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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18

모안영(毛岸英)의 죽음과 팽덕회(彭德懷)의 관계 글: 안창해(顔昌海) 오랫동안 중국당국의 공식 선전내용은 이러했다: 모택동은 "항미원조(한국전쟁)"를 위하여, 자진하여 장남 모안영을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시켰고, 모안영은 한국전쟁에서 희생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공식 선전내용의 모택동이 자신하여 장남을 한국전쟁에 보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모안영이 인민지원군에 들어간 것은 조직의 안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과 팽덕회는 관련이 있을까? 사건의 내막은 이러하다: 1950년 10월 3일, 모택동은 김일성으로부터 다급한 도움요청서신을 받는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서 아군의 작전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월 5일, 모택동은 한반도에 출병하여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10.. 2023. 5. 25.
김약산(金若山)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정리: 원빈(袁斌) 사마로(司馬璐)는 18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살때 연안에서 항일군정대학 도서관장을 맡았으며, 20살에 연안판사처 주임이 된다. 그는 중국공산당을 떠난 후 오랫동안 당사(黨史)연구에 종사하여, 당사전문가로 불린다. 사마로는 연안의 신화사에서 일할 때, 그의 직접상사는 그의 '조직관계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신화사에서 내보낸다. 이어서 다시 '조직'은 그를 연안에서 내보닌다. 그에게 국통구(國統區)로 가서 '시험'을 받으라고 한 것이다. 이 직접상사의 이름은 서빙(徐氷)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몇년후, 사마로는 중경에서 서빙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여기서 주은래(周恩來)와 사마로가 얽힌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1940년 8월, 사마로는 중경으로 간 후, 그가 연안.. 2022. 8. 27.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획정 비화: 백두산과 압록강 작자: 일명(佚名) 백두산(장백산)은 지금까지 만주족이 기원한 '용맥(龍脈)'으로 여겨져 왔다. 장백산에 들어가서 산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청나라조정은 이런 활동이 용맥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해서, 동북지방에 대하여 200여년에 걸친 봉금정책(封禁政策)을 실시하여, 장백산(백두산)지구, 압록강, 토문강등 중국-조선변경지역을 '봉금'의 핵심지구로 삼아 진입을 엄금했다. 나중에 오랫동안의 봉금정책으로 동북변방지역은 사는 사람이 드물어져서 국경방어가 느슨해진다. 그리하여 심각한 국방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청나라 도광이후 제정러시아등 열강의 침략확장으로 이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리하여 조선의 변방주민들이 불법월경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 1860년부터 1870년까지.. 2022. 2. 16.
한국전쟁: 미,러,중,남,북의 5개국 교과서는 어떻게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가? 글: 현혁당(炫赫堂)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중국, 미국, 북한, 남한, 여기에 소련의 일부 군대가 한반도에서 3년간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백만의 생령이 도탄에 빠지며 결국 다시 북위38도선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 각 나라 국민의 기억 속에서 60여년전의 그 전쟁은 각국이 서로 다른 명칭인 "항미원조" "625전쟁" "한국전쟁"과 "조선조국해방전생"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반도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오늘, 그 세계를 뒤흔든 전쟁에 대하여 각자의 역사기술은 전쟁사 및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결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여러 쪽의 얘기를 듣게 되면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중국, 미국, 러시아, 북한, 남한은 각각의.. 2020. 10. 25.
평양지하철: 북경지하철건설을 중단하고 평양지하철을 무상지원했다 글: 간중국(看中國) 중공이 오랫동안 감추고 말할 수 없던 비밀이 있다: 1966년, 모택동은 김일성을 회유하기 위해, 북경지하철공사를 중단하면서까지 우선적으로 평양지하철건설을 지원했다. 그런데 화가 나는 것은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 김일성은 경축행사때 세계에 이렇게 선포했다는 것이다: "평양지하철은 조선인이 스스로 설계하고 건설하였다." 북한여행을 하면,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아무 버스나 탈 수는 없다. 북한당국은 외국인이 일반북한민중과 근거리에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다만, 평양의 지하철은 예외이다. 관광객들은 모두 평양지하철의 역 하나를 구경한다. 북한당국이 보기에, 화려한 평양지하철은 각국의 관광객들에게 자랑할만한 건설의 성취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다수.. 2020. 10. 6.
중국의 한국전쟁참전: 출병결정과정 글: 황영욱(黃迎旭) 한국전쟁은 신중국이 싸운 최초의 대규모 국부전쟁이다. 상대는 미국이라는 세계최강국이었다. 이는 아주 힘든 시험이었다. 신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시험받을 뿐아니라, 더더구나 신중국의 지도자들이 시험받는 것이다. 모택동을 핵심으로 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 2020. 1. 9.
중국의 한국전참전결정의 경위 글: 역사학인(歷史學人)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의 국면이 완전히 바뀐다. 미군 맥아더원수의 지휘하에 미군 7만여명, 500여기의 비행기, 260척의 군함이 협력하여 인찬상륙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의 퇴로를 포위한다. 9월 16일, 낙동강전선의 한미군 10개사단이 대거 반격을 시작한다. 미군.. 2018. 7. 28.
장쩌민과 북한정권과의 관계연원 글: 진사민(陳思敏) 시진핑이 "18대"에서 최고지도자에 오른 후, 처음으로 관영매체에서 "일찌기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전임 및 현임 당과 국가지도자"를 정리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2년전이다. 그것은 신경보(新京報)가 2015년 10월 5일 발표한 것으로 제목은 <25년간 최소한 17명의 중공.. 2017. 9. 24.
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의 관계 글: 심지화(沈志華) 20세기의 대부분 기간동안 중국과 북한 양국은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절대다수의 중국인의 인상 속에서, 1949년이래 북중관계는 중소관계와 큰 차이가 있다: 중소관계는 경계가 분명하다. 전10년간 소련 큰형님은 모든 것이 좋았다. 신문뉴스에는 찬송하는 보도만이 .. 2014. 7. 17.
2014년 북한의 법정공휴일 글: 진전요(秦全耀) 2014년 북한의 법정공휴일은 15일이다. Daily NK 가 최근에 입수한 조선외문출판사가 발행한 2014년 달력을 보면,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등 주요 국가기념일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끈 김정은 생일(1월 8일)은 법정공휴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 .. 2014.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