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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61

누가 원숭환을 죽였는가 -- 김용의 <원숭환평전>을 읽고.... 글: 고천활해(高天阔海) ​ 은 무협소설가 김용 선생의 글로, 1975년에 썼다. 내가 이전에 이 글을 읽게 된 것은 최근 을 보았기 때문이다. ​ 은 김용선생이 1956년에 발표한 무협소설이다(후기에서 그 자신이 자신의 두번째 소설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가 김용무협소설을 가장 먼저 접촉한 것이기도 하다. ​ 내가 당시 읽었던 김용의 무협소설은 을 제외하고, 이름을 기억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 , , , , , , .등등. 비록 그의 15부 무협소설을 을 일망타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절반은 읽었다. ​ 당시 또한 고룡, 양우생등의 무협소설도 읽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김용의 작품이다. ​ 무협지외에 나는 언정소설등 통속문학도 읽었다. 개략 젊은이들은 통속문학에 비교.. 2024. 4. 8.
동림당(東林黨)은 대명왕조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글: 요풍휘(姚豊輝) 명나라말기에는 유학자들로 구성된 동림당인들이 중용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유학자들의 글을 보면 이들 동림당인들은 '정인군자(正人君子)'였다. 그러나, 그들의 '당수'는 명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역사상의 '망국지신(亡國之臣)'임이 확실하다. 동림당의 핵심구성원들은 강남사대부를 위주로 하는 관료집단이다. 숭정제는 즉위후 동림당인들에 의지하여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다. 그들이 관직을 일단 차지하자, 말만 번지르르한 고상한 뜻을 펼치고자 했다. 고대 성인들의 이상적인 통치를 하고자 한 것이다. 관모를 쓰고 관복을 입자 이들은 득의양양하게 즉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이것을 고쳐야 한다 저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변법혁신을 주장한다. 소위 "혁제조야적폐(革除朝野積弊), 반대탐종왕법(反對貪縱枉法)"(.. 2023. 3. 21.
명나라 멸망직전에 발생한 2건의 괴이한 사건 글: 흔몽경성(昕夢傾城) 철학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새로운 사물이 반드시 오래된 사물을 대체한다" 이 진리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처음부터 강성하기 그지없고, 발군이었던 왕조도 백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다른 왕조로 쉽게 교체되곤 한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국황제 주원장은 비록 글도 몰랐지만, 여전히 국가를 조리있게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주원장이 만일 자신의 후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기실 우리가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24시간동안, 조금 노력을 했더라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그러나, 두 가지 괴.. 2022. 8. 30.
이자성은 왜 북경성을 점령한지 41일만에 패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1644년, 대명숭정17년(대순영창원년) 정월초하루, 이자성은 서안에서 정식으로 건국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하고,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성(自晟)으로 개명하고, 서안을 서경(西京)으로 개명한다. 1644년 일월, 이자성은 동정에 나선다. 삼월 십칠일 양로의 군대가 북경성 아래에 결집하고, 십구일 북경성을 함락시킨다. 숭정제 주유검은 매산(현재의 경산)에서 스르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렇게 명왕조는 멸망한다. 이자성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상을 하사했다. 명나라의 관리들에게서는 대거 재물을 긁어모안다. 그리고 우금성(牛金星)등과 등극대전을 준비하고, 신왕조의 통치질서를 건립한다. 나중에, 사월 이십이일 청군과 오삼계가 이자성의 .. 2020. 8. 22.
남명(南明)에 기회는 없었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주체(朱棣, 영락제)는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예비방안을 마련해 두었다. 북방은 어쨌든 리스크가 큰 곳이다. 그래서 남경에 온전한 행정조직을 보류해둔 것이다. 육부육과(六部六科)를 모두 갖추었다. 남명에 괜찮은 지도자만 있었더라면, 그 효율은 북경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남명이 판세를 뒤집을 기회도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스쳐지나가 버렸다. 송고종이 건염남도(建炎南渡)할 때, 그는 1인황제라 할 수 있었다. 병사도 없고 장수도 없다. 그리고 금나라군대에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그에게서 제왕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조구(趙構)는 결국 안정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점차 역량을 모아서 금나라와 대치한다. 조구는 비교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가 .. 2020. 6. 26.
명나라말기의 황제들은 무능했지만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글: 문재봉(文裁縫) 북경대학 교수인 양쿠이송(楊奎松)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얼마나 죽기를 두려워했는가"라는 글을 쓴 바 있다. 확실히 부의(溥儀)는 무척이나 죽는 것을 겁냈다. 만주국시기 부의는 죽음을 겁내서 매번 일본 관동군의 고위참모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 2020.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