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 6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서태후는 왜 "노불야(老佛爺)"라고 불리웠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노불야"는 남성황제에 대한 칭호이다. 그리고 청나라의 역대황제는 모두 특별히 '노불야'라고 칭해졌다. 그러나, 서태후도 "노불야"라고 칭해지지 않았는가? 서태후는 비록 황태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류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의 조야 상하에서는 모두 그녀..

"위무왕상소용(魏武王常所用)" 석패(石牌)는 위조된 것이다.

글: 임규성(林奎成) 조조묘의 진위는 2009년말부터 소식이 나와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조지지파"들은 여러가지 증거를 내놓고 있고, "철증(鐵證)"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하여 "조조반대파"는 비록 여러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저 의문제기에 그치고 있다. 지금까지 상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