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9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1)

글: 하월명(賀越明) 2012년 8월 23일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2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이 타도되면서, 나라를 떠난지 오래되고 이름없이 살아가던 그가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들이 화제로 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일찌기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 1970년대말부터 현재까지, 신문잡지에는 당납을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수가 많아서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이들 글 중에서 이전에 당납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몇몇 언론종사자들의 회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포풍착영(捕風捉影)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수준이었고, 적지 않은 글들은 ..

당납(唐納): 강청(江靑)의 전남편, 모택동을 만나다.

글: 문사춘추(文史春秋) ㅇ 1930년대 '남평(藍萍)'이라는 예명으로 상해탄 영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강청은 일찌기 다재다능하며 다수선감(多愁善感)한 저명한 영화평론가 당납(그의 본명은 馬驥良이다)과 곡절많은 혼인생활을 겪었다. 이들의 이혼사건은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 그러나 당납이 강청과 이혼한 후에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37년 7월 노구교사건이 발생한 후, 절망에 빠진 남평은 상해를 떠나 섬북(陝北)으로 간다. 연안에 들어갈 때, 남평은 이름을 강청으로 바꾼다. 그녀는 불안정했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심계가 뛰어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고,..

모택동과 강청의 결혼: "주석결혼(主席結婚), 경천동지(驚天動地)"

글: 일명(佚名) "주석결혼(主席結婚), 경천동지(驚天動地)" 1938년 11월 20일, 하자진(賀子珍)이 소련으로 떠난 후 근 1년간 홀아비로 지내던 모택동은 상해에서 온 여배우 남평(藍萍)과 결혼을 한다. 바로 이 날, 연안은 돌연 일본군 전투기의 폭격을 받는다. 그래서 민단에서는 이 명언이 생..

당납(唐納): 강청(江靑) 전남편 신분의 수수께끼.

2012년 8월 23일, 이 날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24주년이 되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의 몰락과 더불어 나라를 떠난지 여러해 되고, 거의 이름없이 지내던 당납이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이 마음대로 ..

강청(江靑)과 진계정(秦桂貞)

글: 섭영렬(葉英烈) 그녀는 진계정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모두 그녀를 아계(阿桂)라고 부른다. 원래 그녀의 일생은 아주 평범하고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21살때, 한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같은 나이의 "남소저(藍小姐)"를 알게 된다. 진계정은 당시 상해 환룡로(지금의 남창로)의 허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