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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安史之亂)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글: 화로치(禾珯茬)​당대종(唐代宗) 광덕원년(763년) 정월, '안사의 난'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1​사조의(史朝義)는 막주(莫州, 지금의 하북성 임구 북쪽)에서 당군에게 패배하고, 성안에 들어가서 사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조의는 연(燕)의 마지막 황제이고 반란군장수 사사명(史思明)의 아들이다.​대세가 기운 것을 보자 부장(部將) 전승사(田承嗣)는 기운빠진 얼굴로 달려와 사조의를 만난다: "폐하, 당군의 공세가 너무 맹렬합니다. 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같습니다."​사조의는 원래 무능한 자였다. 전승사의 말을 듣자 더욱 당황해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경, 어떻게 하면 좋겠소?"​전승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저 위험한 전략을 써야할 것같습니다."​.. 2024. 11. 3.
북위(北魏): 종실반란(宗室叛亂)이 가장 빈번했던 왕조... 글: 자귤(紫橘)​종실반란은 고대에 근절할 수 없었던 폐단이며, 역대왕조에서는 항상 종실반란이 있었다. 그러나 반란이 왕조내내 시종해서 발생한 것은 북위를 꼽을 수 있다. 북위종실은 도무제(道武帝)의 건국부터 효명제(孝明帝) 가 영태후(靈太后)에게 독살당할 때까지 129년간 존속하며 8명의 황제를 거쳤는데, 모두 합쳐서 20차례의 종실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빈도는 역대왕조에서 볼 수없을 정도였다.​건국때부터 반란이 일어나다.​종실반란은 북위의 병폐라 할 수 있다. 도무제 탁발규(拓跋珪)는 386년 4월에 북위를 건립한다. 건립때부터 종실반란의 고통을 겪게 된다. 386년 8월 탁발규의 숙부 탁발굴돌(拓跋窟咄)이 반란을 일으켜 탁발규와 국가통치권을 쟁탈한다. 탁발규의 근신 우항(于恒)도 굴돌과 결탁한다... 2024. 11. 2.
진백달(陳伯達) vs 섭영진(聶榮臻): 누가 부평(阜平)에서 모택동(毛澤東)을 구했을까? 글: 옥미수(玉米穗)​진백달이 만년에 회고록을 썼다. 그의 아들 진효농(陳曉農)이 기술편찬하여 이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의 한 장면은 진백달이 모택동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진백달은 이렇게 회고한다: 1948년 모택동이 하북성 부평현에 있을 때, 하루는 국민당 비행기가 부평의 상공으로 날아왔다. 진백달은 비행기엔진소리를 들은 후,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급히 모택동의 거처로 달려가 모택동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머리 위에 있습니다. 빨리 떠나야 합니다!" 모택동은 원래 어떡할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진백달이 그렇게 말하자, 바로 경위원과 건물을 나갔다. 모택동이 건물을 나간 후, 진백달은 비행기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고의로 마당에 서서 떠나지 않았다. 모택동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소.. 2024. 11. 2.
홍수전(洪秀全)의 기독교로 보는 "중국특색" 글: 제과(齊戈)​소위 "중국특색"은 최근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중국특색의 시장경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중국특색의 사법제도등등. 여기에는 한가지 기본적인 규율이 있다: 무릇 무엇이라고 말하기 불명확하고, 폐단이 연이어 발생하여 계속 비난받고, 온 천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도나 주의에 대하여 '중국특색'이라는 네 글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게 되고, 잘 모르게 되다보면 결국 흐지부지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를 보자. 모택동이 행한 것은 기실 스탈린주의이다. 심지어 스탈린보다 더욱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공산당20대이후, 스탈린의 폭정은 전세계에 폭로되었고, 악명을 떨치게 되고, 불명예스러운 것이 되어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 2024. 11. 1.
장태염(章太炎): 민국시기의 정치광인 글: 장명(張鳴)​장태염(章太炎)은 지금 국학대사(國學大師)로 유명하지만, 청말민초때 그는 혁명가, 정치가로 유명했다. 단지 그의 정치가로서의 인생은 옛날의 책무더기에서 억지로 기어나온 것이다보니, 제대로 할 때는 그럴 듯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제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은 학자인데, 학문을 얘기할 때는 졸다가도 정치를 얘기하면 바로 기운이 살아난다. 단지 그렇게 기운이 살아날 때 너무나 자기마음대로였기 때문에 어떤 때는 동지들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고, 또 어떤 때는 상대방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든다.​장태염은 동맹회(同盟會)의 초기 핵심인원이었다. 도쿄에서 민보(民報)를 간행할 때 그가 크게 싸웠다. 만일 마구잡이로 욕해대는 글재주를 지닌 그가 없었더라면,.. 2024. 11. 1.
상탕(商湯)은 기우제를 지낼 때 왜 분신해야 했을까? 글: 마라(摩羅)​고대의 중국에서 백성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 비를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무사(巫師)의 주요직책중 하나였다. 만일 그가 오랫동안 기우제를 지내도 효과가 없으면, 그는 반드시 직접 하늘로 올라가서 하느님과 교섭해야 했다. 즉, 그는 스스로를 기우제의식의 제물로 바쳐,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 제사지내는 것이다. 하상주(夏商周) 삼대 및 그 이전부터 춘추시대까지, 모두 조정 혹은 부락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무사(혹은 국왕)은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하늘로 올라갔다. 춘추이후에는 점점 제물로 바치는 자를 지위가 비교적 낮은 무사 혹은 장애인으로 바꾸게 된다.​상탕(商湯)의 집권초기, 중원지구에는 5년간 연속하여 큰 가뭄이 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상탕이 하(夏)족을 무너뜨리고 천하에 사람을.. 2024.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