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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8

역사미스테리: 이자성(李自成)의 죽음 글: 이보림(李保林) 명나라말기, 이자성이 이끄는 농만군은 270여년간 이어지던 명왕조를 무너뜨린다. 다만 북경에서 겨우 49일간 머물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많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특히 이자성의 사인(死因)은 몇세기의 논쟁을 거쳤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그 원인은 주로 이자성이 죽을 때는 전쟁이 한창중이며, 대순군이 청군에 쫓겨 사방으로 도망쳐 다니면서 궤멸한 비상시기였고, 게다가 관방사서 및 일부 사적에 기록된 이자성의 사인은 믿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이자성의 사인은 수수께끼가 되고 복잡다단하게 되었다. 1 이자성의 사인에 관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의 기록일 것이다: 순치2년 구월, 이자성은 패배하여 호북(湖北) 통성(通城)의 구궁산(九宮山)으로 물러난다. "스스로 20기.. 2023. 3. 3.
이자성은 왜 북경성을 점령한지 41일만에 패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1644년, 대명숭정17년(대순영창원년) 정월초하루, 이자성은 서안에서 정식으로 건국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하고,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성(自晟)으로 개명하고, 서안을 서경(西京)으로 개명한다. 1644년 일월, 이자성은 동정에 나선다. 삼월 십칠일 양로의 군대가 북경성 아래에 결집하고, 십구일 북경성을 함락시킨다. 숭정제 주유검은 매산(현재의 경산)에서 스르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렇게 명왕조는 멸망한다. 이자성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상을 하사했다. 명나라의 관리들에게서는 대거 재물을 긁어모안다. 그리고 우금성(牛金星)등과 등극대전을 준비하고, 신왕조의 통치질서를 건립한다. 나중에, 사월 이십이일 청군과 오삼계가 이자성의 .. 2020. 8. 22.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2019. 1. 12.
이자성 행방의 수수께끼.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이자성은 섬서(陝西) 미지(米脂) 사람이다. 그의 집안은 아주 가난했고, 역졸(驛卒)을 지낸 바 있고 변방의 병사로도 있었다. 나중에 그는 농민반란군에 참가하여 명나라에 대항한다. 그리고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때 명나라는 이미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 2018. 6. 26.
장헌충의 도심술(盜心術) 글: 호각조(胡覺照) 사천(四川) 광한(廣漢)의 방호공원(房湖公園)에는 장헌충이 쓴 성유비(聖諭碑)가 하나 있다. 이는 대순(大順)2년(1644년)에 세운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천유만물여인(天有萬物與人) 하늘은 만물을 사람에게 주었다. 인무일물여천(人無一物與天) 사람은 하늘에 한.. 2015. 2. 10.
광시형(光時亨): 명나라말기 남천을 저지한 인물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송나라에 이어, 명나라도 또 하나의 '망천하(亡天下)'의 왕조가 되었다. 다만, 송나라와 명나라를 비교하면, 남송은 한세기반동안 연속되었는데, 소위 '남명'은 겨우 십여년간 잔존했을 뿐이다. 한, 당과 비교하더라도, 명나라에는 '삼국' 혹은 '남북조'의 국면이 나.. 2014. 4. 4.
이자성(李自成): 세금없는 나라를 만든 단명황제 글: 유전(劉典) 세수(稅收)는 국가의 운영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경제적인 보장책이다. 세수라는 말을 둘러싸고, 여러해동안 너무나 많은 희비극이 벌어졌다. 오늘날의 우리가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이런 황제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고, 세수가 .. 2012. 2. 2.
명나라멸망후 숭정제의 자녀들은 어디로 갔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명나라 숭정17년(1644년), 이자성이 서안에서 대순정권을 건립한 후, 농민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격했다. 같은해 삼월 십육일 북경을 포위하고, 맹공을 개시한다. 숭정17년 삼월 십구일, 숭정제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느끼고, 주황후는 자결케 하고, 비, 빈, 공주를 직접 칼을 들.. 201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