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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6

<죽서기년(竹書紀年)> vs <사기(史記)> : 어느 기록이 더 믿을만할까? 글: 독서문사(讀書文史) 중국역사상 이런 기서(奇書)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고, 그리하여 봉건정통완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의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얘기하자면, 먼저 전설적인 사건부터 시작해야 한다. 1. 의 출토: 도굴꾼과 관련이 있다. 태강2년(281년) 하내군(河內郡) 급현(汲縣, 지금의 하남성 위휘시)에서 중국역사상 중요한 영향이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준(不準)이라는 도굴꾼이 교외지역의 한 고묘를 도굴했다. 아마도 그는 묘를 파헤친 후 새카만 묘실에서 가지고 온 횃불이 금방 다 타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묘실에는 대량의 죽간(竹簡)이 쌓여 .. 2022. 5. 1.
"고구려"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은...? 글: 장궁유심(長弓有心) 1. [한국] 고구려는 부여(扶餘)인이 건립했다. 부여인은 조선인의 주요 뿌리중 하나이다. 고구려(졸본부여)와 백제(남부여)는 모두 부여국의 연속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주요주민은 신라와 발해의 주민이 된다. 긜고 발해국이 거란에 멸망한 후, 그 주민은 대부.. 2018. 8. 2.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三皇)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글: 정정(丁丁) 중국역사상 "삼황오제"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하여는 정설이 없고 각양각색의 견해가 난무한다.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하다. 첫째, "삼황오제"는 중국역사상 위대한 인물이고, 중화민족발전의 창시자적인 인물이며 중화민족의 .. 2016. 8. 14.
진시황은 왜 말년에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짐"은 1인칭대명사로 "나"라는 뜻이었다. 남녀노소, 존비를 불문하고 모두 자신을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기원전221년,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진왕 영정은 천하를 통일한 지고무상의 군주가 된다. 영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 2015. 12. 29.
중국역사상 100살을 넘긴 두 명의 제왕 글: 진령신(陳令申) 중국 5000여년의 역사 흐름 속에서, 여러 제왕들은 불사약을 구하고, 선단을 만들어 장생불로하면, 천추만세에 걸쳐 통치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를 보면 장생불로의 굼은 그저 경화수월(鏡花水月)의 환상에 불과하고, 실제에 맞지 않는다.. 2015. 4. 25.
고힐강(顧頡剛): 중국고대사에 원자폭탄을 던진 인물 글: 한삼주(韓三洲) 90년전인 1923년 5월, 30살된 고힐강은 공개적으로 전현동(錢玄同)에게 보내는 1통의 서신과 안어(按語)를 발표해서, 명확히 그의 "겹겹이 쌓아서 만든 중국고사(層累地造成中國古史)"이론을 제기한다. 이 이론의 기본내용은 이렇다. 선진(진나라이전)의 역사기록은 한 층.. 2013.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