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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8

미국은 근대중국의 친구였다. 글: 장문명(蔣聞銘)​근대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얘기하려면 역시 손중산(孫中山)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중국은 나라는 약하고 백성도 가난해서 망국의 화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국역사상 망국의 일은 한두번 발생한 것이 아니다. 금나라에 망했었고, 몽골에 망했었고, 만청에 망했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매번 인구가 많다는 것에 의지하여, 나라는 망했지만, 인종은 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라 할 수가 없다. 손중산이 이번에 한 말은 달랐다. 나라가 망할 뿐아니라, 인종의 씨까지 말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망국(亡國)에 멸종(滅種)까지, 그러다보니 이번에 중국이 직면한 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중국을 멸망시키고, 동시에 중국인의 씨까지 말려버릴 수 있.. 2024. 10. 25.
"장가왕조(蔣家王朝)"는 왜 2대로 끝났을까? 글: 노황설사(老黃說史)​장개석(蔣介石)이 장경국(蔣經國)을 위해 길을 깔아준 것과 마찬가지로, 장경국도 아들이 순조롭게 자리를 넘겨받게 하기 위하여 고심을 해서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되어, "장가왕조" 제3대후계자의 "등극의 길"을 끊어지게 된다. 바로 "강남명안(江南命案)"이다.​​장경국에게는 4남1녀가 있다. 그중 장효문(蔣孝文)과 장효무(蔣孝武)이 장방량(蔣方良)의 소생이다. 다만 장효문은 신체가 허약하여 중임을 맡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효무가 중점배양대상이 된다.​장효무의 인생이 부친의 안배하에 궤도에 들어가고 있을 때, "강남명안"이 발발하여, 이 유력했던 "이태자(二太子)"는 쓸쓸히 무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장효무가 물러나면서, 결국 장씨가족은 정식으로 정.. 2024.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