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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이동생(李東生) : TCL이 곤란에 처한 원인에 대한 반성

by 중은우시 2006. 6. 8.

작자 : 이동생(李東生)

        1957년 7월 광동성 출생

        1982년 화남공학원 무선전기과 졸업

        1985년 TCL통신설비공사 총경리

        1986년 혜주시 공업발전총공사 인진부 주임

        1990년 혜주시 전자통신총공사 부총경리, 당위부서기, 공청단위서기

        1993년초 TCL전자집단공사 총경리

        1996년말 TCL집단공사 동사장 겸 총재

<>(103호) 2006년 5월 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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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L의 실제운영의 결과와 우리의 예상과 차이가 컸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차이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국제화가 장기간이 소요되고, 곤란을 많이 겪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었고, 우리는 너무 마음이 들떠 있었다."

 

2004년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내가 총재(CEO)를 맡은 이래 가장 곤란한 시기였다. 그룹이 상장된 다음해부터 실적이 후퇴했고, 이러한 결과는 나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1/4분기, 2/4분기의 결손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비록 결손의 폭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크기는 했지만. 원래 우리의 생각은 다음 반기부터는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3/4분기에도 이익을 내지 못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TCL의 국제화문제는 우리가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나는 인정한다. 스스로와 전체 TCL경영층이 적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비지니스외적인 요소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동시에 두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의사결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이외에, 자금준비가 부족했고, 합병의 어려움에 대하여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국제화인재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으며, 국내시장을 지키는데 실패했고, 통합작업의 속도가 너무 늦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처음부터 우리는 맹목적인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고, 급히 이익을 내려고 서둘렀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제화는 거울과 같고 하나의 자와 같다. 중국의 최고기업과 글로벌기업과의 차이를 하나하나 확대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일들은 사전에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반드시 안에 뛰어들어서 일을 하고나서야 발견할 수 있다. TCL의 실제운영의 결과와 우리의 예상과 차이가 컸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차이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국제화가 장기간이 소요되고, 곤란을 많이 겪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었고, 우리는 너무 마음이 들떠 있었다. 톰슨과의 협상은 겨우 4개월의 시간만을 썼다. 알카텔과의 협상시간은 더욱 짧았다. 당시의 톰슨 컬러티비업무는 1년의 결손이 1.3억유로이고, 알카텔의 핸드폰사업의 1년손실은 8000만유로였다. 그러나 TCL의 2003년도 1년의 순이윤은 4억인민폐에 불과하였다.

 

1991년, 나는 처음으로 TCL을 대표하여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국제전자전을 참관한 적이 있고, SONY, 필립스, THOMSON, 마쓰시다등 브랜드의 커다란 부스와 광고를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 이런 기업들은 너무나 커서 언제나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004년 8월, 오성홍기(중국국기)를 톰슨유럽본사에 올릴 때, 전세계최대의 컬러티비기업인 TTE(톰슨과 TCL의 합자회사)이 마침내 성립되었을 때,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한 내심의 충동과 민족적인 자부심은 피할 수가 없었다" 전체 TCL이 위로부터 아래에까지 일종의 "대약진"의 분위기에 의하여 격동되어 있었다. 유럽, 미국, 중국을 포함한 경영진들이 약속한 중요한 실적은 나중에 나온 실제적인 결과보다 훨씬 높았다. 만일 이런 목표를 작년에 달성했다면, 통합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T&A(TCL과 알카텔의 합자회사)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바로 직전의 거래 즉, 톰슨으로부터 전세게 4개공장, 4개의 R&D센터, 20여억달러의 사업, 17개의 법인을 인수하는 것에 비하여, 단지 수백명의 기술자만 있을 뿐 공장이 없는 알카텔을 인수하는 것은 규모나 복잡한 면에서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우리는 너무 낙관했다. 그리고 톰슨때처럼, 자세한 것까지 실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이로써 수백만유로의 자문비용을 아꼈다. 그러나, 경영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들은 전혀 생각못했던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첫분기의 손실액만도 아낀 비용을 넘어서게 되었다.

 

동시에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되돌압면 너무 조급했던 것같다. 만일 1개의 프로젝트였다면 압력이 조금은 적었을 것이다. 경영결손의 문제만은 아니고, 관리문제도 있었다. 이것들은 확실히 중국기업의 능력범위를 넘어섰다. 그러나, "유격전"의 펼치던 TCL이동통신은 기본적으로 통합능력이 강하지 못하였다. 쌍방의 합병의식을 위하여 TCL이동통신이 혜주에서 30여명을 파견하는데만도 1개월이 걸렸다. 이것에 대하여 알카텔중국의 전 책임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알카텔쪽의 운영은 거의 현상유지였다. 2004년 9월부터 조정전까지 우리는 유럽에서 인력을 감소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증가시켰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7개월후, 합자회사는 6.6억인민폐의 결손을 나타냈고, 쌍방이 공동투입한 9000만유로는 이미 절반이 없어져 버렸다.

 

작년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때였다. 사람들은 거의 통제를 잃어버렸고, 화를 내며, 부하나 고객을 만나면 얼굴이 찡그려져 있었다. 나는 빠져나올 수 없었고, 회사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부 사람들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고, 의사결정에 대한 믿음도 없어졌다.

 

증국번은 자기의 일기속에서 자신에 대한 분석과 자아비판이 매우 철저했다. 그는 많은 결점과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계속 자성하고 학습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점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나는 사람이 계속 배움으로써 계속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증국번이 당에 직면한 많은 문제를 처리하던 것과 내가 오늘날 회사경영중에 부딪친 많은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로부터 약간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기면 왕이다"라는 관념을 내세웠다. 바로 경쟁상황에서는 우리의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고, 좋은 경쟁상태를 유지하면 미래에 기회는 온다는 것이다. 발전이 정체되어 있을 때, 책략의 측면에서는 간단한 기회견인형에서 분명한 전략견인형으로 바꾸고, 이러한 과정에서 좋은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야 한다. 이것은 글로벌화된 기업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가야 하는 길이고, 빠른 시일내에 공을 세우고 이익을 얻으려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먼 앞날을 내다보는발전전략으로부터 회사를 보고, 회사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건립하는데 착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