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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교인24

원세개(袁世凱)는 왜 국민당(國民黨)을 해산시켰을까? 글: 투원(套元) 1913년 11월 4일, 북양군경(軍警)이 대거 출동하여, 국민당 본부를 포위하고, 중화민국 대총통 원세개가 서명한 대총통령을 읽었다. 반란의 죄명으로 국민당을 해산하고, 모든 국민당 소속의 의원과 가족은 즉시 북경을 떠나라는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오자, 북경성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각 기차역과 교통로에는 국민당 소속의원과 가족들이 북경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국민당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일찌기 최대의 당이 왜 졸지에 해산당하게 되었는가. 1. 송교인(宋敎仁) 암살, 국민당의 명성에 금이 가다. 1912년 2월 12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 부의는 퇴위조서를 반포하고, 봉건왕조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손중산을 대표로 하는 혁명당과 북양군벌의 영수인 원세개는 함께 .. 2022. 11. 8.
만청삼대협(晩淸三大俠): 곽원갑, 두심오, 여자검 글: 문사원지(文史園地) 중국인은 역사상 대체로 모두 "협객" 감정이 있다. 무엇이 협객인가? 아마도 천명이 있으면 천명 모두 협객을 서로 다르게 정의할 것이다. 태사공 사마천이 협객을 별도의 전으로 넣은 때로부터 시작한다. <사기.자객열전>에는 형가, 전제가 비로 협간의담의 .. 2017. 10. 25.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글: 대중일보 1913년 3월 20일 밤, 후닝(滬寧)기차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와 함께, 송교인은 배웅나온 황흥, 우우임 그리고 요중개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검표소로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검.. 2014. 4. 4.
송교인: 부서진 헌정꿈 글: 김만루(金滿樓) 신해년에 혁명당(革命黨) 사람들은 일심동체가 아니었다. 그중 손중산 일파와 송교인 일파는 이념에서 엄중한 이견이 있었다. 일찌기 동맹회 시절에 황흥(黃興)과 손중산(孫中山)간에 미래 국기(國旗)를 다투는 사건이 있었다. 송교인은 손중산이 "평소에 솔직히 털어.. 2014. 2. 9.
북양총리 조병균(趙秉鈞)은 왜 원세개에게 암해(暗害)를 당했는가? 글: 장부걸(張溥杰) 조병균은 자가 지안(智安)이고 하남 임여(臨汝) 사람이다. 1859년에 태어나서 19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신세내력은 상당히 전설적이다. 상당히 "이 형님은 하나의 전설이다"라는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는 유랑아로 성이 무엇인지도 .. 2014. 1. 14.
원세개시대의 언론자유 글: 부국용(傅國涌) 송교인이 졸지에 암살당하고, 새로 탄생한 민국에는 파란이 일었다. 손중산은 무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금방 원세개의 우세에 밀려 무력으로 패배당한다. 민국의 창업자인 손중산, 황흥은 다시 망명길에 들어선다. 장태염(章太炎)은 북경에 연금되어 있었.. 2013. 12. 22.
송교인식의 정치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다. 글: 정만군(程萬軍) 송교인암살100주년을 맞이하여 무수한 찬양의 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중국인의 오래된 고질을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좋다고 하면 무한히 끌어올린다. '호인'의 과실과 반성을 얘기하는 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신해혁명후의 중국제일정당의 실제창시자로서 송교.. 2013. 11. 16.
송교인: 중국근대헌정의 최후희망 글: 장천범(張千帆) 나는 개인적으로 미신이 있다. 항상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다고 믿는다. 백년전의 그 13(1913년)에 과연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3월 20일 저녁, 상해 기차역에서, 한 발의 총탄이 청넌정치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이것은 보통.. 2013. 11. 10.
송교인암살사건의 분석 글: 풍학영(馮學榮) 1913년 3월 20일, 송교인이 상해에서 암살당한다. 3월 22일, 송교인은 수술을 받았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하여 사망한다. 이 암살사건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원세개설, 다른 하나는 진기미설. 필자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상해 각계매체의 이사건 .. 2013. 9. 14.
송교인같은 정치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다. 글: 정만군(程萬軍) 송교인암살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글들이 그를 칭송하고 있다. 또 한번 중국인들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누구든 좋게 보면 무한히 끌어올리고, '호인'의 과실과 반성은 거의 없다. 의문의 여지없이, 신해혁명후 중국제1정당의 실제창시자로서, 송교인은 대단한 인.. 2013.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