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왕 20

강희장(江希張): 10살때 총통의 막료가 된 민국제일신동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강희장은 광서33년(1907년) 정월 초이틀에 산동성 제남 남력성현 강가장에서 태어난다. 부친 강종수(江鍾秀)는 농민출신으로 20년간 힘들게 공부하여,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다. 그는 제남의 성수묘(星宿廟)에 의학(義學)을 세운다. 그리고 <공맹도가>, <흥..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안배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자희(慈禧), 만주족. 예허나라씨. 안휘 휘냥 지광태도, 증삼등승은공 혜징(惠徵)의 딸. 옥첩(玉牒), 즉 황족족보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하다: "예허나라씨. 혜징의 딸" 아명은 난아(蘭兒)이며, 예허나라가족중에서는 그녀가 행아(杏兒)라고 불리웠다. 함풍원년, 즉 1851..

만주국의 친일분자에도 등급이....조선인은?

글: 김쾌락(金快樂) 왕정위(汪精衛)는 근대중국의 두호한간(頭號漢奸), 즉 최대매국노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가장 기분나쁜 날이 언제였을까? 1943년 11월 5일도 분명 그 후보일자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다지 별다를 것도 없는 이 날에, "국민정부주석" 겸 "군사위원회위원장"이던 왕정위 ..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섭정왕 도르곤의 급사에 관한 수수께끼

글: 문방장궤(文房掌樻) 도르곤은 섭정을 한지 7년만에 돌연 급사한다. 그의 사인에 관하여 공식사서에서는 모호하게 얘기한다. 만주족은 처음에 말타고 활쏘는 민족이었다. 귀족은 매를 풀어서 사냥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편으로 유락이며 다른 한편으로 무술연습이었다. 교육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