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명문고등학교를 꼽으라면 북경의 북경사중을 떠올리는 외에, 호북성의 황강중학을 떠올리게 된다. 황강중학은 호북성의 농촌지구인 대별산자락에 위치한 학교이면서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등학교의 하나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가히 "황강신화"라고 할만하다. 이 학교는 대학입시가 부활된 이후 거의 100%대학합격율을 자랑할 뿐아니라, 수많은 성수석과 올림피아드상을 받은 바 있다.
1.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인 1979년 황강중학은 대학입시에서 호북성 1등, 2등, 3등, 5등, 6등을 휩쓸었다. 6등까지 중에서 5명이 황강중학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성적에 대하여 무한지역에 있던 몇개의 명문고등학교들은 의심하기 시작했고, 교육부에 고발장을 내어서 황강중학이 시험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였다. 교육부에서 조사한 결과는 오히려 "황강지역은 시험감독이 엄했으며, 무한지역이 시험감독을 엄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1980년에도 황강중학은 호북성 1등을 차지하였으며, 황강신화는 계속 되었다.
2. 매년 개최되는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중국은 1985년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황강중학은 전국수학경시대회에 참여하였으며 상을 받은 학생이 가장 많았을 뿐아니라, 1등상도 차지하였었다. 원래, 황강중학처럼 농촌지역의 학교는 참가자격조차 없었으나, 그들은 실력으로 중소도시의 학생들과 겨루어 이러한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 1986년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할 학생 90명을 전국에서 선발하였는데, 가장 많이 선발된 학교는 황강중학과 남창이중이었다. 이 해에 황강중학은 2개의 상을 받았다. 1990년과 1991년에는 황강중학의 학생이 다시 3개의 상을 취득하였다. 이러한 상의 갯수는 전국고등학교중 최고였다. 그 때 단 한개의 상도 받지 못했던 상해의 교육계에서는 급히 황강중학에 사람을 보내여 경험을 배워가기도 하였다. 황강중학의 수학교사는 전국수학올림피아드 훈련반의 주임교사로 뽑혀가기도 하였다.
3. 황강중학에 전해지는 전설과도 같은 얘기중에는 물통이야기와 신발이야기가 있다. 여러해동안 대별산지구에 위치하고 농촌마을인 곳에서 대학입학율이 90%를 넘어 거의 100%에 이르게 되자, 황강중학에 대하여 여러가지 괴상한 이야기들도 전해지게 되었다.
황강에는 산에 모기가 많은데,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모기에 물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한 사람이 한 개씩의 플라스틱물통을 가지고, 발을 물통속에 담궈서 모기에 안물리게 하면서 공부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황강지역은 경제가 발달하지 않아서 농촌학생이 많은데, 교사들이 학생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매 교실마다 두개의 신발을 갖다 놓는다는 것이다. 한쌍의 가죽신발과 한쌍의 짚신발을...그리고는 교사는 "너희는 노력해야 한다. 대학에 붙으면 가죽신발을 신는 것이고, 대학에 떨어지면 짚신발을 신게 된다"
황강의 입시수석은 이렇게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강중학의 동덕송 부교장은 이건 전부 근거없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퍼져있어서 아무리 변명해야 통하지를 않는다고 한다. 들리는 바로는 상해시의 교육국장이 호북성의 교육국장을 만났을 때도 "듣기로 너희 황강중학의 교실에는 짚신발과 가죽신발을 놓아둔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황강중학에는 무슨 체계적인 교육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교육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동덕송 교장은 "학교의 교사의 자질도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은 교사들은 학력이 전문학교에 불과하고, 학교내에서 대학원을 마친 사람은 교장을 포함해서 단 두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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