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63 함풍제(咸豊帝)의 단명을 초래한 4가지 습관... 글: 역사대학당(歷史大學堂)청나라말기 함풍제의 짧은 일생은 거의 비극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대청제국의 말기황제로서 외적의 침입과 내란이 빈번한 곤경에 직면해야했을 뿐아니라, 자신의 생활방식은 그의 일생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함풍제의 재위시 그의 여러가지 행위와 그의 기호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함풍제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함풍제의 4가지 애호(愛好)가 실로 그를 요절하게 만들었다. 함풍제의 단명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생활방식이 그렇게 만들었다. 즉위초기, 함풍제의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한창 나이여서 원래 대청왕조를 진흥시키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실망시킨다.. 2024. 9. 6. 유춘림(劉春霖): 중국과거역사상 마지막 장원(狀元) 글: 세설신어(細說新語)중국의 유구한 역사에서 과거제도는 독서인의 유일한 출로와 추구하는 목표였다. 천년이래 무수한 한문자제(寒門子弟)는 공명을 얻고 운명을 바꿀 희망을 품고, 밤낮으로 등불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했다.그러나 과거제도는 청나라말기에 점차 폐지된다. 그렇다면 고대 장원의 수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중국의 마지막 장원의 답안지를 보면 그의 글씨체에 현대인들이 보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그렇다면 중국의 마지막 장원은 누구일가? 그의 일생은 어떠했을까?과거지로(科擧之路)와 서법천부(書法天賦)중국의 마지막 장원은 유춘림(劉春霖)이다. 1872년, 그는 직예(直隸) 숙녕(肅寧)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났다. 비록 집안은 가난했지만, 유씨집안에서는 교육을 아주 중시했다... 2024. 9. 6. 이백(李白)은 왜 과거시험을 치지 않았을까? 글: 야사미필가(野史未必假)1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평생 과거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았다.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초년, 한 18살짜리 소년이 사천(四川) 재주(梓州) 장평산(長平山) 안창암(安昌巖)으로 가서 조유(趙蕤)라는 은사(隱士)를 방문한다.조유는 촉중(蜀中)에서 유명한 잡가(雜家)이고, 이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이는 종횡가(縱橫家)의 모략을 집대성한 책이다. 내용은 내정, 외교, 군사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고, 아주 실용적이었다.이 소년은 어려서부터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기서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찾아가서, 조유를 스승으로 모시고자 한 것이다. 조유는 젊은이가 솔직하고 시원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두 사람의 나이는 20여세였지만, 같은 나이대.. 2024. 9.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