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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리5

몽금십년전쟁(蒙金十年戰爭): 초원제국과 삼림제국의 결전 글: 문재봉(文裁縫) 1209년, 몽골제국은 건립된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징기스칸은 정예병을 양성해서 군사력이 강성해진다. 그는 초원의 백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거두어 들였다. 점점 세력이 커진 징기스칸은 다음 확장목표로 금나라를 겨냥한다. 이전까지 몽골은 금나라의 속국이었다. 다만 현재 몽골은 이미 옛날의 몽골이 아니다. 징기스칸은 이제 몽골은 그 어느 나라와도 일전을 벌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금나라가 이전에 목려(木驢)의 혹형으로 안바하이칸을 처형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이 해에 금장종(金章宗)이 붕어하고, 완안영제(完顔永濟)가 황위를 승계한다. 그는 문약한 서생이고, 징기스칸은 이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를 무시했다. 다음 해, 완안영제는 사신을 몽골로 파견해서,.. 2021. 4. 21.
사천택(史天澤): 원나라때 유일한 한족(漢族) 승상 글: 종횡오천년(從橫五千年) 원나라는 몽골인이 건립했다. 그래서 관리임용방면에서 민족색채가 농후했다. 고위관료는 거의 모두 몽골인, 색목인이었다. 대다수의 상황하에서, 한족은 그저 중하급관리만 맡을 수 있었다. 기실 원나라 역사상 한인 승상이 한 사람 배출된 바 있다. 유일한 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출장입상(出將入相) 50여년간 쿠빌라이의 신임을 크게 받았다. 그렇다면 그 전설적인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원나라초기의 명장(名將) 사천택이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사천택은 하북 영청현(永淸縣) 사람이다. 부친의 이름은 사병직(史秉直)이다. 사씨집안은 금나라에 충성하지도 않았고, 남송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현지의 호족이다. 사천택의 큰형 사천예(史天倪)는 의리를 중시하고 재산을 가볍.. 2020. 11. 2.
중국역사상 전신(戰神)이 될만한 72명의 장수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홍콩대작영화를 보면 우리는 경찰이건 흑사회이건 모두 관공(關公)을 모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무묘(武廟)에 대한 것은 모두 청나라때부터 시작된 관공무묘(關公武廟)에 머물러 있다. 혹은 아마도 살신(殺神) 백기(白起)를 떠올릴지.. 2019. 10. 2.
송원명청(宋元明淸)시기에 '전국옥새(傳國玉璽)는 어떻게 와전되었는가? 글: 노후(老猴) 전국옥새에 관한 문제에 관하여 필자는 채동번(蔡東藩)의 <중국역사통속연의>를 읽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일찌기 한(漢)나라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까지 전국옥새의 전승과정을 쓴 바 있다. 거기에서 석경당이 낙양을 공격하면서 후당의 마지.. 2019. 1. 3.
다르후트(達爾扈特)인: 징기스칸능의 수호자 글: 취역사(趣歷史) 관직을 맡지도 않고, 세금을 내지도 않으며,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대대로 전한다. 700여년동안 한 전설의 몽골부락인 "다르후트"는 징기스칸능의 영워한 수호자가 되었다. 이 부락은 1227년 징기스칸이 병사한 이후 지금까지 충성스럽게 그의 능묘를 지키고 있다. 신중.. 2018.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