 7. 2.
가정제(嘉政帝)는 왜 엄숭(嚴嵩)을 중용했을까?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명세종(明世宗) 가정제는 논쟁이 많은 황제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영명하여 명태조 주원장에 비견할 만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혼용무능(昏庸無能)하여 연단(煉丹)에만 빠져있었다고 본다. 다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명세종은 즉위초기의 몇년간 확실히 잘 통치했었다는 것을 설사 후기에는 일년내내 수도에 빠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조정을 완전히 내팽개쳐둔 것은 아니었다. 명세종은 지극히 총명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황제이다. 그리고 약간은 과대망상이 있었다. 자신과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것은 엄숭과 같은 관료사회의 노련한 인물들만이라고 여긴다. 결국 명세종은 무능한 혼군이 아니었다. 엄숭(嚴嵩)을 살펴보자. 엄숭은 명나라때 강서(江西) 분의(分宜) 사람이다. 자는 유중(惟中).. 2020. 6. 30.
베이징의 노자호(老字號) 육필거(六必居)의 현액(懸額)은 엄숭(嚴嵩)이 썼을까?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TV드라마 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명나라때, 북경의 노자호 점포인 '육심거(六心居)'가 있었다. 이곳은 조(趙)씨성의 형제 6명이 창업한 것으로, "육인동심(六人同心)"이라는 뜻이다. 대신 엄숭(嚴嵩)은 육심거의 장채(醬菜)를 아주 좋아해서, 계절마다 새로운 장채가 나오면, 엄숭은 가정제(嘉靖帝)에게 한 단지씩 보내곤 했다. 가정제는 육심거의 장채를 맛본 후 아주 만족하여, 육심거의 '심(心)자에 획을 하나 추가했다. 그렇게 하여, "육필거(六必居)"가 되었다. 그리고 엄숭이 직접 현액을 써서 점포의 이름으로 삼았다.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현액을 써주었다는 주장은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육필거박물관의 공식입장은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 편액을 써준 것은 맞지만, 가정제가 육필.. 2020. 6. 11.
명나라는 정말 "시망어가정(始亡於嘉靖)"일까? 글: 기점역사(起點歷史) 가정(嘉靖, 1522-1566)은 명나라의 열한번째 황제인 명세종(明世宗) 주후총(朱厚㷓)의 연호이다. 명나라때 가정이라는 이 연호는 모두 45년간 사용되었다. 명나라에서 두번째로 길게 사용된 연호에 해당한다(가장 길게 사용된 연호는 명신종 만력제의 만력으로 모두 4.. 2019. 12. 28.
제일귀재(第一鬼才) 엄세번(嚴世藩): 금병매의 주인공 서문경의 원형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난릉소소생의 <금병매>에는 서문경이 음탕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결국 음란으로 죽는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난릉소소생은 아마도 명왕조의 대재자(大才子) 왕세정(王世貞)일 것이라고 한다. 왕세정의 부친은 엄숭(嚴嵩), 엄세번 부자의 모함.. 2019. 6. 11.
명나라 멸망의 3대원인 글: 취역사(趣歷史) 명나라의 멸망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다. 비애의 왕조이고 비애의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명나라가 도대체 왜 멸망했는지를 연구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대를 넘어 명나라를 구해주고 싶어했다. 유행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 2019.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