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진)40 법가(法家)는 GDP에 관심이 없다 글: Achilles한번은 누군가 나의 지후(知乎)의 답글에 댓글을 달아놓았다: "한비자(韓非子)는 대철학가(大哲學家)이다." 나는 크게 놀랐다. 여기에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나는 중국고대에는 철학가가 없었다고 보는 그런 무지한 사람은 아니다. 만일 누군가 노자, 장자를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전혀 이의가 없다. 공자, 맹자가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윤리학도 철학으로 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아니다. 한비자의 학설에서 학문을 하는 것은 모두 사회의 좀같은 존재이다. 그와 동창인 이사(李斯)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행하지 않았던가. 어디 철학가가 자신의 판을 깨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비자도 철학.. 2024. 11. 10. 진승오광의 난때 진나라의 정예부대는 왜 출동하지 않았을까? 글: 역사유희유비(歷史有喜有悲)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여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제국을 창건했고, 중국의 역사발전에 중대하고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진나라의 유명한 4대군단은 제국의 역사상 무시할 수 없는 작용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승오광의 난때, 백만의 진나라 정예병사들은 왜 출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최정예부대는 국외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원전209년 가을, 대택향(大澤鄕)에서 진승, 오광이 이끄는 진나라말기 농민의 난이 발발한다. 그러나, 대진제국의 수도방어전에서 반란군에 저항한 부대는 죄수와 소수의 수도어림군으로 구성된 잡패군(襍牌軍)인 여산군단(驪山軍團)이었다. 진나라가 육국을 멸망시킬 때의 백만정예병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원래, 육국을 멸망시키고 천.. 2024. 2. 29. 진(秦)나라의 조상은 동이족(東夷族)인가? 글: 장회통(張懷通), 권필성(權弼成) 진나라 조상의 기원을 탐색하게 된 계기 진인(秦人)의 기원(起源)에 관한 기록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이다. 에는 주효왕(周孝王)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짐은 그들에게 영토를 내주어 부용국으로 삼고 진(秦)의 땅에 살게하여 영씨(嬴氏)의 제사를 잇게 한다. 그리하여 '진영(秦嬴)'이라 한다." 이는 늦어도 서주시기에, 혈연관계와 지연단위를 핵심요소로 하는 '영진(嬴秦)'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이들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진인(秦人)'이다. 진나라 초기역사연대는 서주에서 춘추초기까지이다. 즉 기원전677년 진덕공(秦德公)이 옹(雍)에 거하기 이전이다. 사학계에서 진나라초기역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문헌자료상 진선공(秦先公)의 소재지역, 이주등 활.. 2023. 5. 25. 진나라가 멸망할 때, 남방에 수수방관한 50만대군이 남아있었는가? 글: 곽엽민(郭曄旻) 중국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로서 대진제국(大秦帝國)의 속흥취망(速興驟亡, 빠르게 흥성하고 급격히 망하다)은 역사상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의 “독부지심(獨夫之心), 일익교고(日益驕固)”하여, “수졸규(守卒叫), 함곡거(函谷擧)”까지 겨우 몇 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10여년전에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역사다큐멘터리 에는 이에 대해 한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제국의 존망위기에 남부변방을 지키고 있던 50만 진군이 침묵을 선택했다” “철저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대제국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널리 알려졌고, 논리적으로 그럴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확실히, 가의(賈誼)가 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진나라는 산동6국을 평정한 후, 군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행동을 .. 2022. 6. 6. "초수삼호(楚雖三戶), 망진필초(亡秦必楚)"의 뜻은? 글: 하동노경(河東老景) 에는 이런 기재가 있다: "무릇 진이 육국을 멸할 때, 초나라가 가장 죄가 없었다. 초회왕이 진에 들어간 이래 반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초회왕을 가련하게 여긴다. 그래서 초남공은 "초수삼소, 망진필초"라고 하였다." (남공은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음양가이며 31편을 지었다.) 족보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초나라는 세자로 대표되는 왕족(적장자 혹은 왕장자)이외에, 나머지는 갈라져 나가서 많은 "씨(氏)"를 가진다. 초왕의 나머지 아들들은 "씨"를 가진다는것이다. 그 중에서도 소(昭), 굴(屈), 경(景)의 세 씨가 가장 강대해서 초나라의 지주였다. 삼족의 자제들은 초나라의 고위관직을 세습하여 맡아왔다. 굴원은 일찌기 삼려대부(三閭大夫)를 맡았는데.. 2019. 1. 13. 장평지전(長平之戰)때 백기(白起)는 40만 조군(趙軍)을 갱살(坑殺)했는가? 글: 대취후의생(大嘴猴醫生) 진나라의 명장 백기는 후인들이 전신(戰神)이라 떠받든다. 왜냐하면 그는 일생동안 70여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장평지전이다. 백기는 진나라병사를 이끌고 조괄(趙括)이 지휘하는 조군을 격패시킨다. 그리고.. 2019. 1. 7.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