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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령20

손중산(孫中山)의 일본인 처와 후손.... 글: 옥미수(玉米穗) 듣기로 일본수상을 지낸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는 손중산에게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손중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는 혁명, 둘째는 여자, 셋째는 독서. 손중산은 과연 불세출의 위인이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고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여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중 하나라고. 손중산은 여자들과 연분이 많았다. 그는 일생동안 혁명사업에 바빴지만 주변에는 항상 여인이 있었다. 본부인 노모정(盧慕貞)은 그와의 사이에 아들딸을 낳아서 길렀다. 그녀는 전통적인 구식여인이었으므로, 그를 따라 동분서주하며 '천하위공(天下爲公)'의 혁명사업을 할 수는 없었다. 노모정은 비록 집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대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손중산에게.. 2021. 12. 4.
민국 제일미녀는 누구인가? 글: 이자지(李子遲) 민국의 미녀를 얘기하자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사대미녀"라는 말도 있다. 완령옥(阮令玉), 주선(周璇), 육소만(陸小曼), 임휘인(林徽因)을 가리킨다. 그리고, "십대미녀"라는 말도 있다. 위의 사대미녀에 맹소동(孟小冬), 당영(唐瑛), 능숙화(凌淑華), 은명주(殷明珠), .. 2018. 12. 1.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송경령(宋慶齡) 말년의 알려지지 않은 혼인 글: 왕사여연(往事如煙) 송경령은 이름도 유명한 20세기의 위대한 여성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고한 국가명예주석으로 그녀는 일생동안 무사무외(無私無畏)했다. 그녀와 국부(國父) 손중산과의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손중산을 제외하고 말.. 2016. 3. 19.
"사서(史書)"와 "사실(史實)"의 진위 글: 소화(韶華) 1. 진실한 역사를 쓰기는 어렵다. 옛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또한 말한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이다" 승리자가 역사를 쓰면 항상 자신의 좋은 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나쁜 점은 회피하고자 한다. 당대왕조의 사.. 2014. 4. 29.
당나라때의 송씨삼자매(宋氏三姉妹) 글: 진사황(秦四晃) 역사는 숙명인지 교합(巧合)인지, 항상 비슷한 경우가 많다. 중화민국의 송씨삼자매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은 한때 이름을 떨치고 그 명성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대당왕조시기에도 송씨집안에서는 일찌기 3명의 비범한 자매가 나타난 바 있다. 양자의 유일한 구분.. 2014. 4. 4.
송미령(宋美齡)의 마지막 30년 글: 란혜(欒慧), 복창형(卜昌炯) 남편이 죽은 후 28년만에 송미령도 세상을 떠난다. 호평과 악평이 넘쳐나는 남편과는 달리,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의 우아함과 풍채일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그녀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계속 갱신되었고, 그들이 송미령.. 2013. 12. 6.
남창의거(南昌義擧)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글: 고칙서(顧則徐) 남창의거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것은 원래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고(文告)가 있기 때문에 분명히 간단하다. 그러나 역사서술의 변화로 이 문제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로 변한다. 복잡하고 또 복잡해졌다. 간단하.. 2013. 11. 10.
진벽군(陳璧君): 민국제일미남을 굴복시킨 기여자(奇女子) 글: 녕녕(寧寧) 왕정위(汪精衛)는 혁명지사이고 대재자이다. 국민당 제일미남이다. 일찌기 빛나고 현란하며 무수한 미인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그와 평생을 함께한 여인은 용모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진벽군이었다. 1891년, 진벽군은 남양 말레이시아의 화교 거부 집안에서 .. 2013. 4. 13.
황혜란(黃蕙蘭): 민국시대의 패션리더 글: 장방주(蔣方舟) 무책임한 소문들에 따르면, 1920년대 송경령과 손중산이 광주를 떠나 북평(북경)으로 왔을 때, 송경령은 자신이 입고 있는 의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마침 외교관인 고유균(顧維鈞)의 집에 머무는 기회에, 그녀는 고유균부인의 옷장을 훔쳐보았다. 왜냐하면 고.. 2010.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