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 10

중국, 진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제도의 다툼은 유래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승패가 결정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군자간의 싸움은 문(文)으로 싸우는 것이건, 무(武)로 싸우는 것이건 "무덕(武德)"을 중시하고, '규칙'을 지킨다. 이긴 사람도 광명정대하게 이기고, 지는 사람도 기꺼이 승복한다. 주변에서 방관하는 사람들도 모두 좋다고 외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깡패 무뢰배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패배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Q와 같이, 그들은 싸우는 과정에서 하한선이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不擇手段), 일체의 댓가도 마다하지 않는다(不惜代價)". 음험한 수법, 자신이 손해보는 수법도 기꺼이 쓴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입으로는 계속하여 소리친다. 모..

팽덕회(彭德懷) 죽음의 배후

글: 임휘(林輝) 1974년 12월 17일, 한 구의 시신이 301병원에서 비밀리에 화장장으로 보내어져 화장된다. 화장신청서에 쓰인 것으로는 "신청인: 왕규(王奎), 주소: 301, 사망자와의 관계: 부자, 사망자성명: 왕천(王川), 남, 76세, 번호: 0012690" 사실상, 이 왕천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바로 중국의 전 국방부장, 원수 팽덕회였다. 중공내부에서 팽덕회는 성격이 솔직하고, 충동적이며, 감히 직언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항전시기, 팽덕회는 중공의 적극항전을 주장했다. 서북의 구석에 숨어서 병력과 힘을 비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주도한 "백단대전(百團大戰)"은 바로 모택동의 '마작전'만 하라는 지도사상을 어기면서 진행한 것이다. 이 전투는 중..

싼샤댐 건설자가 알려주지 않은 사실은......

글: 양자립(楊子立) 금년, 충칭에서 사상유례없는 물난리가 나고, 장강유역이 홍수피해를 입으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싼샤공정의 가치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게 된다. 실제로 중국정부게 조직한 싼샤공정의 타당성검토보고서에서 열거한 '홍수방지, 발전, 통항, 부빈(扶貧)등'의 이점중 발전이 실현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타당성검토보고서에서 해결가능하다고 말했던 진흙모래퇴적, 생태보호, 환경안전, 댐지구이민, 투자과대등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정부의 선전부서에서 여전히 싼샤댐은 유용하다는 논조를 취하는 외에, 과학계의 보편적인 태도는 부정적이다. 다만, 1980년대 중국과 외국의 관계가 우호적일 때, 캐나다, 미국의 많은 설계, 연구, 건축..

중국과 인도의 충돌: 중국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인도를 친다

글: 정효농(程曉農) 금년 5월이래, 중국-인도간에는 58년간 지속되던 평화상태가 깨져버리고 다시 한번 충돌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국은 매번 대외관계가 긴장되고 대내경제사회정책이 실패하면 비교적 약한 이웃나라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택된 약한 이웃나라는 두번 모두 인도였다. 옛날 모택동이 곤경에 처했을 때의 기본전략은 "잘못을 범할수록 담담하게 전선을 옮겨서 출로를 찾는다." 현재 다시 한번 이 전략이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1962년 중인전쟁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 두번의 굴기, 두번의 곤경 최근에 폭발한 중국-인도국경충돌은 사건 자체로만 보자면, 마치 오랫동안 양국의 국경분쟁의 일..

모택동은 소년때 노동을 좋아했을까?

글: 오비(吳非) [주: 이 수필은 개략 1999년에 썼고, 3년전에 수정을 했다. 그러나 어느 신문잡지에도 발표할 수 없었다. 연초에 남방의 어느 잡지가 이미 싣기로 하고, 편집인이 제목을 "모택동은 소년때 논밭노동을 좋아했을까"로 두 글자를 추가시켰다.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래도 최종심의를 통..

대약진시대에 벌어진 황당한 일들

중공중앙정치국은 1958년 8월, 북대하에서 확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후에 중국은 "전민연강(全民煉鋼, 모든 사람이 강철을 제련함)"과 농촌인민공사화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대약진운동에서 각종 기이한 일들이 발생했는데, 예를 들면 인민공사식당에서 원숭이머리요리, 제비집요리를 먹는가하면, 강..

대약진(大躍進) 시대에 몇 명이 죽었는가?

역사상 1959-1962년을 "대약진"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 3년의 "대약진"은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재난을 가져왔고, 적어도 굶어죽은 사람이 4천여만명에 달하였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3년의 대재난을 "3년자연재해" 또는 "3년곤란시기"라고 부름으로써 책임을 "천재(天災)"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